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정호 칼럼]선택과 집중, 동계올림픽의 추억

  • 입력 2006년 3월 9일 03시 00분


코멘트
이탈리아 토리노의 동계올림픽 성화대 불이 꺼진 지도 열흘이 지났다. 대관령의 스키장 눈마저 녹기 전에 사사로운 추억의 동계올림픽 얘기를 적어 둬야겠다.

금메달 6개로 종합 성적 7위를 기록한 이번 토리노의 대첩. 그것은 많은 국민을 감동시킨 쾌거요, 새해의 큰 선물, 2006년의 빅이벤트였다.

17회 노르웨이 릴레함메르대회(1994년)에서 6위, 18회 일본 나가노대회(1998년)에서 9위를 했으나 19회 미국 솔트레이크시티대회(2002년)에선 14위로 밀려난 한국의 동계올림픽 성적이 이번 토리노대회에서 7위를 기록하며 다시 10위권 안으로 당당히 진입한 것이다. 그것은 기쁜 일이요, 경사다. 그러나 필자는 지금 그것을 얘기하려는 것이 아니다.

내가 처음 동계올림픽을 참관한 것은 1964년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의 9회 대회 때. 지금부터 40여 년 전 일이다.

인스브루크에서 토리노까지…. 한국은 그 사이 선택과 집중, 그리고 압축 성장을 통해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만들어 냈다. 이러한 한국 현대사를 가장 가시적으로 시위해 주는 것이 내게는 한국의 동계올림픽 성적표라고 생각돼 별난 감동에 젖곤 한다. 요즘 젊은이들에겐 토리노의 7위는 단순히 10위권 안으로 ‘재진입’한 것으로만 보일지 모른다. 그러나 내겐 그렇지 않다.

인스브루크대회는 가난한 나라 한국, 1인당 국민소득 100달러의 후진국인 한국을 국제사회에 선명하게 부각시켜 우리의 알몸을 깨닫게 해 준 체험으로 내겐 기억되고 있다. 한국 선수단은 개막식 직전에 도착하여 꼴찌로 선수촌에 입촌했다. 임원까지 합쳐 겨우 10명 남짓한 우리 선수단은 새하얀 눈판 위에 화려한 원색의 유니폼이 수를 놓는 개막 행사의 입장식에서 우중충한 잿빛의 코트를 축 늘어지게 걸친 차림부터 우울하기 그지없었다. 그건 마치 없는 살림에 기성회비를 겨우 챙겨 오느라 지각 등교한 가난한 시골 학생의 모습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인스브루크대회에선 북한의 한필화가 스피드스케이팅 종목에서 동메달을 낚아채 센세이션을 불러일으켰으나 한국 선수단은 출전하는 종목마다 최하위의 성적으로 ‘전멸’했다. ‘체력이 곧 국력’이란 말이 실감났다. 남과 북이 제대로 된 아이스링크 하나 없었는데도 한필화의 메달은 그래도 압록강 두만강의 결빙기가 남쪽보다 길기 때문이란 우리 임원들의 해명에 그저 고개를 끄덕였던 생각이 난다.

당시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장은 올림픽의 아마추어리즘과 ‘5대륙 오륜’의 이상을 마지막까지 지키려 한 이상주의자 에브리 브런디지. 그는 성탄절에 눈이 오는 지구의 북반부, 제3세계는 배제된 채 오직 북미와 유럽의 백인들만이 참가하는 ‘이 빠진 동계 오륜’을 아예 폐지할 것을 주장했다는 얘기도 들렸다. 사실 1924년 1회 대회 이래 82년의 역사를 가진 동계올림픽은 일본 삿포로에서 1972년에 개최된 11회 대회 때 단 한 차례 일본이 스키점프에서 금메달을 딴 뒤 다시 20년 동안이나 오직 백인들만의 잔치였다.

전기가 1992년에 왔다. 쇼트트랙 종목이 도입된 16회 프랑스 알베르빌대회 때 한국이 금메달 2개를 따 비(非)백인 국가에서 처음으로 종합 성적 10위권에 입성한 것이다. 문자 그대로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는 기적이 일어난 셈이다. 한국인의 체질에 맞는 쇼트트랙 종목을 잡은 ‘선택과 집중’ 전략이 주효한 것이다. ‘한강변의 기적’을 낳은 한국 경제의 성장 전략처럼.

인스브루크의 아픈 추억이 있었다고는 하나 늙은 나이에 동계올림픽이 어쩌고저쩌고 한다는 것은 한참이나 점잖지 못한 객담인 줄은 알고 있다. 심지어 이 땅에서 벌어진 월드컵대회 때 한국이 4강에 올라 온 나라를 열광의 도가니로 만들고 온 국민을 명정(酩酊) 상태에 빠뜨린 2002년 여름에도 한국 팀이 출전한 게임을 포함해 단 한 차례의 TV 중계도 안 보았다는 한국인도 있는 판이다. 한국 영화계의 젊은 마이스터 박찬욱 감독. 나는 그의 월드컵 무시와, 그것을 그대로 고백하는 배포에 감동했다. 그러나 모든 걸 버리고 한 일에만 몰두하는 ‘박찬욱식 선택과 집중’에는 더욱 감동 먹었다.

최정호 객원大記者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