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전성훈]조선소년단 평양에 왜 불렀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6월 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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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북한에서 조선소년단 창립 66주년 기념행사가 대대적으로 열리고 있다. 전국 각지에서 선발된 2만여 명의 소년단원이 평양에 모여 기념식에 참가하고 시내 곳곳을 참관하는 등 다양한 정치행사가 진행 중이다. 북한은 소년단원들의 평양 체류기를 상세하게 전하면서 축제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다.

비행기까지 태워주며 선심 베풀어


소년단은 보통 7세부터 14세까지 활동하는 학생조직으로 우리 눈에도 익숙한 목에 두른 붉은 넥타이가 상징이다. 이들은 외국의 고위 인사가 평양을 방문하면 영접행사에서 꽃다발을 증정하곤 한다. 우리의 초등학교에 해당하는 북한의 4년제 인민학교 학생이 대략 188만 명 정도이니, 평양에 초대된 소년단원은 어림잡아 같은 또래 학생 100명당 한 명꼴로 보면 될 것 같다.

북한이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소년단 창립을 꺾어지는 해도 아닌 66주년을 기념해 이처럼 성대하게 치르는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김정은 체제에 대한 주민들의 충성심을 유도하고 체제를 장악하기 위한 대내 선동용 정치 이벤트이다. 호언장담하던 강성대국의 문도 열지 못하고, 김정일의 유산인 미사일 발사도 실패했으며, 극심한 가뭄으로 민심도 좋지 않은 상태에서 사회 분위기를 다잡겠다는 의도가 깔려 있다. 이 행사는 기성세대와 후세대를 동시에 겨냥하고 있다는 점에서 미래를 내다보는 양날의 칼이기도 하다.

우선 선발된 소년단원들이 김정은 체제에 충성하는 평범한 계층의 자제들이라는 것이 눈에 띈다. 우리민족끼리는 “학습과 조직생활에서 모범을 보인 노동자, 농민을 비롯한 평범한 근로자의 아들딸들이 소년단 대표로 참가한다”고 소개했다. 충성도가 높은 일반대중의 자식들을 골라 ‘대를 이어 충성하자’는 당의 방침이 살아있음을 사회 저변에 확산시키려는 것이다. 북한 주민들의 자식에 대한 사랑을 지도자에 대한 충성심으로 연결하려는 계산도 깔려 있다. 귀여운 내 자식을 비행기까지 동원해 평양으로 불러들여 환대해주는데 그런 지도자에게 감사하지 않을 부모가 어디에 있겠는가.

이번 행사의 또 다른 특징은 소외계층에 대한 배려다. 지역적으로 최북단 두메산골과 외딴 섬 분교 등 외진 지역의 소년단원들이 참가했다. 이들의 출신 성분도 당 간부의 자제가 아니라 광산 채탄공, 벌목공 등 평범한 근로자와 농민의 자녀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 부모를 잃은 고아와 전과자의 자녀도 포함됐다. 북한의 보통 사람들에게 이번 소년단 행사는 평소 평양에서 특권층 중심으로 이뤄지던 ‘그들만의 잔치’가 아니라 ‘우리들의 잔치’인 셈이다. 김정은이 소외계층을 아우르는 광폭(廣幅)정치를 실현하는 통 큰 지도자라는 이미지를 각인시키겠다는 의도일 것이다.

김정은 체제장악 위한 정치이벤트


김정은의 장기집권을 보장하기 위해 자라나는 미래세대를 겨냥했다는 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김정은 자신과 한평생을 같이해야 할 소년단원들은 현재의 권력기반은 아니지만 미래 권력의 토대다. 자라나는 어린 세대에 깊은 인상을 심어주고 이들의 마음속에 지도자와의 일체감을 형성해 나가는 것은 장기집권의 중요한 요건이다. 소년단 행사가 김정은의 안정된 미래를 위한 투자인 셈이다. 1990년대 중반 고난의 행군 이후 출생한 이들의 충성심이 과거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는 점도 고려됐을 것이다.

소년단 창립 기념행사는 23년 전인 1989년 평양에서 열린 세계청년학생축전을 떠올리게 한다. 임수경 씨의 참가로 우리에게도 익숙한 이 축전은 177개국에서 2만2000여 명이 참가했는데 ‘88서울올림픽’에 자극받은 북한 정권이 벌인 역점사업이었다. 축전은 성공적이었지만 준비 과정에서 재원을 낭비한 북한은 이후 쇠락의 길을 걸었다. 이번 소년단 행사가 앞으로 북한 사회에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주목된다.

전성훈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시론#전성훈#조선소년단#김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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