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호택 칼럼]‘위장간첩 사실증명’ 北 보위부서 받아오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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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우성과 北 아버지 통화 감청… 국정원, 법정 증거로 제출 못해
간첩 행적은 중국 북한에 있고…
자백이 거의 유일한 증거일 때 유죄판결 받기 점점 어려워져
위장간첩 자백한 보위부 공작원… ‘민변’ 접촉하고 나선 부인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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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자로 위장해 한국에 들어온 재북(在北) 화교 출신 유우성 씨는 간첩일까 아닐까. 1심 재판부는 간첩이라는 증거가 부족하다고 결론을 내렸다. 1심은 “간첩이라는 의심이 들기는 한다”면서도 “간첩 사건도 일반 형사사건처럼 공소사실에 대한 합리적 의심을 배제할 만큼 엄격한 증거를 요구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그러나 2심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수사 검사 전체가 다시 검토한 결과 간첩이 분명하다”고 강조했다.

서울시 공무원으로 근무하던 유 씨는 탈북자 관련 자료를 수집해 북한에 넘겨준 혐의를 받고 있다. 국가정보원이 압수수색한 그의 컴퓨터에는 ‘북한인권실태 고발 탈북자’ 26명의 명단도 들어 있었다. 그의 여동생 유가려 씨는 판사가 주재한 증거보전 절차에서 오빠의 간첩행위를 인정하는 진술을 했다가 나중에 법정에서 부인했다.

국정원이 법정에 제출한 서류가 위조로 드러나면서 2심 재판의 전망은 더 어두워졌다. 국정원으로선 힘들게 수사한 사건이 무죄로 나와 안타까웠겠지만 2심에서 또 무죄를 받는 한이 있더라도 문서 위조 같은 짓은 하지 말았어야 한다.

국정원은 법정에 제출할 수 없지만 또 다른 유력한 증거를 갖고 있다고 한다. 국정원은 안보 목적을 위해 고등법원장의 허가를 받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한국 거주자가 외국과 통화하는 전화를 감청할 수 있다. 국정원은 유우성이 북한의 아버지와 통화하는 내용을 감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감청된다는 것을 의식해 우회적인 표현을 썼지만 대화의 전체적 내용은 북한 보위부와 연관된 것이 분명했다. 유우성이 법정에서 보위부와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일관되게 부인한 것과는 상치되는 증거다. 그러나 통신비밀보호법상 안보 목적 감청자료는 수사나 재판에 제공할 수 없다.

국가안보를 위한 외국인 도감청은 세계 어느 나라나 다 하는 일이다. 한국의 정부 관리나 기업인들도 외국에 나가면 모두 도청당한다는 생각을 하고 대비해야 한다. 북한에서는 호텔방 대화까지도 도청한다. 그렇지만 한국이 “우리도 외국 기관이나 요주의 외국인을 상대로 도감청을 한다”고 스스로 까발릴 수는 없는 노릇이다.

미국 국가안보국(NSA)은 에드워드 스노든의 폭로로 미국 내 외국 대사관, 미국을 방문 중인 외국 국가원수들의 전화와 e메일을 도청했음이 드러났다. 도청 대상엔 우방국인 독일의 앙겔라 메르켈 총리까지 포함됐고 한국도 도청당한 것으로 밝혀졌다. NSA는 심지어 안보 정보가 아닌 산업 비밀까지 도청했다. 9·11테러를 겪은 미국에서 NSA의 도감청을 비난하는 분위기는 없다. 다만 들키지 말았어야 할 일을 들킨 것이 문제다.

검찰은 최근 북한 보위부 출신 공작원 홍모 씨를 탈북자로 위장해 침투한 혐의로 기소했다. 홍 씨는 거짓말 탐지기 통과 훈련까지 받고 내려왔지만 국정원의 중앙합동신문센터에서 탄로가 났다. 그는 수사 과정에서 중국에서 탈북자를 납치해 북송하는 일을 하다 보위부의 지령을 받고 잠입한 위장 간첩임을 자백했으나 최근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변호인들과 접촉한 후 진술을 번복했다.

그는 한국에서 간첩 행위를 하기 전에 체포됐기 때문에 그가 간첩임을 증명할 수 있는 행적은 모두 중국과 북한에 있다. 그는 담당 검사에게 “북한 가족의 안위를 확인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확인이 안 된다”는 답을 듣고 낙담했다. 그가 보위부 간첩임을 자백함으로써 북한 가족이 고통 받는 것을 두려워하던 터에 “자백 외에는 다른 증거가 없기 때문에 부인하면 무죄 받을 수 있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흔들린 것이다. 김성호 전 국정원장은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혁신연대 초청 간담회에서 “민변이 마치 하수인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고 비난했다.

유우성 씨 사건 법정에서 비공개 증언을 했던 보위부 공작원 출신 탈북자 A 씨는 증언 내용이 북에 유출되면서 가족이 보위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고, 지금은 행방불명 상태라고 말했다. A 씨 말대로라면 북이 유 씨에게 불리한 진술을 막기 위해 법정 증인을 위협하고 있다는 이야기가 된다.

국가안보를 위태롭게 한 간첩일지라도 헌법과 법률에 따라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가 있다. 그리고 판사가 증거가 미흡하다고 판단하면 무죄다. 그러나 이러다가는 위장간첩이라는 ‘사실 증명’을 북한 보위부에서 받아오지 않으면 눈 번히 뜨고 간첩을 놓아주는 일이 계속 벌어질 것이라는 우려가 생긴다.

황호택 논설주간 채널A 시사프로 ‘논설주간의 세상보기’ 진행 hthw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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