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대석]이화여대 국제 심포지엄 참석 세계 여성공학자 4인

  • 입력 2007년 11월 8일 03시 0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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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여대를 방문한 세계적 여성 공학자들이 “기술과 사람, 기술과 사회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미래 공학에선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웬디 홀 세계컴퓨터협회 부회장, 제이니 포크 미국 플로리다대 부총장, 리어 제이미슨 세계전기전자학회 회장, 부르크힐데 비네케투타우이 베를린기술공대 부총장. 원대연 기자
이화여대를 방문한 세계적 여성 공학자들이 “기술과 사람, 기술과 사회와의 관계를 중시하는 미래 공학에선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질 것”이라고 입을 모았다. 왼쪽부터 웬디 홀 세계컴퓨터협회 부회장, 제이니 포크 미국 플로리다대 부총장, 리어 제이미슨 세계전기전자학회 회장, 부르크힐데 비네케투타우이 베를린기술공대 부총장. 원대연 기자
“정말 외로웠습니다. 제가 남성 동료들에게 뒤지지 않는다고, 오히려 더 뛰어나다고 계속해서 증명해 보여야만 했으니까요.”

제이니 포크(56) 미국 플로리다대 부총장은 자신이 걸어온 길을 이렇게 회상했다.

포크 부총장과 리어 제이미슨(58) 세계전기전자학회(IEEE) 회장, 웬디 홀(55) 세계컴퓨터협회(ACM) 부회장, 부르크힐데 비네케투타우이(49) 독일 베를린기술공대 부총장 등 미국과 유럽을 대표하는 정상급 여성 공학자들이 한국을 찾았다.

이들은 7일 서울 서대문구 대현동 이화여대에서 열린 ‘여성공학자와 미래사회에 관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여성이 미래 공학의 변화를 주도하게 될 거라고 입을 모았다. 세계 공학계를 주름잡는 네 명의 여성 공학자를 이화여대 본관 회의실에서 만났다.

―남성이 훨씬 많은 분야라 그동안 어려움이 많으셨을 텐데요.

▽비네케투타우이 부총장=공학에 처음 발을 디뎠을 당시 독일 공학계에서 여성은 3%에 불과했어요. 첫 여성 공학자가 배출된 지 50년이 지났는데도 말이죠. 하지만 반복되는 경직된 업무를 하기 싫었고, 성공하면 안정적인 수입을 얻을 수 있다는 생각에 공학을 택했어요.

―같은 공학도라도 남성과 여성 간에 차이가 있나요.

▽포크 부총장=자동차를 설계하라는 연구 주제를 주면 남녀 성향 차이가 뚜렷이 보입니다. 골프공을 줍는 자동차면 남학생이 신이 나서 뛰어드는 반면, 장애인 이동용 자동차면 여학생이 더 적극적이에요. 둘을 설계하는 데 필요한 기술은 같은데도 말이죠. 지금까지 전문직 여성은 의학이나 법학 등 다른 사람을 돌보거나 인간적인 역할을 강조하는 분야에서 주로 경력을 쌓았어요. 나 홀로 진행하는 연구에서 남성에 비해 여성이 빛을 보지 못했던 것도 이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전자공학이나 컴퓨터공학이 발달하던 초기에는 공학자들이 주로 실험실에 틀어박혀 개인적으로 연구를 진행한 경우가 대부분이었어요. ‘관계’ 지향적인 여성의 성향이 이 같은 초기 공학의 특성과 잘 맞지 않았죠.

―세계적으로 여성 공학자가 증가하는 추세라고 들었습니다.

▽비네케투타우이=최근 동유럽을 중심으로 여성 연구자가 급증하고 있어요. 발트 해 동부에 있는 라트비아는 공학과 과학 연구 인력의 50% 정도가 여성입니다. 루마니아와 에스토니아도 비슷한 상황입니다.

―현대사회는 여성적인 성향에 전보다 더 주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이미슨 회장=미국에선 특히 산업계가 여성의 참여를 이끌고 있어요. 일상생활용 제품을 개발할 때 가사를 경험한 여성의 아이디어가 반영되는 경우가 많다고 해요. 남녀 차별을 경험한 아버지들이 미래사회에서 자기 딸만큼은 동등한 기회를 갖길 바란다는 점도 변화를 이끄는 힘이라고 생각해요. 최근 우리 학교(퍼듀대)는 뛰어난 여성 공학자를 키워 낸 교수를 발굴해 상도 주기 시작했어요. 의외로 남성 교수가 이 상을 많이 받았답니다.

▽비네케투타우이=우리 학교(베를린기술공대)는 현재 교수의 17%가 여성이에요. 3%에서 17%로 느는 데 15년이 걸렸죠. 요즘 독일에서는 연구 성과나 강의 수준뿐 아니라 여성 교직원 비율이 대학 평가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공학 중에서도 생명 관련 분야에 특히 여성이 많죠. 미래에도 이런 경향이 이어질까요.

▽포크=의료공학과 생물공학, 환경공학 등 생명을 기반으로 한 분야에서 앞으로도 여성의 활약이 두드러질 겁니다. 문제를 정확히 정의하고 접근하는 전통적인 공학과 달리 생명을 다루는 건 매우 불확실하죠. 남성보다 불확실성을 더 포용할 줄 아는 여성들이 이런 분야에서 잘해 낼 겁니다.

▽제이미슨=최근 미 국립공학협회 설문조사에서 특히 청정 수자원 개발, 생명공학을 이용한 범죄수사, 전자제품 디자인 같은 분야에 여학생이 남학생보다 많은 관심을 보이는 것으로 나타났어요. 미래 공학은 기술과 사람 사이의 관계, 기술이 사회에 미치는 영향 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어요. 관계를 중요시하는 현대 공학의 트렌드가 여성의 공학 진출을 더욱 활발하게 할 겁니다.

임소형 동아사이언스 기자 sohyung@donga.com

○웬디 홀

△2006년∼현재 세계컴퓨터협회(ACM) 부회장 △1994년∼현재 영국 사우샘프턴대 전기컴퓨터과학과 교수 △1977년 사우샘프턴대 박사(수학 전공)

○제이니 포크

△2005년∼현재 미국 플로리다대 부총장 △1999∼2005년 미 미시간주립대 공대 학장 △1982년 미 노스캐롤라이나대 박사(생명의공학 및 수학 전공)

○리어 제이미슨

△2007년∼현재 세계전기전자학회(IEEE) 회장 △2006년∼현재 미국 퍼듀대 공대 학장 △1977년 미 프린스턴대 박사(전기 및 컴퓨터공학 전공)

○비네케투타우이

△2003년∼현재 독일 베를린기술공대 부총장 △1995년∼현재 베를린기술공대 기계공학과 교수 △1987년 베를린기술공대 박사(기계공학 전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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