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최병식/'제2의 백남준' 원치 않는가

  • 입력 2003년 4월 25일 18시 3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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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고등학교에 특강을 나간 적이 있다. 학생들에게 “흰색을 연상하면 무엇이 생각나느냐”고 물었더니 한 학생이 킥킥 웃으면서 “앙드레 김요”라고 대답했다. 그 천진한 모습을 보면서 기발한 상상력에 두 손 들어버렸다.

▼학생은 기발한데 교육은 경직 ▼

학생들은 이렇게 기발한데, 우리의 교육은 왜 그렇게 경직되어 있는가. 교육당국은 7차 교육과정에서 교사와 학교의 재량 활동과 교과 선택권을 부여하는 등 교육개혁을 위해 나름의 노력을 기울였다. 그러나 정작 학생들의 창의성과 정서교육의 핵심인 예술, 체육 분야는 오히려 축소됐다. 그 결과 주당 1시간씩만 실기를 해야 하는 학년이 대부분이다. 이래서는 예체능 교육이 형식적으로 이뤄질 수밖에 없다. 이 제도를 일정 기간의 실험이나 폭넓은 의견 수렴도 생략한 채 실행한 졸속성도 문제지만 ‘21세기가 문화의 시대’라는 대전제를 완전히 역행하고 있다. 그야말로 뿌리는 말라 가는데 열매의 수확을 어떻게 기대하겠는가.

설상가상으로 이번에는 교육인적자원부가 ‘사교육비 경감대책’이라며 예체능 교과목 서열식 평가방식 폐지를 들고 나왔다. ‘점수가 없는 예체능 수업’의 결과는 아마도 학교 예체능 수업의 유명무실화일 것이다. 음악 시간에 영어 단어를 외우고, 체육 시간에 수학 공식 하나라도 더 외우는 식으로 변질되어 결국 예체능 과목은 수험생들에게 입시 준비에 거추장스러운 걸림돌로 치부될 것이다. 누가 대입 내신에 반영되는 시험을 앞두고 점수도 없는 과목 공부에 열중하겠는가.

또 하나의 문제는 예체능에 장래를 건 수많은 꿈나무들이 좌절감과 패배감을 맛보아야 한다는 점이다. 자신들이 가장 중시하는 전공과목이 내신 점수에도 못 들어간다는 현실을 이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교육당국자는 단 한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소수 부유층 학생의 예체능 사교육에 지출되는 비용은 전체 학생들의 국어 영어 수학 사교육비와는 비교도 안 된다. 현행 예체능 점수체계도 실기 기본점수로 약 70점을 부여하고 전체 평균을 80점 정도로 유도함으로써 점수 차가 크게 나지 않는다. 또 예체능 점수는 평소 수업 태도나 준비 상황을 수행평가에 반영하는 등 이미 상당한 객관성을 확보하고 있다.

우리가 예체능교육을 중시해야 하는 이유는 제2, 제3의 월드컵 신화나 백남준 조수미 박세리 박찬호 등의 탄생을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의 전반적 추세가 맹목적인 소득지표의 추구에서 정서적 삶을 갈구하는 쪽으로 전환해가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곧 문화에 대한 폭발적 요구가 생기고 있는 것이다. 디즈니사가 만든 애니메이션 ‘토이 스토리’ 한 편의 수익금이 1조2000억원으로 우리나라 문화관광부 1년 예산을 넘는다. 이제는 문화가 단순 취미의 차원을 넘어 국가의 전략산업으로 자리 잡고 경제를 리드하며 창출하는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이다. 중등 교육은 바로 이런 시대를 주도할 새싹들을 교육하는 토양인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문화예술 부문 선거공약의 요점은 ‘선진국 수준의 문화 인프라, 자유롭고 활기찬 문화예술인, 지원은 하되 간섭은 하지 않는 문화예술정책’이었다. 그래 놓고도 문화 인프라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예체능교육을 이렇게 무시해도 좋은 것인가. 자유롭고 활기찬 문화예술인들의 위상을 보장해주지는 못할망정 청소년들의 전인교육과 정서교육을 방해하고 무한한 잠재력을 가진 꿈나무들의 싹을 잘라버리는 정책을 내놓다니 뭐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예체능 ‘내신제외’ 시대흐름 역행 ▼

이번 교육부의 안은 새싹들의 정서를 삭막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학문의 불균형, 나아가 우리의 예술 체육 분야의 근간을 흔들어 놓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포퓰리즘적 퇴행적 정책보다는 오히려 철학이나 환경 등의 과목을 보강하고 특기적성 교육을 적극 활용해 공교육의 위상을 확보해 나가야 할 것이다. 물론 창의력 제고, 흥미 유발, 전문가 양성, 객관적 평가체계 등 교육의 질 관리와 시설 확충은 필수적이다.

최병식 경희대 교수·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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