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본보기집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5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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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주택시장 기사에서 만나면 기분 좋은 낱말이 있다. ‘본보기집’이다. 사전에 오른 외래어 ‘모델하우스’를 제치고 입말로 자리잡아가고 있다. 신문 등에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본보기집.’ 집을 사고자 하는 사람에게 미리 보여주기 위해 실제 모습과 똑같게 지어 놓은 임시집이다. 알기 쉽고 말맛이 좋아서인지 비교적 빨리 정착했다. 이와 달리 ‘하우스푸어(house poor)’의 순화어인 ‘내집빈곤층’은 다소 고전하고 있다. 국립국어원이 2012년 12월 순화어로 삼았지만 ‘하우스푸어’를 고집하는 언중 역시 만만찮기 때문. 요즘 들어 ‘내집빈곤층(하우스푸어)’처럼 병기하는 경우가 늘고 있는 것은 고무적이다.

손님을 대접하는 일을 ‘손겪이’라고 한다. 손치레, 손님치레도 뜻이 같다. 대표적인 손겪이가 ‘집들이’다. 집들이는 이사한 후에 이웃과 친지를 불러 집 구경을 시키고 음식을 대접하는 일이다. 집들이와 관련해 잘못 알고 있는 게 있다. 흔히 “오늘 친구 집에 집들이 간다”고 하는데, 이는 잘못된 표현이다. ‘집알이 간다’고 해야 옳다. ‘집알이’는 새로 집을 지었거나 이사한 집에 구경 겸 인사로 찾아보는 일을 말한다. 즉 집주인이 하는 건 집들이고, 손님이 하는 건 집알이다. 아무래도 집알이라는 말을 잘 모르니, 집들이를 두 경우에 모두 쓰게 된 것 같다. 뜻은 그렇다 치고, 살림살이가 각박해지면서 요즘에는 집들이를 자청하는 사람도 많이 줄어든 듯하다.

좋은 일이 있을 때 남에게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턱’이라고 한다. 집들이처럼 새집에 들었을 때 내는 턱은 ‘들턱’이다. 큰소리만 치고 실제로는 보잘것없는 턱도 있다. ‘헛턱’이다. 요즘 젊은이들은 턱 대신에 ‘쏜다’라는 말을 많이 쓴다. 언어는 생물이라는 말을 실감한다.

외래어를 순화한 말이 사느냐, 죽느냐를 가르는 요인은 무엇일까. 뜻이 정확하고, 알기 쉽고, 말하기 쉬워야 할 것 같다. 꾸준히, 자주 사용하는 것도 중요하다. ‘네티즌’을 ‘누리꾼’으로 순화했을 때 어색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신문 방송 등에서 의지를 갖고 꾸준히 사용함으로써 지금은 완전히 뿌리를 내렸다. 리플을 댓글로, 블랙아웃을 대정전으로, 지리를 맑은탕으로 고친 것도 성공작이다. 앞으로도 외래어를 잘 고친 모델, 아니 본보기가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본보기집#모델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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