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 칼럼]남북정상회담을 하겠거든

  • 입력 2007년 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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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을 앞두고 하나의 ‘괴물’이 정치권을 배회하고 있다. 남북정상회담이라는 괴물이….

지난해엔 대낮에도 어두운 건물 안에서 똬리를 틀던 ‘괴물’이 1000만 명을 훌쩍 뛰어넘는 영화 관객의 눈을 사로잡은 이변이 있었다. 올해엔 남북정상회담이라는 괴물이 다시 1000만 명을 훨씬 넘는 유권자 표를 쓸어 모아 줄 이변이 일어날지…. 소문으로는 그걸 모의하는 흥행사가 어두운 구석에서 지금 똬리를 틀고 있다던가.

농담거리가 아니다. 핵폭탄을 들고 남쪽을 위협하는 국방위원장이란 이름의 북의 종신 정상과 임기가 1년밖에 남지 않고 국민의 지지도는 한 자릿수로 추락한 남의 시한부 정상이 이 시점에서 ‘괴물의 꼼수’로 정상회담을 해서는 안 되며 설혹 한다 해도 그건 도대체 남북정상회담이 될 수 없다.

여느 우방 또는 단순한 이웃 나라와는 아무 때나 정상회담이 열릴 수 있다. 그러나 북의 평양 정권은 우리에게 단순한 이웃이 아니요, 하물며 우방도 아니다. 정치 이념 노선이 다르고 사회 경제 체제가 다를 뿐 아니라 서로 적대해 오기조차 했던 상대이다. 그 사실을 굳이 외면하려던 현 정부의 국방부조차도 북의 핵 실험 이후엔 우리의 안보 상황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고 밝힌 평양 정권이다. 2000년 이른바 6·15 공동선언에 문서로 약속한 서울 답방을 6년이 지나도록 이행하지 않은 국방위원장을 이제 와서 이쪽에서 서둘러 아무 조건도 없이 아무데서나 왜 만나자는 것인가. 만나서 무얼 하자는 것인가.

대선 앞두고 군불 때는 세력들

물론 정치 이념 노선이 다르고 사회 경제 체제가 다른 나라의 정상도 만날 수 있고 또 만나 왔다. 서로 적대했고 심지어 총을 겨눴던 국가의 정상도 만날 수 있고 또 만나 왔다. 한국전쟁에서 적대한 미국과 중국, 통일 이전의 서독과 소련, 그리고 동서독의 경우가 그렇다.

국교 수립을 위한 미중 정상회담에는 리처드 닉슨과 저우언라이(周恩來), 서독-소련 정상회담에는 콘라트 아데나워와 니키타 흐루쇼프, 그리고 서독-동독 정상회담의 출발은 빌리 브란트와 빌리 슈토프가 각각 주역을 맡았다. 저마다 상이한 프로필을 보인 이들 정상회담의 주역에겐 한 가지 공통점이 있다. 다같이 자국 국민의 압도적 지지를 등에 업고 상대방도 그걸 인정하고 정상회담 테이블에 마주 앉았다는 점이다.

1955년 모스크바에서 만일 기민당의 총리가 아니라 사민당 출신의 총리가 소련과 정상회담을 했다면 그 결과를 서독의 우파 세력이 그대로 수용하진 않았을지도 모른다. 우파의 지도자 아데나워가 소련과 협상을 했기에 서독의 좌우파를 망라한 폭 넓은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게다가 아데나워는 제1야당인 사민당 출신의 국회 부의장 카를 슈미트를 정상회담에 동행하게 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였다.

1972년 미중 정상회담엔 매카시주의자란 말을 듣던 우파 중의 우파 닉슨 대통령이 나섰기에 우파의 어떤 반대도 잠재우고 폭넓은 국내 여론의 지지를 얻을 수 있었다. 만일 리버럴한 케네디 대통령이 베이징에 갔었더라면 또 한 방의 댈러스의 총성이 울렸을지도 모를 일이다.

동서독 정상회담, 서독의 동방정책은 그 주역이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반(反)나치주의자이자 또한 반공산주의자였기에 성공할 수 있었다고 영국의 한 정치학자는 분석했다. 만일 서독 또는 서방에서 용공주의자가 옛 소련, 중국, 동독과 정상회담을 했다면 성공할 수 있었을까. 그 결과를 서독이나 서방에서 수용하고 지지해 주었을까.

주사파 배제 야당 동참 전제돼야

만일 이번에 짝짜꿍이 맞는 남북 고위층의 외도(外道)가 아니라 정도(正道)의 남북정상회담을 성사시켜 폭넓은 국민의 지지를 얻으려 한다면 대전제가 있다. 회담에 참여하는 인사에 용공주의자나 주사파는 배제하라. 정상회담의 협상력을 높이기 위해선 집권 여당만이 아니라 제1야당의 지도자, 특히 대선 후보자가 동참하도록 하라. 가장 좋기는 임기 1년 미만, 지지도 10% 미만의 현 정부 수반보다 연말에 선출되는 차기 정부 수반에게 정상회담을 넘기라. 그것이 국가와 민족을 위해 좋고 정상회담 자체를 위해서도 좋다.

최정호 울산대 석좌교수·본보 객원 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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