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 칼럼]민주화 이후 국정의 3대 과제

  • 입력 2007년 1월 2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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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 이후 우리는 세 정권을 맞고 있다. 그 정권은 저마다 무엇을 했는가. 어느 정권이든 그 정권만이 할 수 있고 또 해야 되는 시대적 과제 혹은 역사적 사명 비슷한 것이 있다.

우선 김영삼(YS) 정권. 민주화 투사 YS는 ‘범을 잡기 위해 범굴에 들어간’ 3당 합당이라는 일대 모험을 통해 마침내 문민 정권을 탄생시켰다. 37년 만에 군복을 입지 않은 첫 대통령이 된 YS의 역사적 임무는 앞으로 한국 정치에 군부의 개입을 영구히 차단하고 문민정부의 전통을 반석 위에 올려놓는 일이었다. 그를 위해선 지난 연대 동안 군부와 정부를 주물러 온 군의 사조직 ‘하나회’를 거세하지 않으면 안 됐다. YS는 대통령에 취임하자마자 전광석화처럼 하나회를 해체해 장차 쿠데타를 모의할 수도 있는 세력을 뿌리 뽑아 버렸다.

하나회가 무엇인가. 12·12사태 때 일선 군부대를 끌어와 참모총장을 체포하는 하극상(下剋上)의 쿠데타를 일으키고 5·18 광주의 피 묻은 칼로써 집권한 영남 출신 중심의 정치군인 결사. 아무도 섣불리 건드릴 수 없는 막강한 군벌 조직이다. 그를 혁파한다는 것은 영남 지지기반의 여당과 합당 모험을 치르고 스스로 영남에 압도적 지지기반을 갖는 영남 출신의 대통령 YS만이 능히 할 수 있는 일이었다. YS는 그걸 해냈다. 다른 어느 누구도 할 수 없는 일이었다.

YS 군벌 해체, DJ 개발독재 화해

그 다음 김대중(DJ) 정권. 한국의 근대화는 박정희가 밀어붙인 ‘산업화’의 성취에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룩한 DJ의 대장정 ‘민주화’가 이어짐으로써 역사적인 한 원(圓)을 닫게 된다. 그러나 현실 정치에서 박정희는 1971년 대선의 적수 DJ를 철저히 미워하고 박해를 가했다. 심지어 그 추종자들은 DJ를 ‘지워 버리려’ 암살을 기도하기조차 했다.

그렇기에 DJ 정권의 출현은 한국 현대사의 심각한 단속(斷續)이 될 수도 있었다. 그러나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의 단속과 대립은 비단 두 세력의 불행에 그치지 않고 한국 현대사의 단속이요 비극이 아닐 수 없다. 산업화가 민주화로 연속이 됨으로써 한국의 근대화가 오롯이 원을 그리기 위해선 두 세력이 화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산업화를 위한 ‘개발독재’의 무리와 그 비행을 역사적으로 용서하고 사면해 주지 않으면 안 된다. 그것은 오직 DJ만이 능히 할 수 있는 시대적 과업이었다. 그러나 그건 아무도 DJ에게 강요는 할 수 없는 과업이었다.

바로 그렇기에 나는 DJ가 대통령 재임 초기에 박정희 기념관을 건립하겠다고 발표했을 때 크게 감동했다. 그래서 그를 환영하는 글을 바로 적어 모 신문사에 투고했으나 무슨 영문인지 햇빛을 보지 못하고 버려지고 말았다.

물론 박정희 기념관에 대해서는 많은 반대와 저항이 있으리라 처음부터 예상은 했다. 과거 민주화운동하다 박해받은 박정희 정권의 피해자와 희생자가 얼마나 많았는가. 그들을 회유하고 박정희 시대와 역사적 화해를 할 수 있는 유일한 ‘권위’는 박정희 시대의 최대 피해자인 DJ밖에는 없다. 그 DJ가 자진해서 박정희 기념관을 건립하겠다고 나섰을 때 나는 만델라 스케일의 도량을 보는 듯했던 것이다. 그러나 DJ는 그를 성사시키지 못하고 민주화 투사라는 군소 영웅들의 반대에 떠밀려 버리고 말았다.

盧정권 노사문제 해결 전념을

그리고 노무현 정권. 노 대통령의 시대적 과제, 다른 누구도 할 수 없고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역사적 과업은 무엇인가. 노 대통령이 슬기롭게도 우리나라의 진로로 옳게 방향타를 잡아 흔들리지 않고 추진하고 있는 ‘개방화’, 그를 위해 반드시 해야 될 선결 요건인 한국 노사관계의 정상화가 그것이다.

노동운동을 이판사판의 ‘결사적’ 투쟁이 아니라 평화적인 협상으로 격상하도록 전투적인 강성노조를 설득할 수 있는 ‘권위’는 노동운동과 노조 활동에 가장 가까이 다가가 있으면서 청와대 주인이 된 노 대통령밖엔 없다. 과거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쉽게 나올 수 없을 것이다. 1년의 임기가 남아 있다. 나는 노 대통령이 그만이 능히 할 수 있는 이 시대적 과제를 맡아 성공한 대통령이 되어 주었으면 하는 기대를 아직 버리지 않고 있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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