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추칼럼]과연 모든 선수들이 자기 몸값을 하고 있는가?

  • 입력 2002년 1월 29일 13시 10분


잉글랜드 프로 팀들이 선수 영입에 있어서 어느 정도 경쟁력을 가지기 시작한 것은 프레미어 리그가 창설된 이후부터라고 볼 수 있다. 옛 1부리그 (old division 1)가 프레미어 리그로 독립하면서 프레미어 리그의 각 프로 팀들은 TV 방영권, 스폰서 등 여러 면에서 막대한 재정적 지원을 받기 시작했다. 그 전에는 재정적으로 이탈리아나 스페인의 빅 팀들에게 도저히 대항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이러한 재정적 지원과 수익을 바탕으로 잉글랜드 프로팀들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 아스날, 리버풀, 첼시와 같은 빅 클럽 중심으로 소위 말하는 '빅 네임'들을 영입하기 시작하였다. 또한 보스만 판결과 EU 선수들은 외국인 선수 제한에 포함되지 않는 다는 UEFA 결정은 프레미어 리그로의 외국 선수 영입에 더욱 박차를 가하게 되었다. 일부에서는 이러한 외국 선수들이 우후죽순으로 영입 되는 것에 대해 자국의 젊은 선수들의 기회를 박탈한다고 우려하지만 (사실 이 우려는 비단 잉글랜드 뿐만이 아니다) 여하튼 외국 선수들이 프레미어 리그에 양적, 질적 성장을 가져온 것에 대해서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고 생각한다.

2001년 여름, 2001 - 2002 시즌을 앞두고 프레미어 팀들은 그 어느 때보다 굵직굵직한 선수 영입에 온 힘을 쏟아 부었다. 세계 최고의 흑자 클럽임에도 불구하고 클럽 정책상 전통적으로 비싼 몸값을 주고 선수를 영입하는데 인색한 모습을 보이던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도 2명의 선수를 영입하는데 무려 4800만 파운드를 썼다. (반 니스텔루이 - 2000만 파운드, 베론 - 2800만 파운드) 그리고 맨유의 라이벌 팀들도 많은 돈을 투자해 질 좋은(?) 선수 영입에 힘썼다. 첼시는 3200만 파운드를 들여 4명의 선수( 프티, 젠덴, 람파드, 갈라스)를 영입했고, 아스날은 보스만 판결에 의해 자유계약 선수가 된 솔 캠벨을 포함해 5명의 선수 (라이트, 캠벨, 이나모토, 반 브롱크호스트, 제퍼스)를 영입했다. 2001-2002 시즌이 시작하기 전 리버풀은 노르웨이의 떠오르는 왼쪽 윙백(혹은 윙) 리세를 377만 파운드를 주고 모나코에서 영입해왔고, 리즈는 오프 시즌 동안 특별한 선수 영입이 없었지만 시즌이 시작하자 1100만 파운드를 주고 리버풀에서 로비 파울러를, 900만 파운드를 주고 더비에서 잉글랜드의 신예 세스 존슨을 영입했다. 이로써 리즈는 지난 3년간 8600만 파운드라는 엄청난 돈을 들여 좋은 선수들을 영입하며 팀 전력 강화에 힘쓰고 있다. (하지만 오레리 감독 부임 이후 리즈는 아무런 트로피도 가져오지 못했다) 파울러를 방출한 리버풀은 체크 공화국 출신의 밀란 바로스와 프랑스 국가대표 출신인 니콜라스 아넬카를 영입하였고, 1100만 파운드를 들여 리버풀의 오랜 골칫거리였던 골키퍼 문제를 해결했다. (폴란드 대표 두덱과 잉글랜드 출신의 커클랜드 영입).

하지만 이러한 빅 클럽들만이 많은 돈을 선수 영입에 투자하는 것은 아니다. 이번 시즌 프레미어 리그로 승격한 풀햄은 벌써 2000만 파운드 이상을 투자했고 아직도 선수 영입에 힘쓰고 있다. 심지어 상대적으로 작은 규모의 클럽인 사우스햄프턴도 몇 백만 파운드를 썼다. 클럽 역사상 가장 많은 돈인 400만 파운드를 주고 더비에서 아일랜드 국가대표인 로리 딜렙을 영입했고, 500만 파운드를 주고 브렛 오머로드와 에콰도르 공격수인 어거스틴 델가도를 영입했다.

이렇게 수많은 선수들을 영입하고 있는 프레미어 리그에서 비록 비싼 몸값을 지불하고 영입한 선수일지라도 새로운 소속팀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선수가 있게 마련이다. 반 니스텔루이 같이 자기 몫 이상을 해주는 선수가 있는가 하면 프란시스 제퍼스 (에버튼에서 아스날로 이적) 같이 출장 기회조차 변변히 잡을 수 없는 선수가 있게 마련이다. (물론 제퍼스는 부상도 그 원인 중 하나이지만 필자는 그가 부상을 당하지 않았더라도 아스날에서 많은 출장기회를 얻을 수 있었을지 의심이 간다).

따라서 필자는 이번 시즌 프레미어 리그 (혹은 프레미어 리그 내에서)로 이적한 선수 중에 아직도 새로운 소속팀에 완전히 적응을 하지 못한 몇 명의 선수에 대해 이야기 하고자 한다.

코라도 그라비 (Corrado Grabbi - 블랙번 로버스)

- 테르나나 (이탈리아 Serie B)에서 700만 파운드로 영입

블랙번 감독 그래험 수네스가 세리아 B팀인 테르나나에서 700만 파운드를 주고 그라비를 영입했을 때 많은 사람들은 무리한 도박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그라비는 세리아 B에서 기복없는 공격수였고 (2000-2001 시즌에는 20골을 넣었다) 따라서 많은 Serie A 팀에서 눈독을 들였던 것도 사실이다. 과거 이탈리아 토리노 감독을 맡았고 삼프도리아에서 선수생활을 한 경험이 있는 수네스 감독은 이탈리아 축구에 대해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고 따라서 블랙번 팬들은 그라비에 대해 신뢰감을 가지고 있었다.

빠른 스피드와 좋은 기술을 가지고 있는 그라비는 프레미어 리그 처음 2-3경기에서 비록 골은 넣지 못했지만 좋은 플레이를 보여줘 블랙번 팬들과 코치진에 희망을 실어 주었다. 하지만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와의 경기에서 그가 넣은 골이 무효로 선언된 후 그의 자신감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하였다. 그 후 그라비는 에버튼전에서 시즌 첫 골을 넣지만 그의 플레이는 나아지지 않았다. 그에 대한 비난은 블랙번이 웨스트햄을 7대 1로 대파할 때 한 골도 넣지 못하면서 더욱 거세지기 시작하면서 나폴리로의 이적설이 나돌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라비의 상황을 더욱 악화시킨 것은 시즌 도중 800만 파운드를 주고 영입한 앤디 콜의 등장이었다. 이미 뉴카슬 유나이티드와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검증받은 공격수인 앤디 콜의 영입은 그라비의 입지를 더욱 좁아지게 하고 있다.

수네스 감독은 콜의 영입 후 콜과 기존의 맷 젠슨을 투톱으로 기용하고 있다. 잉글랜드 국가대표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야심차게 이적을 감행한 콜과 떠오르는 공격수 멧 젠슨의 존재는 그라비의 미래를 더욱 암울하게 하고 있다.

지오바니 반 브롱크호스트 (Giovanni Van Bronchhorst - 아스날)

- 레인져스에서 850만 파운드로 영입

아스날 감독인 아슨 벵어는 2001년 여름 어김없이 새로운 선수 영입에 힘썼다. 하지만 그는 여전히 자신의 선수 영입에 대해 의문을 가지는 많은 이들의 불만을 완전히 잠재우지 못했다. 앙리, 비에이라, 프티, 그리마디 같은 선수들을 세계적 수준으로 조련했음과 동시에 스테판 몰츠, 레미 가르데, 크리스토퍼 레아 같은 선수들은 소리없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지난 여름에 영입한 선수 중에 프란시스 제퍼스는 부상에 시달리고 있고 리차드 라이트는 안정적인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으며 주니치 이나모토는 거의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다. (물론 이나모토의 영입이 상업적인 이유가 더 컸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심지어는 솔 캠벨도 팀에 적응을 하고 있는 중이다. 하지만 아스날에서 새로 영입한 선수 중 가장 실망스런 선수는 바로 브롱크호스트라고 볼 수 있다.

네덜란드 리그와 유럽 클럽에서 많은 경험을 가지고 있고 스코틀랜드의 레인져스에서도 성공적인 선수 생활을 한 브롱크호스트는 처음 적절한 영입이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고, 미드필드 장악력이 뛰어나며 프리킥에도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어 오베르마스나 프티의 공백을 거뜬히 커버할 수 있다고 여겨졌다. 시즌 초반 브롱크호스트는 아쉴리 콜이 부상을 당하자 콜의 자리인 왼쪽 윙백에서 뛰었었다. 하지만 콜이 부상에서 회복해 다시 자기 자리를 되찾자 브롱크호스트는 부상과 부진까지 겹쳐 주전 자리를 차지하지 못하고 있다. 비에이라와 함께 막강한 미드필드를 구성할 기대를 가지고 있었던 벵어 감독으로선 여간 실망스런 일이 아니었다. 지금까지 브롱크호스트는 10게임에 출전했고 6번 교체를 당했다. 브롱크호스트는 점점 더 엔트리를 채우는 선수로 전락하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보데윈 젠덴 (Boudewijn Zenden - 첼시)

- 바스셀로나에서 750만 파운드로 영입

네덜란드 국가대표인 젠덴을 영입했을 때 많은 첼시 팬들은 이탈리아 출신의 암브로세티가 하지 못한 확실한 윙 플레이를 보여줄 것으로 기대했다. 젠덴은 98월드컵과 유로 2000에서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었고 (그의 좋은 플레이로 오베르마스가 오른쪽 윙으로 포지션을 바꾸기도 하였다) 때때로는 왼쪽 윙백으로 뛰면서 여러 포지션을 소화할 수 있는 재능을 과시하기도 했다. 바르셀로나에서 다시 한 번 오베르마스와 포지션 경쟁을 해야 했던 젠덴은 바르셀로나 팀 개편의 희생양 중 한 명으로 2000-2001 시즌을 끝으로 다른 팀으로 이적을 희망했다. 첼시를 포함해 리옹, 파르마, 라지오 등이 그의 영입에 관심을 가졌다. 결국 젠덴은 2001년 여름 새로운 도전을 위해 첼시로 이적했다. 많은 전문가들은 윙으로서 갖춰야 할 스피드와 파워를 겸비한 젠덴이 네덜란드 대표팀 동료이자 소속팀 동료인 하셀바인크에게 많은 득점 기회를 줄 것으로 예상했다. 그 기대에 보답하듯 젠덴은 데뷔전에서 8분 만에 첫 골을 터뜨리며 화려한 신고식을 치뤘다. 그의 미래는 밝아만 보였다.

하지만 첼시의 이탈리아 출신 라니에리 감독이 젠덴을 그와 맞지 않는 포지션에 투입하기 시작하면서 그의 플레이는 빛을 읽어가기 시작한다. 때로는 3명의 최전방 공격수 중 한명으로, 때로는 중앙 미드필드로, 때로는 윙백으로 포지션을 바꾸면서 젠덴은 부진을 면치 못하고 있다. 또한 첼시에서 기존의 왼쪽 윙백이나 윙을 맡았던 노장 르 속스가 최근 상승세를 타고있어 젠덴의 왼쪽 자리를 되찾는 것은 더욱 힘들어 보인다.

최근 젠덴은 교체 선수로 나와서 가끔씩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고 있지만 중앙 미드필드로 투입될 때는 여전히 불안정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비록 라니에리 감독의 전술로 피해를 입은 케이스지만 여하튼 그의 부진을 단지 포지션 이동때문이라고만 보기에는 무리가 있다고 본다.

데니스 와이즈 (Dennis Wise - 레스터 시티)

- 첼시에서 160만 파운드로 영입

항상 거칠고 다혈질적인 성격으로 타팀 선수들과 끊임없는 마찰을 빚었던 와이즈는 레스터 시티로의 이적 후 더욱 그라운드 안팎에서 난폭한 행동을 일삼고 있다. 와이즈를 영입할 당시의 레스터 감독인 피터 테일러는 그의 영입으로 더욱 견고하고 많이 뛰는 미드필드를 구성하길 기대했었다. 와이즈는 그의 행동에는 많은 문제가 있지만 어쨌든 첼시가 컵 위너스 컵에서 우승하고 전반적인 상승세를 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테일러 감독은 와이즈가 기존의 로니 사비지와 머지 이젯을 이끌고 강력한 미드필드를 구성할 수 있으리라 믿었다.

하지만 레스터로 이적 후 와이즈의 돌출 행동은 과거 윔블던 (현재 1부리그에 있지만 몇 년전까지 프레미어 리그에 있었던 팀으로 상당히 거친 팀 컬러를 가지고 있다. 외인구단 같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타 팀들이 상당히 거부감을 가지고 있는 팀이다. 이러한 팀컬러 때문에 팀 별명이 Crazy Gangs이다.) 시절을 연상케 할 정도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고 있다. (와이즈는 이번시즌 현재 1번의 퇴장과 6번의 경고를 기록 중이다.) 그의 거친 플레이와 낮은 팀 기여도는 팀에 악영향을 미치기에 충분했고 물론 팀의 부진이 모두 그의 책임은 결코 아니지만, 레스터 시티는 현재 리그 최하위를 달리고 있다. 프레미어 리그에서 와이즈의 오랜 경력과 노하우를 감안할 때 160만 파운드는 거의 헐값이나 다름이 없다. 하지만 이번 시즌을 끝으로 그가 레스터 시티에 잔류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고, 또 이적을 한다고 해도 과연 어느 팀 (적어도 프레미어 리그 팀 중에서)이 그를 원할지 의문이다.

이상으로 바쁘게 돌아가는 2001-2002 프레미어 리그에서 현재까지 비교적 많은 이적료와 높은 팬들의 기대에 비해 만족스런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몇 명의 선수들을 살펴 보았다. 위에 언급한 선수들 중에 기본적인 기량은 있으나 팀 전술 때문에 피해를 입은 선수들도 분명 있다. 따라서 그들의 몸값과 그들의 기여도를 단순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기도 하다. 하지만 그들이 팀에 적응을 하지 못하는 이유가 팀 전술 때문이던지, 그들 플레이 자체가 난조를 보이고 있는지 간에 오늘날의 많은 팬들은 (특히 소속팀의 팬들은) 조속히 그들이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길 원하며 팀에 많은 기여를 해주길 원한다는 것이다. 한 선수가 새로운 팀으로 이적한 후 그 팀에 적응 하는데 필연적으로 어느 정도의 시간이 걸리는 것은 사실이다. 세계 최고의 플레이메이커라는 찬사를 받고 있는 지단도 그렇고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야심차게 영입한 베론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단 한 골로 스타덤에 오르고, 단 한 번의 실수로 역적이 될 수 있는 각박한 현대 축구에서 팬들이나 새로운 선수를 영입한 클럽 관계자들은 그 '어느 정도의 시간' 조차도 조바심을 가지고 기다려주기 힘들어

한다. 또한 실제로 이적하자마자 적응기간 없이 좋은 플레이를 보여주는 선수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그렇지 못한 선수들의 입지를 더욱 좁아지게 하고 있다.

갈수록 혼선을 더해가고 있는 올 프레미어 리그에서 시즌 후 과연 어느 선수들이 제대로 몸값을 했다고 평가 받을 수 있을지 궁금하다.

자료제공: 후추닷컴

http://www.hoochoo.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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