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취재노트]美정치의 위기신호 ‘트럼프 돌풍’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8월 7일 03시 00분


코멘트
이승헌·워싱턴 특파원
이승헌·워싱턴 특파원
지나가는 바람 정도로 여겼던 미국 공화당 대선 주자 도널드 트럼프의 돌풍이 한 달째 이어지고 있다. 지난달 9일 미 서퍽대가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처음 젭 부시 전 플로리다 주지사를 제치더니 4일 공개된 CBS방송 여론조사에서도 공화당 성향 유권자에게서 23%의 지지율을 얻어 부시(13%), 스콧 워커 위스콘신 주지사(10%)를 여유 있게 제쳤다.

미국 사회는 처음엔 트럼프 특유의 막말을 쇼맨십 정도로 여기는 듯했지만 분명한 대세론을 형성하자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며 놀라는 눈치다. 특히 워싱턴 정가에서 만난 주류 미국인들은 더욱 그렇다. 대사를 지낸 한 고위 공무원은 “요즘 우리끼리 이란 핵협상 빼고 제일 많이 이야기하는 게 트럼프 인기의 비결”이라고 전했다.

미 현지 언론은 지금까지 “트럼프가 버락 오바마 정부에서 억눌렸던 백인 주류 사회를 대변하고 있다” “카리스마형 언행이 주목을 끌고 있다”는 그 나름의 분석을 내놨지만 트럼프 현상이 장기화되자 이젠 서서히 기성 정치의 문제에 눈을 돌리고 있다. 오바마 정부 들어 더욱 심각해진 민주, 공화당 간의 갈등과 ‘정치’의 실종으로 기성 정치에 대한 국민적 인내가 다해가고 있다는 지적이 그런 것이다. 마치 2012년 한국 대선을 앞두고 여의도 정치에 절망한 한국 사회가 ‘안철수 현상’을 만들어냈듯 워싱턴 정치권에 실망한 미국 사회가 돈키호테 같은 트럼프에게서 일종의 대안을 보고 있다는 분석이다.

미 역사학자인 바드대 이언 부루마 교수는 3일 ‘프로젝트 신디케이트’라는 온라인 매체에 올린 기고문에서 “직업 정치인에게 염증을 느끼는 사람이 많아지면서 ‘트럼프 현상’이 발생했다”고 말했다. 이는 근래의 여론조사 결과와도 일치한다. 퓨리서치센터가 지난해 말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미국인들이 정부와 정치권을 신뢰하고 있다는 응답은 1960년대 조사 시작 후 가장 낮은 수준인 24%에 머물고 있다.

6일 첫 공화당 대선 주자 토론회를 계기로 트럼프 현상의 지속 여부가 판가름 나겠지만 지금까지의 돌풍만으로도 미국식 정치 시스템에 적지 않은 문제가 있음을 보여준 것은 분명해 보인다. 2017년 대선을 앞둔 한국 정치권도 눈여겨봐야 할 대목이다.

이승헌·워싱턴 특파원 ddr@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