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과의 대화]최재천/대통령에 권하는 '십계명'

  • 입력 2003년 10월 15일 18시 2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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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이 정권 초기에 국민에게 재신임을 받겠다는 돌발발언을 해 온 나라가 또 한번 벌집 쑤신 듯 어수선하다. 개혁이 풍파 없이 이뤄질 리가 없겠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 발을 디딘 이후 거의 단 하루도 정국이 잠잠한 날이 없었던 것 같다.

나는 요즘 아프리카에서 거의 반세기 동안 야생 침팬지들의 행동과 생태를 연구해 온 우리 시대 최고의 행동생물학자이자 칠순의 나이에도 생명 존중의 전도사로 지구촌 구석구석을 누비는 제인 구달 박사를 우리나라에 초청해 놓고 그 준비에 여념이 없다. 11월 9일부터 사흘 동안 대중을 위한 공개 강연, TV 출연, 아이들과의 만남 등 바쁜 일정이 짜여 있다. 청계천 복원사업을 의욕적으로 추진 중인 이명박 서울시장이 구달 박사를 서울대공원 동물원으로 안내하는 일정도 계획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지난 몇 년간 준비해 온 ‘한국영장류연구소’(가칭)의 출범이 나를 잠 못 이루게 한다.

구달 박사의 방한에 맞춰 나는 또 그의 ‘생명 사랑의 십계명’이란 책을 번역하고 있다. 생명 존중과 자연 보호를 위해 마련한 십계명이 지금 우리가 겪고 있는 대혼란에 던지는 의미가 큰 듯해 간략하게나마 소개하려 한다. 이 중 일부는 대통령이 숙고했으면 좋을 것 같은 계명이고 나머지는 우리 모두가 함께 곱씹어야 할 계명이라고 생각한다. ‘나라 사랑 십계명’이라 해도 좋을 듯싶다.

첫 번째 계명. “우리가 동물사회의 일원이라는 것을 기뻐하자.” 나는 우선 우리 모두가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국민임을 진심으로 기뻐하는 일에서부터 난국의 실마리를 풀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 계명. “모든 생명을 존중하자.” 국민 한 사람 한 사람의 생존권을 모두 소중하게 여겨야 한다. 생명의 존엄에는 차별이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세 번째 계명. “마음을 열고 겸손하게 동물들에게서 배우자.” 혼자만의 구상을 부둥켜안고 그저 앞만 보며 뛰지 말고 함께 나라를 걱정하고 이끌어야 할 동료 지도자들의 말에도 귀를 기울여야 할 것이다. 대통령도 토론을 즐긴다고 하지 않았나.

네 번째 계명. “아이들이 자연을 아끼고 사랑하도록 가르치자.” 개인적으로 이 계명이 나를 가장 가슴 아프게 한다. 우리 어른들이 이처럼 판을 이리 뒤엎고 저리 뒤엎고 하는 동안 우리 아이들은 국가와 민족에 대한 사랑과 점점 멀어지고 있다.

다섯 번째 계명. “현명한 생명지킴이가 되자.”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우리 주변에 산더미같이 쌓여 있다. 우리 모두 당장 내 몫 챙기기에 급급하지 말고 진정으로 현명한 ‘나라지킴이’가 돼야 할 때다. 그 선봉에 서야 하는 이가 바로 대통령이다.

여섯 번째 계명. “자연의 소리를 소중히 여기고 보전하자.” 국민의 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언론은 국민의 소리를 대변할 수 있어야 하고 대통령은 그 소리가 비록 듣기 싫더라도 소중히 받들어야 할 것이다.

일곱 번째 계명. “자연을 해치지 말고 자연으로부터 배우자.” 거듭 강조하지만 서로 헐뜯지 말고 서로에게서 배워야 할 것이다.

여덟 번째 계명. “우리 믿음에 자신을 갖자.” 우리가 믿고 맡긴 우리의 대통령이다. 구태여 재신임 과정을 거치지 않더라도 지도자로서 믿음을 보이면 국민은 따를 것이다.

아홉 번째 계명. “동물과 자연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을 돕자.” 나라를 위해 일하는 모든 이를 진심으로 돕자. 지금은 작은 파이를 놓고 서로 다툴 때가 아니다. 모두 힘을 합쳐 파이를 키워야 할 때다. 우리가 이러고 있는 동안 세계가 우리를 앞질러 달아나고 있다.

열 번째 계명.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희망을 갖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을 하자.” 대통령이 혼자 이 나라를 짊어지고 가는 게 아니다. 우리 모두가 각자 맡은 크고 작은 일들을 충실하게 수행할 때 나라와 민족의 앞날이 밝아진다. 우리 모두 희망을 갖고 다시 일어서자.

노무현 대통령님, 재신임 발언일랑 없었던 걸로 사과하고 다시 한번 팔을 걷어붙이십시오. 우리 모두 함께 할 일이 많습니다.

최재천 서울대 교수·생물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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