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칼럼]류석우/치열한 작가정신 어디갔나

  • 입력 2003년 4월 18일 18시 04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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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즈음 미술인들의 공통된 대화 소재는 미술계의 불황이다. 1990년대 중반, 특히 외환위기가 시작되면서 미술시장은 찬바람이 체감될 정도로 경기가 가라앉았다. 그리고 그런 현상은 오늘에 이르기까지 점점 더 확산되어 회생불능의 지경에 이르고 있다.

여기엔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이라크전쟁과 한반도의 위기상황, 전 세계적 현상인 경제 불황과 맥을 같이 하는 국내 경기의 침체, 대다수 국민의 미술에 대한 무관심, 미술에 대한 정부의 미미한 지원 등이 그것들이다. 그러나 과연 이같이 미술계 외적인 이유만 있는 것일까. 그런 외부적 요인을 탓하기 전에 우리 미술계와 미술인들이 반성해야 할 점은 없는 것일까. 작가, 평론가, 화랑과 미술관, 미술협회와 화랑협회 등의 책임 또한 피할 수 없다고 본다.

▼俗人과 유행만 판치는 미술계 ▼

회화나 조각에 사진, 미디어아트, 판화, 건축, 서예까지 따져보면 우리나라 미술계 종사자들은 50만명 이상으로 추정된다. 적지 않은 수다. 그러나 그 많은 사람들 중 진정한 미술인은 몇이나 될까.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작가를 얘기해보자. 예술가의 본령이라 할 수 있는 올바른 작가정신을 지닌 이가 얼마나 될까. 참 애매한 표현 같지만 작업을 목숨처럼 아는 치열한 작가태도와 작가의식, 그리고 자긍심과 실험정신을 지닌 작가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오늘날 한국의 작가는 창작 외의 일에 너무 관심이 많다. 서구미술의 조류를 재빨리 흉내 내 보려는 작가들, 교수 되는 것이 생의 최대 목적인 것처럼 보이는 작가들, 무슨 단체나 조직활동에 더 관심이 많고 그 힘을 사용해 보려고 하는 작가들,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작업실을 가져야 자신의 위상이 높아지는 줄 착각하고 있는 작가들, 작은 이익에 연연해 지조나 자존심도 없이 행동하는 작가들…. 이런 작가들일수록 국가 사회의 어려운 현실엔 관심이 없다. 화가가 왜 그런 것들을 상관해야 하느냐는 것이 그들의 한결같은 생각이다. 화가, 즉 예술가니까 나라와 사회가 어떻게 되든 무슨 상관이냐고 한다면 적어도 “참, 예술가답구나!”하는 정도의 모습은 보여줘야 하는 게 아닐까.

그런 속된 생각에 찌든 작가들에게서 수작(秀作)이 나올 리 없다. 그 작품들은 이미 참다운 예술가가 아닌 속인(俗人)의 손 끝 재주로 만들어진 것이니 그저 장식품에 불과할 뿐이다.

근현대 우리 미술사를 장식하고 있으면서 많은 이들로부터 큰 사랑을 받고 있는 박수근 이중섭 구본웅 이인성 같은 작가들은 생전에 불우한 삶을 살았다. 그때 미술계를 좌지우지한 소위 미술권력을 행사한 작가들보다 이들이 오늘날 더 각광받는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많은 이들이 시류와 현실에 영합해 굴절될 때 이들은 오직 ‘예술이라는 종교’에 모든 것을 걸었기 때문이다.

물론 오늘날은 박수근 이중섭의 시대가 아니다. 단칸방에서 살림하고 작업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다. 작업비를 만들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해야 하고, 또 가족을 부양해야 할 무거운 짐이 어깨에 걸려 있다. 그러나 진정한 예술가라면 예술가로서의 자신을 지키려는 의식을 지녀야 하지 않을까.

왜 ‘황창배’가 죽어서도 그의 회고전에 구름처럼 사람들이 몰려들고 한결같이 그의 요절을 애석해 하는지 가슴으로 헤아려 볼 일이다. 그리고 스스로 유배 떠나듯 숨어 작업하는 작가들의 작품을 많은 이들이 좋아하는 까닭이 무엇인지 생각해 볼 일이다.

▼‘그들만의 잔치’ 관객 기대하나 ▼

우리 미술계의 침체는 이런 좋은 작가들이 많이 없다는 데에 그 이유가 있다. 물론 이를 작가 탓으로만 돌릴 수는 없다. 서구미술의 아류(亞流)를 이 시대의 미술인 것처럼 호도하는 비평가, 화랑, 미술관들에도 막중한 책임이 있다고 본다. 그래서 미술은 대중과 점점 더 멀어진다. 난해한 화두만을 끝없이 던지면서 자기네끼리 북 치고 장구 치니 관객이 있을 리 없다. 많은 이들이 공감하고 참여하는 신명나는 무대를 만들기 전에는 우리 미술판이 회생하기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이는 나 혼자만일까.

류석우 아트컴퍼니 '미술시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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