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전영애]사랑도 예금 잔액처럼 아껴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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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5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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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영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전영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5월에는 이름 붙은 날이 많고 행사도 많아 누구든 가족이며 사제, 또 다른 사람 간의 관계를 다시 생각해 보게 된다. 어린이날이며 어버이날, 스승의 날 같은 좋은 날들을 사랑과 애틋함으로 맞이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거기에는 늘 얼마만큼 부담이 따르는 것도 사실이다. 무얼 해야 하나, 또 무슨 선물을 사야 하나, 정말 찾아뵐 시간이 안 되는데, 형편이 안 되는데 어쩌나 등등. 그런 근심은 형식적인 관계일수록 더 클 수밖에 없다. 그러다가 이제 찾아뵐 분들이 세상에 별로 남지 않게 되었을 때의 쓸쓸함과 회한 또한 그만큼 크다.

쌓이고 쌓인 온갖 일로, 또한 그 모든 사랑의 부담으로도, 헐떡이며 살았던 젊은 날들을 이제 돌아보며 생각해보면 사실 내가 준 것, 드린 것보다는 받은 것이 너무나도 많아 참으로 부끄럽다. 변함없이 귀하게 간직하고 있는 물건들을 둘러본다. 몇 가지에만 눈길을 주어도 지금껏 나를 지탱해온 큰 힘이 어디서 왔는지를 알게 된다.

아주 작은 접시에 담겨 내 방 작은 유리장 안에 고이 간직되어 있는 2cm도 안 되는 몽당연필. 언젠가 몹시 지쳐서 빈손으로, 딸과 함께 먼 나라의 기차 안에 앉아 있었을 때, 아직은 같은 기차를 타고 있지만 곧 그 기차가 다음 정거장에 닿으면 내려서 차를 갈아타고 아주 멀리로 갈 딸이 문득, 자기가 가지고 있던 연필 한 자루를 부러뜨려 나에게 건네준 것이다. 딸도 마침 연필 한 자루밖에는 필기도구가 없었다. 글을 쓰며 피로감을, 고독을, 온 인생의 짐을 져가라는 말없는 당부였다. 그 작은 몽당연필로 대단한 글을 쓰지는 못했다. 그러나 인생을 감내한 것 같다. 글을 쓰며, 사랑하는 사람들을 생각하며.

추억 깃든 평범한 선물의 감사함


내 집에 오는 귀한 손님들에게 보여주곤 하는 고운 보자기에 싸서 간직하고 있는, 낱장으로 흩어질 만큼 낡은 한지 책은 어머니가 붓글씨로 필사하신 것이다. 말할 수 없을 만치 고난의 생애를 보내고 가신 어머니는, 저런 글을 호롱불 밑에서 읽으며, 또 다른 이들에게 읽어주며, 삶을 견디셨던 것 같다.

마른 꽃다발 하나. 9개월에 걸쳐 1만 km를 훨씬 넘게 내 손에 들려 다니다 이제 책장 안에 자리를 잡고 있다. 커다란 노란 장미 다발인데, 작년에 큰 상을 하나 받게 되었을 때 존경하는 시인이 보내준 것이다. 그게 귀해서, 독일 바이마르에서 독일 서남쪽 끝 프라이부르크로, 거기서 다시 동남쪽 끝 파사우로, 다시 거기서 서쪽 프랑크푸르트로 해서 서울까지 바스러질세라 조심조심 들고 왔다.

어느 제자로부터 선물 받은 책 한 권. 황송하게도 ‘스승이자 친구이자 어머니인 선생님께’란 글귀가 적혀 있어 값진 책이 되었다. 그리고 책상 위 두 개의 시계. 평범한 탁상시계이지만 어떤 제자가, 내가 1년의 절반 가까이 가 있어야 하는 독일의 시간과 미국에 있는 내 딸의 거처의 시간에 맞추어서 가지고 온 것이어서 내게는, 세상 그 어느 명품도 감히 넘보지 못할 귀중품이다. 지금 내 집 지붕을 뒤덮은 등나무 역시, 언젠가 학교에서 어느 학생이 주워다 준 씨앗을 심어 싹튼 것이어서 그 어떤 희귀 정원수보다도 귀한 나무다.

그 작은 것들에는 하나같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내게 준 기쁨이 간직돼 있다. 살면서 받은, 헤아릴 수도 없는 이런 작은 선물들을 돌아보노라면, 가끔씩 치미는 이런저런 불평불만이나 삶에 대한 회의는 터무니없어 보인다. 이 작은 사랑의 징표들이 나를 삶에 붙들어두는 주인공인 것도 같다.

그런데 왜 나 자신은 무슨 날이 되면 그럴듯한 선물을 하기 위해 평생 그토록 조바심했던가. 무언가 생색나는 선물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것 같다. 선물조차도 금방 가치가 평가되고 가격이 매겨질 것만 같은, 또 정말로 그렇기도 한 시류 탓도 있겠고 나를 돋보이게 하려는 허영심도 얼마만큼은 작용했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정말 소중히 간직하고 있는 물건들은 정작, 물건값과는 전혀 무관한 것이다.

생색내기 위한 조바심부터 버려야


온갖 형태로 사랑의 마음을 전하고 싶은, 또 조금은 전해야만 하는 5월, 사랑의 표시가 어떠해야 할까를 다시 생각해본다. 그건 아마도 처음 마음을 담는 일일 것이다. 빚을 내듯 무리를 해서, 심지어 일말의 미움까지 섞어서, 어떤 물건을 마련한다는 것은 누구든 오래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물건도 마음도 형편만큼, 분수만큼이어야 할 것은 사실 자명한 이치다. 어쩌면 사랑의 마음이야말로 예금 잔액처럼, 아니 예금 잔액보다 훨씬 더, 바닥나지 않도록 조심스레 아끼며 지키고, 또 늘려가야 할 무엇인 것 같다. 무엇보다 받는 사람이 귀하고 소중하게 헤아려야 할 것인 것 같다.

전영애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문화 칼럼#전영애#사랑#선물#가정의 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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