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대호]국회, 낡은 생각을 바꿔 제할일 찾아라

  • 동아일보
  • 입력 2016년 8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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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혹독한 무더위다. 카페, 은행, 도서관으로 피난 가는 사람도 많다. 주택용 전기요금 체계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힘든 부조리다.

오직 주택용에만 적용되는 징벌적 요금 체계는 전력이 부족하던 시절, 가정에 근검절약을 강요하고, 전력 소모가 많은 가전제품이 별로 없던 시대의 유물이다. 산업용보다도 더 저렴한 주택용 1단계 요금은 복지제도가 빈약하던 시대의 복지 수단이기도 하였다. 그런데 이런 전기요금 체계를 정당화하던 모든 조건이 변했다. 당연히 언론과 국회 상임위 등에서 오래전부터 지적해 왔지만 꿈쩍하지 않는다. 기득권을 잃는 집단의 반발을 견뎌 낼 소신과 용기가 없기 때문이다.

전기요금은 정치와 정부가 통제하는 수많은 가격의 하나다. 여기서 보여준 부조리와 무능, 무책임은 거의 모든 정부 통제 가격에서도, 국가 규제와 예산에서도 반복된다. 의료 수가, 철도·지하철 요금, 공무원 임금·연금, 진흥·육성 명목의 예산 등에는 오래전에 유효기간이 끝났지만 기득권 집단의 반발이 무서워 손을 못 대는 부조리가 많다. 특히 국회가 권한을 주로 상대 견제, 저지용으로 사용하다 보니 ‘내가 하고 싶은 것은 못 해도, 남이 하고 싶은 것은 확실히 막아낼 수 있는’ 비토권만 비대한 상황이 만들어졌다. 기업인들이 “13억 중국은 안 되는 게 없고, 5000만 한국은 되는 게 없다”고 통탄하는 이유다.

한국 정치는 있어야 할 곳에는 없고, 없어도 될 곳에는 있다. 국회의원의 임무를 아예 정부가 차려온 밥상 앞에서 반찬 투정하는 존재로 생각하는 의원도 많다. 집안 살림 형편, 식재료 수급 사정, 식구의 영양 상태 등을 고려하여 법령, 정책, 예산과 같은 식단의 기준과 원칙을 내놓는 것이 정치의 본령이라는 생각 자체가 없다.

간절한 소명의식과 준엄한 책임의식은 없는데, 대통령과 행정부에 비해 국회의 권한이 적다면서 권한 확대 요구는 질기게 한다. 하지만 이미 쥐고 있는 입법, 예산, 감사 등 거대한 권한은 제대로 사용하지도, 위임하지도 않고 그냥 썩힌다. 협치는 원래 여야 간 협력은 기본이고, 핵심은 그 권한을 가장 잘 쓸 수 있는 단위를 구성하여 권한 자체를 위임하는 것이다. 그런데 협치 개념 역시 축소되고 변질되었다.

정치와 정부가 유능해지려면 국회의원과 관료가 열심히 공부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유능한 국회의원과 관료를 선출·선발하고, 정당의 정책연구 기능을 강화하고, 다당제까지 추가해도 여전히 부족하다.

핵심은 자신이 관여해 결정할 사안과 그렇게 하면 안 될 사안을 구분하는 것이다. 국회나 정부나 자신이 비록 법적인 결정 권한을 갖고 있다고 하더라도, 자신보다 더 현명한 판단을 할 수 있는 단위를 구성하여, 숙의를 통해 나온 권고안에 대해 가부만 판단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예컨대 국회의원과 정당이 핵심 이해관계자인 선거제도, 헌법 개정 등은 추첨으로 선발된 보통 시민 300명의 원탁·숙의 테이블에 권고안 작성을 의뢰하고, 국회는 가부만 판단하는 식이다.

전기요금, 의료 수가, 공무원 임금 및 연금도, 더 나아가 여야가 첨예하게 대립하는 노동, 공공, 금융, 교육, 규제, 지방자치제도 개혁 방안도 공공성, 중립성, 전문성을 담아내는 기구를 여야 합의로 구성하여, 그 숙의 결과에 대해 가부만 판단하는 식으로 처리할 수 있다. 물론 이 기구는 여야 일방의 확실한 대변자, 나팔수 노릇을 할 전문가를 배제하는 상호 제척권 행사를 통해 구성되어야 한다. 진짜 내려놓을 국회의 기득권은 제대로 행사하지도 못하면서 움켜쥐고 있는 권한이다. 진짜 발휘할 지혜는 자신이 할 일과 하지 않을 일을 분별하는 것이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국회#전기요금#징벌 요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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