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야단법석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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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부처님 오신 날이면 떠오르는 불교 설화 속 인물이 있다. ‘바리공주’다. 속칭 ‘바리데기’라고 하는데 ‘부모로부터 버림받은 천덕꾸러기’라는 뜻이다. 버림받은 공주란 뜻의 ‘사희공주(捨姬公主)’라고도 한다.

‘옛날 오구대왕이 계속해서 여섯 공주를 낳았다. 대왕은 아들을 얻기 위해 온갖 치성을 드렸으나 또 딸이었다. 노한 대왕은 일곱째인 바리공주를 버린다. 그러나 바리공주는 병든 아버지를 살리려 저승까지 가 생명수를 구해온다. 바리공주는 후에 죽은 이의 죄를 씻어 극락으로 인도하는 신이 된다.’ 굽은 나무가 선산을 지킨다는 한국 속담을 떠올리게 하는 설화다.

바리데기에 붙은 ‘-데기’는 부엌데기, 소박데기처럼 ‘그와 관련된 일을 하거나 그런 성질을 가진 사람’을 낮잡아 부를 때 붙이는 접미사다. 많은 사람이 -데기와 ‘-때기’를 헷갈려한다. ‘-때기’는 귀, 볼 등 신체 부위를 나타내는 명사 뒤에 붙어 ‘비하’의 뜻을 나타낸다. 귀때기, 볼때기처럼 쓰는데 역시 고상한 말은 아니다.

불교와 관련이 있는 ‘우담바라’는 3000년에 한 번, 전륜성왕이 나타날 때에 그 복덕으로 핀다는 상상의 꽃이다. 문제는 우리 사전에 우담바라는 올라있지 않고 ‘우담발라(優曇跋羅)’ ‘우담화(優曇華)’만 올라있다는 것. 입말과 규범의 괴리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나무아미타불(南無阿彌陀佛), 초파일(初八日), 도량(道場), 보리수(菩堤樹)처럼 불교 용어 중 상당수는 한자음이 아니라 입말을 표준어로 삼는데 왜 ‘우담바라’만 한자음대로 읽어야 하는지 의문이다.

‘야단법석’도 불교에서 온 말이다. ‘법석’은 원래 설법 독경 따위를 행하는 조용하고 엄숙한 법회를 뜻한다. 그런데 ‘야단’이 앞에 붙으면 뜻이 갈린다. ‘야단법석(野壇法席)’은 ‘야외에 단을 쌓아놓고 크게 베푸는 설법 자리’라는 뜻으로 원래의 의미를 유지하고 있다. 그런데 ‘야단법석(惹端--)’으로 쓰면 소란스럽고 무질서한 난장판을 가리킨다. 이때의 ‘惹端’은 어떤 일의 발단을 지칭하는 야기사단(惹起事端)에서 왔다. 그러다보니 ‘야단스럽다’, ‘법석거리다’도 시끄러움을 뜻하는 말이 됐다. 요즘 언중은 후자의 의미로 많이 쓰고 있다.

나흘 뒤면 부처님 오신 날이다. 이날만큼은 모든 잘못을 남 탓으로 돌리면서 야단법석을 떨지 말았으면 싶다. 그런 복덕이라도 쌓아야 우담바라를 기대할 수 있지 않겠는가.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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