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근배의 神品名詩]토우土偶라는 아이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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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라 토우장식장경호.
신라 토우장식장경호.
토우土偶라는 아이 ―유홍준(1962∼ )

흙으로 빚어진 남자와 흙으로
빚어진 여자가
성교를 하고 있어요

머위밭에는 잎이 커다란 머위, 우물가에는 키가 조그만 달개비가 보라색 꽃을 피우고 있구요
(…)
섞이어 섞여…… 둥기당 둥땅 흙으로 만든 거문고 소리가 들려오네요

흙으로 빚은 뱀, 흙으로 빚은 개구리, 흙으로 빚은 토끼들이 즐거워, 기뻐, 폴짝폴짝 뛰고 있구요

흙으로 만들어진 여자와 흙으로
만들어진 남자가

아이를 만들어
당연히
흙으로 만들어진 아이

잘 구워져 천년, 잘 익어 천년, 덩더쿵 쿵덕 세월이 암만 흘러도 죽지 않는 아이네요


세상에 사랑과 바꿀 만한 것이 어디 있으랴. 날짐승 들짐승들도 새끼 낳고 기르는 데 목숨 바치는 것을. 더욱 몸으로만이 아닌 마음까지 더해야 하는 사람일진대 사랑으로 아이 만드는 일은 상스럽지 않고 오히려 거룩하고 축복받을 일이다.

1500년 저쪽 솜씨 좋은 신라의 도공이 있어 곡식 담는 항아리를 빚을 때 나라의 안녕과 백성의 풍요로운 삶을 빌어 개구리, 뱀, 거북, 새, 토끼, 물고기 등의 흙인형을 만들어 붙이고 거문고 타는 아이 밴 여자와 알몸으로 사랑 짓을 하는 신랑 신부를 덧붙인다.

이 ‘토우장식장경호(土偶裝飾長頸壺·높이 34cm)’가 출토된 것은 1973년 경주 미추왕릉 지구 정화사업 때 계림로 30호 무덤에서였으며 노동동 11호 무덤 출토품(높이 40.5cm)과 한 쌍이 되어 국보 195호로 지정되었다.

흙인형인 토우는 애완장식품이나 질병, 액운은 쫓고 장생과 홍복을 가져오는 신앙의 상징 또는 사후세계의 영생을 비는 뜻으로 부장품이 되어 왔다.

여염집에서 쓰이기보다는 다산과 풍년을 기원하는 제물을 담는 그릇으로 여겨지는 이 항아리는 왕릉에서는 나오지 않았지만 신분이 높은 관리나 불심이 깊은 귀족의 부장품이었을 것이다. 으뜸의 고려청자, 조선백자만이 국보는 아니다. 주둥이가 깨지고 몸통이 구멍 났어도 신라인의 오롯한 숨결과 자유분방한 예술혼이 살아서 뛰어놀고 있지 않는가.

시인은 이 그릇을 천년에 천년을 넘어 오래 사는 아이로 본다. ‘잘 구워져 천년, 잘 익어 천년, 덩더쿵 쿵덕 세월이 암만 흘러도 죽지 않는 아이’라고 덩달아 흙아이가 되어 춤을 추고 있다.

이근배 시인·신성대 교수
#토우라는아이#유홍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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