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현장을 가다]
저장성 우전서 세계인터넷대회, 세계 최초 승객 태운 5G 무인버스
“5G 활용 디지털경제로 전환”… 원격진료 등 산업 규제 한국과 대비
1000년 역사를 지닌 수향(水鄕·하천이 아름다운 지역) 마을인 중국 저장(浙江)성 우전(烏鎭). 전통 건축물 사이로 흐르는 물 위로 나룻배가 가을 공기를 헤치며 한가로이 오가는 곳이다. 세계 최초로 5세대(5G) 이동통신 기술을 적용했다는 무인 소형버스의 세련된 디자인은 우전의 고색창연한 풍경과 대비됐다.
기자는 21일 항저우보신즈롄(杭州博信智聯)과학기술유한공사가 개발해 우전에서 처음으로 승객을 태우고 시범운행을 시작한 이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중국롄퉁(聯通·차이나유니콤)의 5G 기술과 인공지능(AI) 무인자동차 기능을 결합했다. 차이나유니콤은 중국이둥(移動·차이나모바일) 중국뎬신(電信·차이나텔레콤)과 함께 중국의 3대 이동통신사다. 출발지에는 ‘전 세계 최초 5G 자동 소형버스 시범노선 개통’이라는 플래카드가 걸렸다. 보신즈롄 관계자는 “기자가 이 버스에 탄 것은 처음”이라고 귀띔했다.
차량 사방에는 레이더와 카메라가 설치돼 있었다. 도로변 곳곳에 설치된 5G 기지국, 레이저 레이더, 카메라가 버스에 ‘데이터 궤도’를 제공한다. 데이터로 만들어진 가상의 레일 노선이다. 버스가 노선상의 모든 도로 상황을 실시간으로 감지하면서 운행하기 시작했다.
핸들이 스스로 이리저리 움직이면서 버스가 앞으로 나아갔다. 신호등의 빨간 신호에 멈춰 섰다. 사거리 우회전도 부드러웠다. 버스는 1차로를 유지하며 다음 정거장으로 향했다. 안전을 고려해 속도는 시속 20∼30km를 유지했다. 운전석에 안전요원이 있었지만 운전을 하지는 않았다.
보신즈롄 엔지니어는 “차량, 행인 등 움직임에 100ms(밀리초·1ms는 1000분의 1초) 이내 속도로 반응한다”며 “실시간으로 데이터를 주고받기 위해 5G 기술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버스는 내년 말 상용화될 예정이다. 20일 제6회 우전 세계인터넷대회(20∼22일)와 함께 열린 ‘인터넷의 빛’ 박람회에서 만난 차이나유니콤 관계자는 “지하철역에서 내려 목적지로 이동하는 등 3∼5km 거리의 소형 대중교통 노선에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2022년 항저우 아시아경기대회 참가 선수들의 셔틀버스에도 이 기술을 도입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 전통마을의 세계 최초 5G 무인버스
올해 6회째를 맞은 우전 세계인터넷대회 및 박람회는 인터넷 관련 신기술을 대거 공개했다. 올해 대회에는 83개국의 관련 분야 전문가 약 1500명이 참여했다. 박람회에는 130여 기업이 600여 가지 최신 기술을 선보였다.
2014년 1회 대회가 열릴 때만 해도 작은 관광지였던 우전이 5G 기술을 선도하는 지역으로 탈바꿈한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올해 우전에 설치된 5G 대형 기지국만 105개에 달한다. 무인버스 출발지 건너편에는 화웨이의 5G 혁신센터가 있었다. 우전이 있는 퉁샹(桐鄕)시는 소도시지만 데이터경제 관련 기업은 2014년 355곳에서 올해 1745곳으로 급증했다. 지난해 이곳의 데이터경제 관련 핵심 제조업 생산액만 100억 위안(약 1조6580억 원)을 넘어섰다.
우전에서는 5G와 관련된 또 다른 실험도 진행되고 있었다. 박람회에서 차이나모바일과 중국퉁융(通用)기술그룹은 5G 기술을 전면 활용한 원격운전 시스템을 시범적으로 선보였다. 박람회에는 실제 운전석과 똑같은 운전 공간이 마련됐다. 한 관계자가 박람회장에서 약 3km 떨어진 지역에 있는 차량을 원격으로 운전하기 시작했다. 박람회장의 대형 운전석 모니터를 통해 실제 차량의 좌우, 전후방을 볼 수 있었다. 길을 건너는 행인 앞에서 브레이크를 밟자 실제 차량이 정지했다. 앞차와 간격 유지, 차로 변경도 자연스러웠다.
차이나모바일 관계자는 “시범운행이라 2.5∼3km 떨어진 우전 내 지역에서 운행하지만 5G 기지국이 설치된 지역이라면 중국 어디든 원격운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중국퉁융기술그룹 측은 “광산, 화재지역 등에서 우선 활용할 수 있다”고 밝혔다. 박람회 현장에서 만난 왕모 씨(50)는 “아이를 차로 학교에 데려다 줄 때도 유용할 것 같다”며 “중국의 5G 기술이 넘버원”이라고 주장했다.
중국은 이번 행사에서 중국이 세계 5G 기술을 주도하고 있음을 과시했다. 중국 공업정보화부에 따르면 중국 이동통신사들이 중국에 세운 5G 기지국은 이미 8만6000곳 이상이고 올해 말까지 13만 곳을 넘어설 것으로 보인다. 공업정보화부는 5G 응용기술이 공업 교통 전력 의료 등 각 분야에서 3000건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중국의 3대 이동통신사들은 이번 행사에서 앞다퉈 5G 기술을 활용한 교육, 제조, 가상현실(VR), 치안, 응급대응은 물론이고 도시 전체를 관리하는 스마트도시 시스템까지 선보였다. 5G 기술을 이용해 올해 6월 베이징과 저장성 자싱(嘉興)시 병원이 세계 최초로 원격로봇 수술에 성공한 사례도 소개됐다.
중국은 5G와 각종 산업의 융합을 ‘5G+(플러스)’라고 불렀다. 5G와 의료를 결합한 원격의료 시스템을 ‘5G+의료’라고 부르는 식이다. 중국은 이 ‘5G+’를 자국의 강점인 광범위한 빅데이터와 융합해 ‘디지털 경제시대’를 열겠다는 전략을 드러냈다.
천자오슝(陳肇雄) 중국 공업정보화부 부부장은 21일 이번 대회의 5G 포럼에서 “5G 기술을 공업 교통 농업 등에 적용해 새로운 산업으로 업그레이드할 것”이라며 “5G는 디지털화된 경제, 사회로 전환하는 중요한 엔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 개발도상국 이용한 국제표준화 만들기
중국 지도부가 자국의 5G 활용 기술을 세계 표준으로 만들려는 야심을 드러냈다는 점도 주목된다.
시진핑(習近平) 국가주석은 이번 대회에 보낸 축하 서신에서 “인터넷 공간의 운명공동체를 추동하자”고 밝혔다. 대회조직위원회는 현장에서 배포한 관련 문건에서 “특히 (중국 같은) 개발도상국의 이익을 반영한 인터넷 관리 규칙을 제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시 주석은 21일 상하이(上海) 국제전기기술위원회대회에 보낸 축하 서한에서는 “5G, AI, 빅데이터 분야의 국제 표준 제정이 필요하다. 중국은 국제 표준화 활동에 적극 참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번 대회에서 중국은 세계의 5G 기술 표준을 만들고 이끌 능력이 있음을 강조했다. 쓰한(斯寒) 세계이동통신사업자연합회(GMSA) 중화(中華)지역 총재는 이날 “현재 전 세계 5G 이용자가 500만 명인데 5G 사용을 예약한 중국 이용자가 1100만 명을 넘어섰다”면서 “2025년 중국의 5G 이용자는 전체의 40%를 차지할 것”이라고 말했다. “GMSA가 애초 2025년 세계 5G 이용자 수를 14억 명으로 예상했다가 16억 명으로 늘렸어요. 증가한 2억 명 가운데 75%는 중국 이동통신사 덕분입니다. 중국은 전 세계 최대이자 가장 중요한 5G 시장이에요.”
저우훙런(周宏仁) 중국 국가정보화전문가자문위원회 부주임의 발언도 눈길을 끌었다. 그는 “5G 시대는 전 세계가 사물인터넷 시대에 진입하는 것을 뜻한다. 중국은 5G 기술 발전뿐 아니라 응용 분야에서도 이미 세계 선두”라고 했다.
세계인터넷대회조직위원회는 20일 “공정한 원칙에 따라 투표로 선정했다”며 세계 인터넷 산업을 주도하는 과학기술 성과 56건도 공개했다. 맨 처음 소개된 기술은 중국 화웨이가 개발한 최신형 중앙연산처리장치(CPU)인 ‘쿤펑(鯤鵬) 920’이었다.
우전 세계인터넷대회에서 확인한 중국 5G 기술의 진짜 힘은 5G 자체보다도 이를 다양한 산업과 융합해 새 경제 산업 모델을 만들어 내는 데 있었다. 류례훙(劉烈紅) 중국 국가인터넷정보판공실 부주임은 “5G 기술을 바탕으로 융합 발전을 견지해야 한다”며 “5G는 공업 교육 의료 등 전통산업의 혁신과 데이터(경제) 전환에 에너지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한국도 5G 기술은 선두권이다. 하지만 5G 기술을 응용한 원격진료만 해도 시범사업에 그치는 등 기술과 산업 간 융합을 막는 규제가 여전히 많다. 승부는 ‘5G’가 아니라 5G의 무한한 확장성을 가리키는 ‘5G+’에서 갈릴지 모르겠다. 작은 마을 우전에는 중국 전역 전문의의 원격진료를 받을 수 있는 인터넷병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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