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산책]송영/대만 追想曲

  • 입력 1997년 2월 22일 19시 52분


대만은 여러면에서 우리와 닮은 점이 많은 곳이다. 일본에 장기간 지배당한 경험이그렇고,독재개발에 의해 비슷한 시기에 경제부흥을 일으킨 것도 그렇고, 양상은 많이 다르지만 분단국의 하나라는 점도 그렇다. 닮은 것은 이것만이 아니다. 같은 동아시아라는 지역성 탓인지 자국 고전을 제외하고 현대가요만 놓고 보면 노래에 대한 취향도 크게 다르지 않은 듯하다. 대만을 여행한 뒤 그 여행의 기억을 간직하기 위해 「대만추상곡」이란 그럴듯한 이름이 붙은 음반 한장을 가져 왔었다. 막상 들어봤더니 기악곡으로 편곡한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첫머리에 나오고 뒤에도 이름은 알 수 없지만 우리 현대가요와 비슷한 곡들이 잇따라 나와서 조금 실망했지만 그쪽 사람들의 노래취향이 우리와 크게 다를바 없다는 사실만 확인하게 되었다. ▼ 花蓮의 친절했던 부부 ▼ 대만을 여행한 사람이면 관광지로 잘 알려진 화련(花蓮)이란 도시를 기억할 것이다. 이 도시는 남국지방 특유의 매력을 골고루 갖추고 있다. 그곳에는 가슴을 시원하게 해주는 푸른 바다가 있고 이방인의 눈을 놀라게할 만큼 장대한 규모의 화강암계곡이 있고 고산족 혹은 산지족이라고 불리는 원주민도 있다. 키가 작달막하고 춤과 노래에 능한 이 고산족 여인들은 요즘 관광자원으로 인기가 있다. 바닷가 숙소에서 아침 일찍 나와 거리의 식당에서 값싼 부추만두로 조반을 때우고 햇빛이 따스하게 비치는 해변을 산책하던 일이 유쾌한 기억으로 떠오른다. 그러나 내게 화련이란 이름이 더욱 좋은 기억으로 남은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이다. 어느날 저녁 거리를 산책하다 우연히 중년남자를 만나 그의 집에까지 초대되었다. 수석수집가인 그의 집은 안목 높은 인물이 잘 꾸며놓은 예술작품 같았다. 친절한 주부가 내온 차와 과일을 들며 바둑을 두고 한담을 나누다보니 어느덧 자정이 되었다. 그런데 숙소로 가려고 밖에 나왔더니 문밖에 웬 택시가 대기하고 있었다. 알고 보니 주인이 손님을 위해 미리 택시를 불러놓고 요금까지 지불한 뒤였다. 이방인에다 피차 초면인데 그 따뜻한 배려에는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다음날 대북(臺北)으로 돌아와 그곳 친지에게 이 얘기를 자랑삼아 들려줬더니 그는 이런 일은 대만에서 손님을 접대하는 일반적 풍속이니까 너무 감격하지 말라고 웃으며 말했다. ▼ 믿기지 않는 「核 반출」 ▼ 요즘 핵폐기물 북한반출 문제로 대만과 한국의 감정이 격앙될대로 격앙되어 있다. 그들은 태극기를 불사르고 항의농성차 방문한 환경단체 인사들에게 폭행을 가하고 외교부는 추방령까지 내렸다. 지금 비록 정식외교관계가 없는 사이라고 하지만 외국손님을 대하는 행동치고는 너무 지나친 감이 없지 않다. 화련의 그 친절한 중년부부를 생각하면 심한 괴리감이 느껴진다. 이것은 마치 변심한 연인에게 복수의 칼을 내미는 형국과 흡사하다. 감정의 격앙도로 볼 때 만약 육지로 맞닿아 있는 사이라면 벌써 전쟁직전까지 치달았을 것이다. 사실 전쟁도 불사할 정도로 이 문제는 우리에게 중대한 사안이다. 북한을 우리 땅이 아니라고 생각한 사람은 우리 가운데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 그들은 이것은 순수한 상업적 거래니까 이성을 갖고 이해하라고 말한다. 남의 약점을 찌르는 상대의 교활한 행동을 보면서 분단의 아픔이 뼛속까지 스며드는 걸 느낀다. 동시에 가까울수록 조심해야 한다는 사람 사이의 이치를 여기서도 다시 깨닫게 된다. 송영<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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