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 칼럼]한국문화가 ‘色’을 쓴다

  • 입력 2006년 3월 23일 03시 2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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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는 나이와 보는 영화의 수는 반비례하는 듯싶다. 젊었을 때 하루에 영화를 세 편이나 보던 열성 팬 시절이 있었다. 요즘엔 한 해에 세 편 보기도 어렵다. 영어의 ‘무비 고잉’이란 말처럼 영화는 그냥 보는 것이 아니라 나가서 보는 것. 나이를 먹으면 보고는 싶어도 ‘나가는 것’이 쉽지 않다.

늙어가는 사람에게 그냥 앉아서 영화를 볼 수 있는 DVD의 개발은 비아그라 못지않은 복음이라 생각되는데 망령된 말일까. 덕택에 나는 청년 시절만은 못해도 장년 시절 정도는 영화 보는 횟수를 회복할 수 있게 됐다.

아직은 매우 빈약한 영화 체험이기는 하다. 그럼에도 나는 한 가지 사실을 발견하고 그를 반기며 평가하려 한다. 한국영화의 색채가 당혹하리만큼 화려해졌고 아름다워졌다는 사실이다.

가령 이번에 역대 관객 동원 기록을 갈아 치운 ‘왕의 남자’―물론 사람마다 보는 시각이 다르겠지만―는 나에겐 무엇보다도 영화 화면의 화려한 색채가 강렬하게 각인됐다. 그래서 우리에겐 너무나도 이질적인 중국의 경극(京劇)―눈이 따가울 정도로 극채색(極彩色)을 쓰는―의 패러디를 ‘왕의 남자’에서 잠시 보여 주어도 이젠 경극의 색채와 우리 영화의 색채에 단절감 같은 걸 느끼지 않게 된 데에 나는 사뭇 놀랐다.

짧은 한국영화 편력에서 처음 색의 아름다움을 발견한 것은 김기덕 감독의 ‘봄 여름 가을 겨울 그리고 봄’―그것은 철마다 강산의 색상이 선명하게 변화하는 한국의 ‘콰트로 스타지오니(사계절)’를 눈으로 들려주는 것만 같았다.

김 감독이 보여 준 것이 한국의 만고강산 ‘자연’의 아름다운 빛깔이라면 한국의 전통적인 문화의 아름다운 색깔을 보여 준 수작이 내게는 이재용 감독의 ‘스캔들’이다. ‘조선남녀상열지사’란 부제로 서양 소설 줄거리를 번안한 이 영화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서 보여 주는 전통 한복, 장신구와 소도구들의 전아한 색상, 화려해도 지나치지 않고 주위 사방과 앞뒤 흐름이 잘 조화된 색상이 일품이었다.

‘색’의 르네상스―한국 문화가 이제 제대로 대담하게 색을 쓰게 된 것일까. 이미 200년 전에 혜원(蕙園) 신윤복은 조선조 전통 회화의 유현(幽玄)한 수묵담채의 어둠과 주자학적 리고리즘(근엄함)에서 벗어나 화려한 색을 그의 풍속도에 대담하게 끌어들였다. 컬러와 에로티시즘이라는 2중의 의미에서 색을.

그러나 혜원은 조선시대 회화사에선 아무래도 예외적 존재로 보인다. 색채는 조선 회화, 또는 더욱 넓은 의미에서 한국 문화의 장기라곤 하기 어려울 듯하다. 한국을 무척이나 사랑했던 일본의 야나기 무네요시(柳宗悅)도 동양 3국의 예술 기조(基調)를 한국은 선, 일본은 색, 중국은 형태라고 정의한 일이 있다. 나는 야나기의 가설이 전혀 틀렸다곤 보지 않는다.

그러나 만일 야나기가 조선시대에 앞선 고려시대의 불화를 보았다면, 또는 조선시대에 산속으로 숨은 사찰들을 보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전후 일본의 동양 불교사 권위, 한국에도 자주 온 도쿄대의 가마다 시게오(鎌田茂雄) 교수는 그의 ‘한국고사순례’라는 책에 “한국의 사원을 보고 가장 놀란 것은 그 색채였다”고 적고 있다. 우리나라 절간의 단청 빛깔을 보고 그는 “한반도에는 무언지 중국과 일본과도 다른 독자적인 불교문화가 존재한다는 것을 느끼며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고 고백하고 있다. 사실 일본의 나라나 가마쿠라의 옛 사찰들을 둘러보고 그 빛깔의 어두운 모노크롬(단원색)을 우리나라 절들의 화사한 무지갯빛 폴리크롬(다원색)과 견주어 본다면 가마다 교수의 말을 실감할 수 있다. 한국 문화에서 색은 몰랐던 것이 아니라 다(茶)처럼 잠시 조선시대 동안 산에서 숨어있었다고 하면 잘못일까.

한국문화에 색이 다양해지고 아름다워진 것은 좋은 일이다. 욕심을 부린다면 한반도의 정치도 유일체제 북쪽의 모노크롬이나 좌우, 보혁이 양극화하는 남쪽의 흑백화면에서 벗어나 이념과 정책이 다채롭고 넓은 스펙트럼을 보여 주었으면 하는 것이다.

최정호 객원大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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