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최명애]우리 집 가훈은 ‘책이 필요해’

  • 입력 2008년 1월 12일 02시 56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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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해 첫날 친척집을 방문했다. 자녀 교육에 대한 열의가 큰 가정이다. 하는 일이 출판이다 보니 남의 집을 방문하면 제일 먼저 관심이 책장으로 간다. 거실 중앙에 TV 대신 큰 책장이 있고 책이 빼꼭히 꽂혀 있다. 누구나 알 만한 유명한 책들과 전집류가 자리를 대부분 차지했다.

‘어느 집 서가나 똑같구나’ 생각하는데 초등학생 조카아이가 내 손을 끈다. 자기 방에 가더니 책을 빼서 자랑하듯 펼쳐 보였다. 유명한 독서논술학원이 펴낸 두꺼운 추천도서 목록이다. “고모, 유행은 좀 지났지만 여기에 우리가 읽어야 할 추천도서가 있어요. 히히…. 2006년 거예요.” “유행?”

우리는 여기저기서 추천도서 목록을 흔히 접한다. 추천도서란, 말 그대로 읽고 평가해 보고 결정한 훌륭한 책이다. 책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없는 독자로서는 추천도서 기준으로 책을 고르는 것이 편하고 안전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구동성으로 들이대고 유행처럼 누구나 다 같이 읽도록 하는 추천도서에서 한 번쯤 눈을 돌려, 다양한 다른 책에 관심을 가져 보는 것은 어떨까?

요즈음 기업에서 추구하는 다양화는 미래 교육에서도 중요한 이슈다. 세계화에 이어 다양화는 미래의 리더에게 필수적인 과제다. 이것저것 볼거리가 많은 우리 독서문화에도 다양성을 적용해 보자. 추천된 똑같은 책을 읽고 똑같은 주제를 뽑아내고 똑같은 훈련을 하는 것은 어쩌면 획일화된 교육일지도 모른다.

한 아동문학 평론가는 이런 말을 했다. “전국에 있는 우리 아이들 마음에 꼭 같은 파란 유니폼을 입히는 것을 상상해 보세요. 모두 같은 책을 읽고 논술이라는 형태로 비슷하게 학습되는 것도요. 끔찍하지 않아요? 전 그래서 책을 추천하지 않는답니다.”

어린 시절 독서 습관이 중요한 것은 책에서 얻는 그 무엇이 개개인의 가치관 확립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책이 사람을 만들고 사람이 책을 만든다고 할 정도로 어려서 만나는 책들은 중요하다.

어린이가 읽는 책은 부모가 고르게 돼 있다. 처음은 그렇게 시작한다. 그만큼 부모의 안목이 중요하다. 아이에게만 독서를 권할 것이 아니라 부모부터 우선 독서의 가치에 대해 깊은 이해와 높은 안목을 갖는 훈련이 필요하다. 돈으로 책을 사는 게 아니라 눈으로 책을 고르는 것이므로 부모의 노력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광고 홍보나 입소문을 통해 잘 알려진 책을 보는 것도 좋지만, 아이와 함께 서점에 가서 구석구석 관심 있게 살펴보길 권한다. 널리 알려지진 않았지만 혼을 담은 명작을 찾는 재미를 누릴 수 있을지 모른다. 이런 작품들을 집어내는 일은 소비자로서 독자의 권리이기도 하다.

부모가 추천한 책을 자녀가 읽다 보면 어느새 그 자녀에게서 부모가 책을 추천받는 신기한 경험을 하게 된다. 그렇게 가족 모두가 독서에 참여하면 굳이 따로 대화의 시간을 마련한다고 법석 떨 필요도 없게 된다.

책이라는 가장 좋은 매개를 통해 서로의 마음이 흐르고 생각을 전하게 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그게 바로 공감이고 토론이다. 그러다 보면 자연 가족구성원의 공통 관심사도 알게 되고 가족 간의 커뮤니케이션 또한 활발해진다.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을 책으로 하게 된다. ‘대화가 필요해’ 하면서 늘 밥숟가락만 입에 넣고 있는 일가족이 TV 개그 코너에 나오는데, 아마 거기에 책이 등장한다면 얘기가 좀 달라지지 않을까.

올해는 ‘책이 필요해’라는 가훈을 삐뚤빼뚤하게라도 써 보자. 그리고 그 밑에 우리 가족만의 추천도서 목록을 작성하는 거다. 연말쯤에는 책꽂이에 우리 가족만의 책이 멋지게 모여 있을 것이다.

최명애 큰나출판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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