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자는 현재 그리스 답사 중이다. 오늘은 아테네 민주주의의 요람이라 할 수 있는 프닉스 언덕에 올랐다. 프닉스 언덕은 파르테논 신전이 있는 아크로폴리스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서쪽에 있는 언덕이다. 아테네 민주정과 관련한 두 개의 중요한 유적이 있다. 하나가 민회가 열렸던 광장이다. 솔론에서 페리클레스 시대까지 민회의 권한은 계속 확대되었다. 주요 정책과 법률에 대한 의결권을 지녔고, 정무관, 장군을 선출했다. 나중에는 재판도 했고, 배심원 제도도 도입했다. 도편추방이 행해진 곳도 민회였다.
또 하나는 아테네부터 피레우스 항구까지 연결된 성벽이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라우리온 은광에서 나온 수익을 시민에게 분배하자는 정책에 반대하고, 항구와 함대, 성벽에 투자하게 했다. 성벽 유적은 아슬아슬하게 남아 있지만, 튼튼하고 수준 있는 성벽이었다. 내적인 단합과 국방력, 이 두 가지가 아테네를 페르시아의 침공에서 구하고, 페리클레스 시대의 전성기를 열었다.
다른 하나의 요인은 경제 부흥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농업 국가였던 아테네를 해상무역 국가로 바꾸었다. 이때 아테네가 해상무역 국가의 본보기로 삼았던 곳이 아이기나섬이었다. 프닉스 언덕에서 보면 이 섬이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보인다. 이건 충격이었다. 아테네는 결국 아이기나를 밀어내고 해상 패권을 장악하기는 하지만 처음에는 상당히 망설였다. 아이기나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서가 아니었다. 과거의 생활습관에 대한 미련을 버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이것도 믿기지 않는 것이 아테네 주변은 염소밖에 살 수 없을 정도로 거친 바위투성이 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게다가 바로 눈앞에 성공 사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테네는 망설였다. 이만큼 인간은 보수적이고 자신의 경험, 선입견을 좀체 벗어나지 못한다. 테미스토클레스가 위대한 것은 미래를 정확히 예측했을 뿐 아니라 대중의 선입견, 관습과 싸워 이겼기 때문이다. 그것이 참된 지도자의 사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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