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세이]정윤수/올림픽대표는 ‘戰士’가 아니다

  • 입력 2004년 7월 19일 18시 4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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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공청소기’ 김남일의 달리기 자세는 독특하다. 양팔을 겨드랑이에 붙이고 주먹 쥔 손을 가슴께로 올리고 뛰는데 특히 경기 직전 그라운드에서 그 자세로 몸을 풀 때는 아주 단단하면서도 경쾌한 매력을 준다. 새벽바람을 가르는 군인들의 구보를 떠올리게 한다.

그가 올림픽팀의 마지막 와일드카드로 선정됐다. ‘월드컵 신드롬’의 가장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고서도 꽤 우울한 시기를 보낸 김남일은 월드컵과 올림픽에 동시에 출전하게 되면서 축구 인생의 새 전환점을 갖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번 기회가 그에게 반드시 좋은 것일까. 7월의 아시안컵 목표는 우승, 그리고 8월의 올림픽 목표는 동메달. 목표대로 된다면 김남일은 19일에 시작된 조별 리그를 거쳐 8월 7일 결승전을 치른 뒤 아테네로 건너가 12일 그리스전을 시작으로 적어도 27일 동메달 결정전까지 뛰어야 한다.

나는 이 기나긴 장정 속에서 김남일이 특유의 단단한 자세로 한국 축구의 중심을 잘 맡을 것으로 기대한다. ‘하드보일드 인파이터’ 김남일의 체력은 마르고 닳지 않을 것이며 상대의 혈도를 순식간에 끊는 천부적인 감각과 반 박자 빠른 짧고 강한 패스(혹자는 그의 기술을 부인하지만)는 큰 경기를 치르면서 더욱 빛날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격려와 상관없이 두 달의 일정은 고되고 힘들다. ‘나라의 부름’에 산화해야 했던 몇몇 축구 선배들의 악몽이 되살아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할 뿐이다.

이참에 더불어 생각해 보자. 올림픽팀 구성에 있어 축구협회 내에 불협화음이 있었다. 협회는 요하네스 본프레레 감독의 ‘아시안컵’ 대신 ‘국민적 염원’의 올림픽팀에 힘을 싣는 쪽으로 추진해 왔고 그 과정에서 각 대표팀, 프로구단, 해외파 선수 소속팀과 마찰도 있었다. 박지성을 차출하기 위해 조중연 부회장이 네덜란드까지 갔지만 거스 히딩크 감독은 일언지하에 거절했다. 협회가 각급 대표팀의 안정적인 기량 발전을 도모하기보다 ‘동메달’ 획득에 따른 ‘국민적 인기’를 미리 기대한 데에 따른 불협화음들이다.

이 대목에서 깊이 생각해 볼 것은 ‘올림픽’에 대한 우리의 인식이다. 88올림픽이 그랬듯이 적어도 우리나라에서 올림픽은 ‘국운 상승’, ‘국민적 염원’, ‘태극전사’ 등으로 별칭되는 독특한 행사다. 지난 동계올림픽 유치 경쟁에서 나타났듯 스위스의 작은 도시 잘츠부르크 시민들이 소박하면서도 즐겁게 유치경쟁에 나선 것과 달리 우리는 나라의 미래를 걸고 올림픽을 대한다.

물론 올림픽의 파급 효과를 외면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선수들을 ‘태극전사’로 부르며 과도한 긴장과 지나친 책임의식을 요구하는 것은 오히려 역효과를 낳는다. 요즘 각 방송의 다양한 올림픽 특집에서 들려오는 소리는 ‘국민적 염원’과 ‘태극전사’뿐이다. 보다 바람직하기로는 지금 태릉선수촌에서 마지막 땀방울을 흘리는 선수들이 오로지 ‘자기 자신’을 위해 신나게 뛸 때 그 과정과 결과는 더욱 빛이 난다.

요컨대 은메달을 따고도 고개를 숙인 채 울어야 하는 선수들을 더 이상 양산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지난 시대의 ‘국가주의적’ 정서를 젊은 선수들에게 요구할 시기는 일찌감치 지났다. 그들은 전쟁을 치르러 떠나는 게 아니다. 젊은 선수들이 ‘진지하면서도 즐겁게’ 아테네 올림픽을 치를 수 있도록 좀 더 신선하고 경쾌한 분위기를 조성할 필요가 있다.

정윤수 스포츠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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