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진호 어문기자의 말글 나들이]넓적바위, 비바크, 오름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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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진호 어문기자
손진호 어문기자
꽃떨기들이 흐드러지게 울긋불긋, 고운 자태를 뽐내는 요즘이다. 주말이면 산과 들을 찾는 이들이 부쩍 늘었다. 필자가 자주 오르는 도봉산 중턱에는 봄꽃 향기에 더해 마당처럼 넓고 평평한 바위가 등산객을 맞는다. 정상을 향하는 이들에게 쉬엄쉬엄 가라며 넉넉하게 자리를 내준다. 이름하여 ‘마당바위’다.

바위에 앉아 알맞추 불어온 바람에 땀을 씻으며 새삼 우리 사전의 ‘속 좁음’을 느낀다. 입말로 자리 잡았는데도 사전에 오르지 못한 낱말이 떠올라서다. 마당바위와 비슷한 것으로 ‘넓적바위’와 ‘넙적바위’가 있다. 그런데 두 단어는 표준어가 아니다. ‘펀펀하고 얇으면서 꽤 넓다’는 뜻의 ‘넓적하다’를 보더라도 표준어로 삼지 못할 이유가 없다. 그렇지만 넓적바위는 아예 사전에 올라 있지 않고, 넙적바위는 북한의 문화어란다. 표준어는 ‘너럭바위’다. 예부터 써 왔고 지금도 널리 쓰이고 있는 두 낱말을 비표준어로 묶어두는 건 납득하기 어렵다.

이와 달리 언중이 잘못 쓰는 등산 용어가 있다. 야영 장비 없이 산에서 한뎃잠을 자는 것을 일컫는 ‘비박’이 그것이다. 많은 이들은 ‘객지에서 묵는 밤의 횟수를 세는 단위’인 ‘박(泊)’을 떠올려 ‘비박(非泊)’이라고 지레짐작한다. 허나, 비박(非泊)이라는 한자어는 애초에 없다. 바른 표기는 야영을 뜻하는 독일어 ‘비바크(Biwak)’이다. 그런데도 많은 이들이 ‘비박’을 즐겨 쓴다. 발음하기 쉬운 데다 ‘박(泊)’의 이미지를 떠올려서일 것이다. 그래서일까. “국립공원에서의 비바크(biwak·일명 ‘비박’)는 불법입니다”라고 두 말을 병기하기에 이르렀다. ‘비박’에 익숙한 사람들이 많아서일 것이다.

제주 한라산에 딸린 기생화산을 뜻하는 ‘오름’도 우리 사전의 속 좁음을 보여주는 사례다. 우리 사전은 여전히 오름은 ‘산’과 ‘산봉우리’의 제주 방언으로 묶어두고 있다. 하지만 언중의 말 씀씀이는 전혀 다르다. 즉, 산은 산이고 오름은 오름이라고 생각한다. 신문 역시 ‘은빛 제주억새 사이로 오름을 달린다’ 등으로 오름을 별도 단어로 인정해 자주 쓰고 있다. 이참에 거문오름 용눈이오름 다랑쉬오름 따라비오름 성널오름 아부오름 등 재미있고 아름다운 제주도의 오름들을 사전에 싣는 것도 검토해 봤으면 싶다. 그것까지는 바라지 않더라도 ‘오름’만큼은 일반명사로서 인정해야 할 것이다.

손진호 어문기자 songba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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