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김인규]해적 닮은 이스라엘 군대에서 배워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8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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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4월 가혹행위로 숨진 윤모 일병 관련 사건은 생지옥을 연상시킨다. 악마처럼 그를 구타한 가해자들 가운데는 신병 시절 비슷한 학대를 당하면서 가해자 선임병으로 변한 병사도 있다고 한다. 이것은 윤 일병 사건이 단순히 사이코(정신병자) 선임병의 문제가 아니라 제도의 문제임을 의미한다.

가혹행위가 발생할 때마다 군 수뇌부는 “가해자에게 최고 사형까지 구형해 본보기로 삼겠다”거나 “선진 병영(兵營)문화를 도입해 가혹행위를 근절시키겠다”며 제도 개혁을 약속했다. 하지만 가혹행위가 끊이지 않는 걸 보면 군 수뇌부가 개혁 방법을 잘 모르는 것 같다.

그렇다면 어떤 식의 제도 개혁이 필요할까? 미국 조지메이슨대 경제학과의 피터 리슨 교수가 쓴 ‘후크 선장의 보이지 않는 손(The Invisible Hook)’에서 그 답을 구할 수 있다. 그는 18세기 대서양의 해적을 역사상 가장 성공한 무장 조직의 하나로 꼽는다. 신기하게도 21세기 세계 최정예라는 이스라엘 군대가 이 해적 조직과 유사한 점이 아주 많다.

리슨 교수는 실증연구를 통해 해적 사회 내부가 정치적 경제적으로 매우 민주적이었다고 밝혔다. 해적들은 ‘공포’라는 이름의 브랜드로 약탈을 쉽게 하려고 극악무도한 고문과 악행을 자행했다. 하지만 해적 구성원들끼리는 선상에서의 사소한 폭력조차 용납하지 않았고 주요 의사 결정에는 직접민주주의를 채택했다.

야만적인 범법자들로 구성된 해적 사회였지만 그들이 당면한 문제는 일반 기업의 문제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노략질에 성공하려면 효율적인 지배구조가 필요했다. 구체적으로, 해적 구성원들 간의 폭력이나 분쟁을 없애야 했고, 전투에서 용감히 싸운 해적과 죽거나 다친 해적에게 더 많은 보상을 해주는 인센티브 시스템이 필요했다.

해적들은 이를 위한 규약을 만장일치 민주주의로 채택하고 집행함으로써 대단히 성공적인 지배구조를 확립했다고 한다. 예컨대, 해적선에서라면 윤 일병을 때린 가해자는 단 한 차례의 구타만으로도 규약에 따라 무인도에 외롭게 버려진 채 굶어죽었을 것이다. 한국군의 제도가 해적만도 못한 것 같다.

‘창업국가(Start-Up Nation)’라는 책에 묘사된 이스라엘군의 지배구조는 18세기 해적선의 지배구조를 빼닮았다. 차이가 있다면 약탈 대신 사병들의 창업을 장려하는 인센티브 시스템을 갖췄다는 정도다. 이스라엘군은 수평적이고 창의적인 지배구조를 만들기 위해 명령을 내리는 장군과 영관급 장교의 수를 대폭 축소했다. 그리고 부대 운영의 70% 정도를 사병이 책임지는 민주주의 형태의 지배구조를 확립했다.

이스라엘군처럼 민주적 부대 운영이 법치와 결합하면 병사들 간 폭력이 발붙일 곳이 사라진다. 이에 비해 우리 군은 장군과 영관급 장교의 수가 너무 많아 관료화 문제가 심각하다. 관료화된 군대일수록 상명하복(上命下服)을 중시한다. 그런 상명하복 문화가 군대 내 가혹행위를 부르거나 묵인하게 만든다.

이제 윤 일병 사건을 계기로 우리 군의 지배구조를 박근혜 대통령이 주창하는 ‘국가 개조’ 차원에서 확 바꿔야 한다. 첫째, 장군과 영관급 장교 수부터 대폭 감축해 민주적 지배구조를 확립시켜라. 그리고 이스라엘군처럼 일과 시간 이후에는 창업이나 공부 동아리 같은 것을 활성화해 병사들 스스로 보람을 찾도록 만들어줘라.

둘째, ‘법의 지배’를 확립시켜라. 학교 폭력이나 군대 폭력은 법의 사각지대에서 발생한다. 구타와 같은 위법행위가 발생하면 관련자와 지휘 감독자를 형사처벌하는 것은 물론이고 거액의 민사배상을 하도록 처벌을 강화하라.

이런 개혁을 머뭇거린다면 늦둥이 아들을 곧 군에 보내야 하는 나부터 촛불을 켜고 광화문으로 나갈 수밖에 없다. 삼가 윤 일병의 명복을 빈다.

김인규 한림대 교수·경제학
#가혹행위#윤 일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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