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자 노트]김순덕/학교다운 학교 만들기

  • 입력 1998년 10월 23일 19시 06분


쑥스러운 얘기지만, 아이 키우는 재미 중 하나는 내가 어려서 어른들한테 당했던 일을 아이한테 해볼 수 있다는 점인 것 같다. “다 너 잘되라고 하는 소리”라는 말을 앞세우고 목청 높여 훈계를 하다가 내 앞에서 꼼짝 못하고 있는 아이를 보면, 권력의 맛이란 게 이런 거구나 싶어지기도 한다.

그 중에서 내가 폼잡고 써먹는 ‘학교의 3법칙’이란 게 있다.

숙제의 법칙. “처음엔 하기 싫더라도 일단 자기 힘으로 열심히, 다해봐라. 얼마나 기분이 좋은가.”

청소의 법칙. “여럿이 힘을 합하면 궂은 일도 훨씬 쉽게, 빨리 할 수 있단다.”

시험의 법칙. “노력한 만큼 결과가 나온다는 사실, 얼마나 신나는 일이냐!”

아이에게 이렇게 열변을 토하다 보면 어른들이 사는 세상도 학교와 같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그런데 어쩌랴. 아이 머리가 굵어지고 대학입시가 가까워질수록 학교도 정글의 법칙이 지배하는 어른들의 세계와 비슷해지고 있으니.

먼저 숙제의 법칙을 보자. 초등학교 숙제는 엄마가 도와주지 않으면 하기 어렵게 돼 있다. 상급학교로 올라가면서 숙제란 최소한의 노력으로 최대한의 결과를 노리는, 요령의 학습으로 변질되기 십상이다.

청소의 법칙도 마찬가지다. 궂은 일엔 최대한 ‘개기는’ 것이 손해 안보는 짓이다. 협조는커녕 ‘너의 손해는 나의 이득’으로 간주한다.

이렇게 길들여지다보니 나중엔 당연히 해야 하는 의무적인 일도 어떻게든 피하려 든다.

가장 하이라이트는 시험의 법칙이다. 돈들인 만큼 결과가 나온다. 비싼 과외, 일부에서는 촌지도 효력이 있다. 과정이야 어떻든 성적만 좋으면 모든 게 용서되는 현실이다.

다행히도 엊그제 정부에서 교육정상화 방안을 내놓았다고 한다. 우리 아이들의 학교가 어른도 살고 싶은 나라, ‘세상의 교과서’로 자리잡았으면 좋겠다.

김순덕<문화부>yuri@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