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 세상/조성배]인공생명, 사람의 벗이 된다면

  • 입력 2008년 11월 17일 02시 50분


과학이라고 하면 왠지 딱딱한 이미지에 흑백을 명백히 다루는 분야라서 생명과 같이 다소 애매하고 신비로운 대상을 다루기에는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인공생명’은 생명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과학적으로 답해 보려는 분야이다. 1987년 인공생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크리스토퍼 랭턴이 주최한 학술회의를 시작으로 지난 20여 년간 인공생명에 대한 다양한 해석과 방법을 연구했다.

현재의 기술 수준에 비추어 볼 때 고등 생명체의 인공적 창조는 요원한 꿈에 불과하다. 하지만 현존하는 생물체의 분석에 치우친 전통적인 방식에서 벗어나 생명의 속성을 바탕으로 단순한 것이라도 합성해보려는 시도는 생명에 대한 새로운 시각을 제공할 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다양한 실질적 응용을 가능하게 한다. 자기복제, 자기조직화, 진화 등 생명체가 보유한 원천적 속성을 컴퓨터나 로봇에서 실현할 수 있다면 이제껏 공학기술로 제작된 융통성 없는 시스템이 한층 유연하고 인간 친화적으로 변한다.

최근에는 그래픽과 특수효과가 배제된 영화를 보기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인데, ‘반지의 제왕’이나 ‘매트릭스’에서 볼 수 있는 수많은 군중의 집단행동은 너무나도 자연스러워 실사가 아닌가 하는 착각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만일 군중의 일원을 하나씩 그래픽으로 그렸다면 그와 같이 자연스러운 영상이 가능했을까. 실제로는 개체의 기본행동과 다른 개체의 관계에 대한 기본적인 규칙만 명시하고 이들의 집단행동이 자발적으로 생성되도록 하는 인공생명의 기법을 사용했다.

이와 유사한 시도가 젊은 사람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끄는 컴퓨터 게임 분야에서 활발하다. 요사이 게임은 현란한 그래픽과 통신기술의 발전으로 다수의 사용자가 동시에 게임을 즐기면서 훨씬 흥미로워졌다. 하지만 게임이 거듭됨에 따라 그럴듯하게 보이던 캐릭터의 프로그램된 작위성이 간파되고 나면 재미가 크게 반감하는 문제를 안고 있다. 게임에 등장하는 캐릭터가 생명체처럼 행동한다면 훨씬 몰입이 가능한 재미있는 게임이 가능하다.

인공생명 게임을 표방한 소포어는 캐릭터 모양의 진화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게이머는 게임을 진행하면서 성과에 따라 자신의 캐릭터를 진화시킬 수 있다. 발을 좀 더 빠르게 진화시켜 이동의 신속성을 추구할 수도 있고 억센 이빨로 진화시켜 다른 생명체와의 전투에서 우위를 얻을 수 있는 등 다양한 형태의 진화가 가능하다. 독자적인 캐릭터 모양의 진화는 또 다른 인공생명 게임인 ‘심즈2’에서도 볼 수 있다. 시간에 따라 성장하고 늙어가는 생명의 가장 근원적인 생리현상을 게임의 요소로 추가하였다는 점에서 돋보인다.

캐릭터의 모양뿐만 아니라 고유의 감정과 정체성을 부여하여 게이머와 교감하도록 하는 게임도 있다. 게이머의 다양한 선택에 따라 캐릭터의 행동양식이 변화하는 ‘블랙 앤드 화이트’ 게임에서는 캐릭터가 단순히 생존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도덕적인 것까지 고려한 행동이 가능하게 진화하여 학습시킨 게이머조차 예측할 수 없는 행동을 보인다. 이를 더욱 발전시키면 천편일률적인 권선징악의 스토리 라인에서 벗어나 게임을 할 때마다 다양한 경험과 색다른 재미를 얻을 수 있다.

인공생명의 연구는 게임에만 국한되지 않고 생명체의 속성을 갖는 컴퓨터 내의 개인비서로 발전하여 개인의 일정을 관리하고 고민을 털어놓고 교감할 수 있는, 자신을 가장 잘 아는 친구가 될 수 있다. 또 이러한 기능을 로봇에 부여하면 인간성을 상실해가는 척박한 세상에서 공간적인 이동까지 가능한, 나만의 벗이 생겨 현대인의 소외감이나 우울증을 해소하는 데도 기여할 수 있지 않을까 희망해 본다.

조성배 연세대 교수·컴퓨터과학과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