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동희]문과-이과 구분을 없애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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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희 성균관대 융합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
신동희 성균관대 융합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
미국의 저명한 경영대학원에는 정치학, 철학박사 출신 교수가 있고, 매사추세츠공대(MIT)나 카네기멜런대 등 세계적으로 유명한 컴퓨터 관련학과에는 심리학자나 인류학 출신이 교수를 하는 경우를 쉽게 볼 수 있다. 비록 조금씩 바뀌고 있지만 일반적으로 한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현상이다.

교육정책가의 행정적 편의 구분

융합과 통섭이 화두로 떠오르며 최근에야 국내 대학도 경쟁적으로 융합학과를 설립하고 통섭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일련의 융합적 시도에 많은 예산과 노력이 들어갔지만 그 실효성에 대한 의문과 더불어 융합이나 통섭의 본질을 정확히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근본적 물음이 제기되고 있다.

미국과 한국 공히 융합 현상이 산업과 사회 전반에 걸쳐 빠른 속도로 진행되는 것은 공통점이지만 통섭이라는 화두가 국내에서 유독 최근 관심을 받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 현재 미국에서 통섭이 중요한 어젠다가 아닌 것은 이미 정보화혁명 이후 자연스럽게 이를 위한 학문적 환경이 조성됐기 때문이다. 반면 최근 한국에서 통섭이라는 어젠다가 뜨겁게 일어나고 있지만 이는 그간 학문적으로 학제 간 장벽이 높았고, 학과 간 배타적 분위기가 팽배해 통섭적 환경이 조성되지 않았다는 증거이다.

국내에서 융합프로그램을 실제로 설립하고 운영해 보니 융합과 통섭에 대한 인식의 전환과 공감대 형성이 절실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국내에서는 융합이 첨단기술분야 등 특정 산업분야에 한정되거나 통섭이 특정 학문분야 간의 물리적 결합인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은 것 같다. 일반인은 융합학과를 기존의 학과편제에 준하여 분류하려 하고, 학생들은 복합적 문제를 문과 이과의 극도로 추상화된 구분으로 접근하려는 경향이 많다. 정부와 대학이 외형적인 융합과 통섭을 이루려 노력하고 있지만 일반인의 생각이나 관념은 아날로그 시대의 학제 간 구분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무엇보다 융합과 통섭을 막는 가장 큰 장애물 중 하나는 우리의 교육현장에 뚜렷이 존재하는 문·이과 구분이다. 이 문·이과 구분은 실체가 있는 학술적인 구분이 아니라 지극히 임의적인 행정적 편의 구분이다. 문과와 이과 사이의 장벽은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단지 교육정책가의 머릿속에 관념상으로 존재하거나 사회 속에 제도적으로 존재하는 허상인 것이다.

예컨대 세계를 ‘자연’, ‘인간’이라는 이분법으로 나눠 하나의 세계관을 강요당하는 것이다. 이런 논리라면 일반인은 과학기술에 무지해도 되고 과학기술자들은 사회와 문화에 초연해도 되는 것일까. 문과에 속한 경제학은 수학적 방법론이 필요하고, 이과에 속한 컴퓨터공학은 심리학이 필요하다. 이러한 학문의 크로스오버는 융합의 시대에 더욱 가속화된다.

융합-통섭 통해 창의적 천재 나와

융합과 통섭의 핵심은 창의성이다. 창의성은 서로 다른 분야에 대한 깊은 이해를 통해 남들이 보지 못하는 연결고리를 발견하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기술과 인간의 이분법적 구분이 아닌 융합과 통섭을 통한 창의적인 생각이 세계적인 애플 제품을 만들어 냈다. 미국에서 문·이과 구분이 있었다면 스티브 잡스와 같은 창의적 천재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최근 서울대가 신입생 선발에서 문·이과 구분 폐지를 추진하고 있다. 서울대의 시도는 인문사회과학을 전공하기를 원하는 학생에게 수학과 자연과학에 대한 소양을 기를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공학이나 자연과학 분야로 진출하길 원하는 학생도 꾸준히 인문사회과학을 접할 수 있는 기회를 주고자 함이다. 새로운 통섭으로 학생들이 전공에 관계없이 학문의 기초를 다지는 데 큰 비중을 두고 다른 학문 분야에서 적응할 수 있는 기본적 수학 능력을 갖추도록 해야 한다.

신동희 성균관대 융합 인터랙션사이언스학과 교수
#문이과#통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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