[정윤수의 축구이야기]신화의 끝이 아닌 시작

  • 입력 2002년 6월 26일 01시 56분


차마 쓰고 싶지 않았던, 할 수만 있다면 이 쓴잔을 거역하고 싶은, 쓰디쓴 관전기를 쓴다. 졌다. 나는 한동안 상단 스탠드에 앉아 텅 빈 그라운드를 지켜보았다.

이길 수 있었고 이겼어야 했던 경기다. 마치 탈선한 폭주 기관차처럼 여기까지 질주하는 동안 유럽에서 날아오는 외신들은 얼마나 편견에 가득찬 것들이었는가. 그들은 한사코 동아시아 소국의 비상을 거부했다. 편견과 오만으로 우리 축구를 애타게 평가절하했다. 또 하나의 오리엔탈리즘! 그들은 머나먼 동아시아 반도에서 월드컵을 개최하는 것조차 못마땅해 했으며 승승장구, 욱일승천, 연일 세계 축구계를 뒤흔든 우리 선수들을 혹평했다. 급기야 편파에 음모까지 들먹였다. 편견은 자신들의 노쇠한 운명마저 은폐했다. 텅 빈 골문 위로 홈런볼을 날린 비에리의 실축에 눈감았고 이운재와의 1 대 1 상황에서 공을 깔고 앉은 누누 고메스를 못 본 체했으며 라울의 부상과 엔리케의 부진을 외면했다. 하나의 희생양으로, 불만의 탈출구로 그들은 편파와 오심을 들먹였다.

그 오만과 편견을 깨기 위해 이겼어야 했다. 결승전은 그 다음이다. 당장 리플레이해 보라. 클로제는 육체적인 머리만 쓰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최진철은 ‘두뇌’를 쓰며 완벽한 위치 선점으로 고공 폭격을 제압했다. 노이빌레는 어떠했던가. 기민하게 우리의 측후방을 노렸지만 백전노장 김태영은 늘 길목을 차단했다. 보데가 있었다고? 그렇다면 홍명보 얘기를 들려주고 싶다. 링케와 메첼더가 실점을 허용하지 않았다고 항변한다면 나는 이천수와 차두리가 그들보다 훨씬 빠르고 예리했다고 말하겠다. 황선홍과 유상철의 직선 라인을 하만과 슈나이더는 걷어내는 데 급급했다.

그리고 송종국. 양 팀을 통틀어 오늘 송종국보다 빠르고 능란하고 침착했던 선수가 있었는가. 오직 칸와 이운재만이 운명의 맞상대였으니 선방 이후 아쉬운 골을 허용했으나 그것은 발라크의 행운일 뿐이다. 물론 칸에게 축배를 권하겠다. 그러나 용호상박의 전후반 90분을 나는 결코 패배라는 결과론에 옭아매고 싶지 않다.

홈 어드밴티지라고? 그대들은 축구장을 난폭한 언어와 요란한 폭약으로 노약자와 어린아이는 들어갈 수 없는 공포의 현장으로 만들지 않았던가. 온통 붉은 색이라고? 그대들 역시 주홍색 깃발, 오렌지 셔츠, 짙푸른 옷으로 축구장을 물들이지 않는가. 태극기를 앞세운다고? 그렇다면 그대들은 식탁보나 앞치마를 뒤집어쓴단 말인가.

오히려 우리는 침착하게 패배를 확인했다. 이미 모든 꿈을 성취하고 세계 축구계의 균형을 바로잡으며 신화를 창조했기에 우리는 칸과 그 동료들에게 박수를 보냈다. 경기 종료 후, 독일의 팬들은 30분이 넘도록 스탠드 한쪽을 메운 채 승리의 축가를 불렀다. 아마 그대들의 본고장이라면 경찰의 보호 아래 서둘러 고향으로 돌아가야 했을지 모른다.

물론 패배를 승인하기란 고통스럽다. 이 관전기의 자음과 모음은 쓴약을 억지로 삼키며 간신히 이어붙인 것이다. 그러나 신화가 끝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시작이다. 이제까지의 ‘역사’가 이변이 아님을 증명할 새로운 지평이 열려있다. 당장 대구월드컵경기장이 그 지렛대로서 값지다. 또 다른 승전보를 울리며 우리는 오만과 편견의 유럽주의자들에게 정중하면서도 단호한 도전장을 내밀 것이다. 그때, 다시 만나자.

정윤수/축구칼럼니스트 prague@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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