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주/전남]1929년 광주 학생운동 연해주까지 확산된듯

  • 입력 2009년 8월 18일 06시 40분


당시 한인신문 ‘선봉’서 확인

1929년 광주학생항일운동에서 비롯된 항일학생운동이 러시아 연해주에서도 활발하게 전개된 것으로 추정되는 자료가 공개됐다. 전남대 학생독립운동연구단은 일제강점기 러시아 연해주에서 발행됐던 한인신문 ‘선봉’(사진)이 1929년 12월부터 1930년 3월까지 학생항일운동을 지속적으로 다룬 것을 확인했다고 17일 밝혔다. 연구단이 발굴한 자료에 따르면 ‘선봉’은 1929년 12월 30일자 1면에 ‘암흑에서 터져 나온 조선학생 대학살 사변’이라는 기사를 통해 ‘일제가 학생들을 잔혹하게 살해했고 광주에서 발생한 조선학생과 일본학생 충돌사건이 전국적으로 확산되고 있다’고 전했다.

1930년 2월 16일자 ‘전 조선학생 대중운동 그 뒤의 형태’라는 기사에서도 ‘서울 각 학교에서 학생항일운동에 참가해 퇴학과 정학을 당한 학생이 550여 명에 달한다’고 보도했다.

1930년 3월 8일자에는 광주학생항일운동에 참가했던 조선 학생들에 대한 재판이 당시 광주지법에서 열렸고 재판에 반발해 서울지역 학생들이 동맹 수업거부를 했다고 게재했다. 평양과 함흥에서도 시위 학생들에 대한 재판이 잇따라 열려 재판에 반발하는 학생시위가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다는 사실을 기사화했다.

연구단은 한인 언론인 ‘선봉’이 광주학생항일운동을 적극 보도한 점으로 미뤄 380개 한인학교가 있는 소련 연해주에서 광주학생항일운동의 동조 시위를 비롯해 지지 선언, 규탄대회 등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일제는 당시 조선의 치안상황이라는 자료를 통해 학생항일운동에 참여한 학교가 194개교라고 발표했지만 광주시교육청이 2006년 발간한 책자에는 참가학교가 전라 41개교, 서울·경기 56개교, 충청 23개교, 경상 40개교, 강원·황해 11개교, 평안·함경 117개교, 간도 32개교 등 320개교라고 밝혀 해외에서도 활발하게 학생항일운동이 전개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전남대 학생독립운동연구단 김재기 교수는 “러시아 연해주 한인들이 1937년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되면서 각종 기록 등이 사장된 것으로 보인다”며 “학생항일운동 80주년을 맞아 체계적인 조사를 통해 정신적 가치가 계승되도록 연구를 진행하겠다”고 말했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