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경구의 옛글에 비추다]진실한 사람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2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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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배순(裵純)은 대장장이이다. 풍기(豊基)로 이사 온 지 30년이 넘었는데 죽계(竹溪) 상류 평장동(平章洞)에 대장간을 열고 일을 하였다. 보통의 대장장이는 그릇에 금이 가면 진흙으로 바르고 그릇이 새면 밀랍으로 메워 한껏 이익을 취하는데 배순은 이와 반대로 그릇에 금이 갔으면 금이 갔다고 말하고 가격을 깎아 주었으며 그릇이 새면 샌다고 하고 가격을 낮추었으니, 내가 이를 보고 배순이 정직함을 알았다.

그는 양봉을 좋아하여 벌통이 수십 통이나 되었지만 벌을 다 없애고 꿀을 통째로 취하는 일이 없었으며 때때로 수저를 가지고 덮개를 열어 꿀만 조금 취할 뿐이었으니, 내가 이를 보고 배순이 탐욕이 없음을 알았다.

그는 예전에 선성(宣城)에 살았는데 퇴계(退溪) 선생이 돌아가시자 삼 년 동안 마음으로 상복을 입었으며 쇠로 선생의 모습을 주조하여 제사를 지냈으니, 그가 현인(賢人)을 사모하는 정성이 지극함을 알았다. 선조(宣祖) 임금이 돌아가시자 또 삼 년 동안 상복을 입었으니 그가 임금을 사랑하는 정성이 지극함을 알았다.

남들은 천시하는 대장장이이지만 정직하고 탐욕이 없으며 어진 이를 존경하고 나라에 충성을 바친 그야말로 ‘진실한 사람’입니다. 그러고 보니 이름도 ‘순수할 순(純)’이로군요. 이런 모습은 선비들에게서도 쉽게 찾을 수 없는데 배순은 죽을 때까지 그렇게 했다며 곽진 선생(1568∼1633)은 ‘배순전(裵純傳)’을 지어 그를 기렸습니다. 비슷한 시기에 이준 선생(1560∼1635)도 같은 제목의 전을 짓고 ‘벌레도 죽이지 않았으니 어진 사람, 남을 속이지 않았으니 진실한 사람, 현인을 사모하고 모습을 주조하였으니 덕을 사모한 사람, 나라의 은혜를 생각하여 상복을 입었으니 충성스러운 사람’이라며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궁벽한 시골 마을에도 간혹 배운 것은 없지만 절조를 지키거나 선행을 하여 칭찬할 만한 사람이 많이 있다(窮鄕僻村 或有無學之人 抱一節守一善 有足稱述者多矣).

평범해 보이는 촌로에게서 눈부신 지혜를 발견할 때가 많습니다. 살아온 세월이 스승이기 때문입니다. 말 없는 다수의 눈이 무섭다고도 합니다. 묵묵히 자신의 위치에서 정직하고 욕심 없이 살아가는 수많은 보통 사람들을 존중하고 두려워하는 세상이 되었으면 합니다.
조경구 한국고전번역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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