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사람들]출입구 방범문 설치

  • 입력 1998년 12월 20일 19시 59분


보험상품 판매를 위해 하루 십여곳의 아파트를 돌아다니는 그는 경비실 통과에는 ‘도통’한 전문가. 그런 그도 최근 입주한 아파트를 갈 때면 짜증이 난다.

아파트 출입구마다 투명 아크릴로 만든 방범문이 설치된 곳이 많기 때문이다. 이 문은 카드키나 비밀번호가 있어야만 열 수 있다. 중국음식점의 ‘철가방’이나 슈퍼마켓 배달원, 기타 방문자들은 출입구 앞 인터폰을 통해 입주자와 통화를 한 뒤에 문을 열어주어야만 들어갈 수 있다. 김씨같은 외판사원들은 인터폰을 눌러봤자 출입구앞에서 거절당하기 일쑤다.

지난해 등장한 출입구 방범문은 아파트 경비원 수를 줄여 관리비를 절약하기 위해 개발된 것. 방범문을 설치할 경우 동마다 경비원을 두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대신 출입구마다 설치된 폐쇄회로TV 모니터를 통해 경비상황을 살피는 경비원만 있으면 된다.

그러나 아파트 경비원들은 방범문에 대해 불만이 많다.

우선 경비원 1명이 관할해야 할 아파트 동수가 많아져 노동강도가 높아진데다 아파트 주민들과 오가는 따뜻한 만남의 정이 없어졌기 때문.

방범문 때문에 각 아파트에서 벌어지는 해프닝도 많다.

서울 서대문구 홍제동 H아파트 단지의 경우 경비원만 알아야할 비밀번호가 주민들에게 알려지고 이어 단지내 중국음식점 비디오대여점 슈퍼마켓의 배달원에게까지 공개돼 방범문 본래의 기능이 상실됐다. 결국 반상회를 열어 비밀번호를 바꾸고 주민들도 카드키를 사용하도록 했다. 그러나 용산구 강촌아파트는 비밀번호가 신문 우유배달원에게까지 알려진 이후에도 그대로 두었다. “뜨내기나 잡상인 출입만 막으면 됐지 수시로 아파트를 드나드는 사람들까지 고생시킬 필요가 없다”는 여론 때문.

이처럼 취약한 점도 많은 방범문이지만 이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은 대체로 긍정적.

서울 도봉구 창동 쌍용아파트 주민 이소영(李素英·40)씨는 “관리비도 줄이고 잡상인 출입도 엄격히 통제돼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주민 박모씨(35)도 “어차피 아파트라는 게 닫힌 공간이라는 속성이 강한 만큼 보안은 철저할수록 좋다”고 말했다.

〈이병기·이완배기자〉watchdo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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