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규철칼럼]‘왜 대통령이 되겠다는 건가’

  • 입력 2001년 12월 5일 18시 27분


‘왜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인가.’

다음 번 대통령선거에 나서겠다는 사람들 모두에게 꼭 물어 보고 싶은 말이다. 왜 그런 소리를 하느냐고 할지 모르지만 그야말로 모르는 소리다. 대통령이 되어야 하는 이유는 많은 사람이 자주 물을수록 좋다. 우리는 그동안 대통령선거에 나서는 수많은 후보들에게, 특히 정작 대통령이 된 사람들에게도 이런 질문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다 아는 것인데 새삼스레 물을 필요가 있느냐’고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 최근 한국 사회가 처해 있는 안팎의 어렵고 힘든 지경을 생각해 보라. 그런 험한 꼴을 당하게 된 원인 중 하나가 그때 대통령이 되려는 이유를 좀더 꼬치꼬치 묻지 않았기 때문이다. 대선에 나서겠다는 사람들에게 막중한 대통령직에 대한 긴장감을 주지 않은 만큼 사회 전체가 어려움을 겪는 것 아니겠는가. 한마디로 ‘대통령 검증’이 부실했기 때문이다. 그때 국정의 엄중함을 매몰차게 짚었더라면 마음가짐도 달리 했을 것이고 훗날 실책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부실 검증의 뼈아픈 경험▼

대통령후보가 되려는 사람이라면 훌륭한 분일 터이고, 게다가 지연이나 학연이 닿는 사람이라면 더욱 훌륭한 분일 테니 더 따지고 말고 할 필요도 없다는 것이 선거 때마다 우리가 겪어온 솔직한 현실이다. 이쯤 되면 지지는 더욱 단순해지면서 거의 맹목적이 되고 만다. 그 와중에서 후보 검증과 대통령 검증은 흐지부지되게 마련이다. 언론매체의 검증 질문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후보들을 긴장시키면서 유권자들이 캐묻고 싶었던 내용을 제대로 끌어냈느냐에 대해서는 선뜻 대답하기가 어렵다.

정치를 한다는 사람들에겐 여느 사람들과는 다른 동물적인 감각이 있다. 평소엔 아무 생각없이 보내는 듯해도 남들이 눈치채기도 전 일찌감치 선거일을 겨냥해 재빨리 ‘돌격’자세를 취하는 것을 보면 기가 막힌다. 1년 후, 2년 후를 내다보는 정책 개발엔 힘들어 하지만 선거일을 앞두고 ‘D-며칠’식으로 따져 가는 역산술(逆算術) 역시 뛰어나다. 5년을 기다린 대선이니 그 조급함을 알 것도 같다.

대선을 1년여 앞두고 지금 여권의 집안 사정은 대단히 어수선하다. 7, 8명이 직간접으로 대선후보 경선에 나설 의사를 밝히고 있다. 지난번 선거 당시 여당의 ‘구룡(九龍)잔치’에 육박하는 수준이니 아무래도 ‘글쎄’다. 다른 정파에서는 물론, 선거가 임박하면 무소속 후보도 나올 수 있다. 대선 나서는 데 결격 사유가 없다면 누구라도 출마할 수 있다지만 대통령 지망생이 많다는 것은 왠지 씁쓸한 맛을 준다. 대통령직이 인기직이어서 몰리는 것은 분명 아닐 터인데, 떨어져도 좋으니 한번 출마해보자는 것인지, 그렇다면 대통령직이 그 정도로 평가 절하됐다는 것인지 께름칙하기까지 하다. ‘나라고 한번 나서지 말란 법 있느냐’는 객기에서 장삼이사(張三李四)가 여기저기서 기웃거리는 풍토가 된다면 참말로 황당하다. 가뜩이나 국민적 믿음이 옅어져 가는 정치판에 그런 바람까지 불어대면 선거부터 희화화(戱畵化)되면서 한국 정치는 그야말로 왜소(矮小)해지고 만다. 후보 검증과 대통령 검증의 필요성을 재삼 강조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국민 얕보는 짓 말라▼

가장 무서운 검증은 자기 검증이다. 장단점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자신말고 또 누가 있겠는가. 먼저 후보 경선에서 이길 수 있는가를 솔직히 판단해야 한다. 임시 방편으로 지지자를 급조해서 요새 그 흔한 세몰이나 해댄다고 이길 수는 없지 않은가. 주변 부추김도 있고 하니 이름 한번 걸어보고 여차하면 연합이니 연대니 하는 당내외 흥정에서 몸값이나 올려 볼 요량이라면 그것은 국민을 여간 무시하고 깔보는 것이 아니다. 그야말로 용서받지 못할 야합이요, 정상배나 할 짓이다. 대부분의 경우 후보지망자들은 ‘나는 누구인가’를 내세운다. 그런데 그것은 안팎으로 새로운 지평을 열어 가는 창의적 국가경영 능력을 보증해 주는 것은 아니다. 그동안엔 호소력이 있었던 민주화투사 대통령들로부터 우리는 그 허실(虛實)을 눈으로 확인했고 생활에서 뼈저리게 체험했다. 그 고통과 혼란은 검증을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국정 비전을 제시한다고 깃털장식 요란한 말 몇 마디로 엮어낸, 검증 안된 구호가 통하는 시대도 지났다. 예전 유권자가 아니다. 저질상품은 한눈에 고를 줄 아는‘정치소비자’란 말이다. 자기 검증부터 무섭게 하라. 그래도 후보로 나서겠다면 다시 묻는다. ‘왜 대통령이 되겠다는 것인가.’

<논설실장>ki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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