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공서 음주소란 벌금 60만원… 신호위반은 20년째 6만원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11월 1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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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동 켜요 착한운전]‘솜방망이’ 교통범칙금 언제까지

지난달 14일 충남 서산시의 한 사거리에서 레미콘 차량 1대가 중앙선을 침범한 뒤 옆으로 넘어졌다. 25t짜리 레미콘 차량은 반대 차로에서 신호 대기 중이던 승용차 위를 덮쳤다. 승용차 안에 탔던 여성 3명이 그 자리에서 숨졌다. 어처구니없는 사고의 원인은 레미콘 차량의 신호위반. 정지신호를 무시한 채 사거리를 내달리다 중심을 잃고 넘어진 것이다. 보통 운전자들도 한두 번쯤 신호를 위반한 경험이 있거나 종종 충동을 느끼곤 한다. 그만큼 신호위반을 심각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대수롭지 않게 저지른 신호위반은 이처럼 끔찍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 암표 팔면 16만 원, 신호위반 6만 원

긴급전화인 112나 119에 장난전화를 걸었다 적발되면 범칙금 8만 원을 내야 한다. 프로야구나 아이돌 공연 입장권에 몰래 웃돈을 얹어 팔면 범칙금 16만 원이 부과된다. 관공서에서 술에 취해 소란을 벌이면 벌금 60만 원을 낸다. 반면 차량 운행 중 신호위반은 6만 원, 중앙선 침범과 정지선 위반도 각 6만 원이다. 안전띠 미착용은 3만 원. 자신뿐 아니라 남의 생명까지 앗아갈 수 있는 위반행위지만 장난전화나 암표 매매보다 처벌 수위가 낮다.

교통범칙금 제도는 1995년 지금의 체계로 정비된 뒤 거의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신호위반 등 심각한 교통사고를 일으키는 중대과실에 대한 경각심이 아직 부족한 이유다. 이에 따라 20년간 큰 변화 없이 운영된 교통범칙금 제도를 전반적으로 손질해야 한다는 여론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 등 각종 안전사고가 이어지면서 교통범칙금 인상에 부정적이었던 여론도 바뀌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본보가 최근 전문가 20명과 일반 운전자 23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온라인 설문조사 결과 현재의 교통범칙금 수준이 ‘낮다’는 의견이 54.1%였다. ‘적정하다’(35.8%)거나 ‘높다’(10.1%)라는 응답을 크게 앞질렀다. 일반인 10명 중 6명(59.9%)은 ‘범칙금 인상이 사고 감소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했다. 전문가는 95%가 같은 답변을 했다.

범칙금 인상이 가장 필요한 위반 행위로 전문가들은 ‘과속’(40.0%)을, 운전자들은 ‘신호위반’(45.9%)을 꼽았다. 운전자들은 단속 건수가 많은 과속(847만 건) 범칙금을 신호위반(216만 건·지난해 기준)보다 부담스러워한 것으로 보인다. 인상 폭도 필요하면 ‘최대 2배 이상 올려도 괜찮다’는 응답이 많았다. 2배 이상 올려도 괜찮다는 위반 행위는 중앙선 침범(56.1%), 신호위반(42.7%), 과속(31.2%) 순이었다. 김기복 시민교통안전협회장은 “사고 위험이 큰 ‘시속 20∼40km 초과’(현행 승용차 6만 원) 구간의 범칙금을 대폭 올려야 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90.0%)와 일반운전자(91.3%) 모두 상습위반자의 가중처벌에 찬성했다. 이는 2013년 경찰청 조사(63.5%) 때보다 크게 높아진 수치다. 설재훈 한국교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첫 위반 시 범칙금은 그대로 두고 1년 내 다시 적발됐을 때 범칙금을 2배로 올리면 운전자들의 반발과 서민층의 부담도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독일 스위스 스웨덴 등 일부 유럽 국가에서 도입 중인 재산이나 소득에 따른 범칙금 차등 부과에는 의견이 엇갈렸다. 일반 운전자(49.3%)와 전문가(45.0%)의 절반가량만 찬성했다. 직장인 김현지 씨(32·여)는 “정부에 신고하는 소득과 실제 소득이 다른 경우가 많기 때문에 자칫 부자가 서민보다 범칙금을 덜 내는 경우가 생기지 않겠느냐”고 반문했다. 전문가들도 “차등 부과제는 법원의 판단을 거쳐야 하는 등 절차와 비용 부담이 커 도입이 힘들다”는 의견이 많았다.

○ 범칙금 올리자 ‘스쿨존 사고’ 절반으로

범칙금 인상의 교통사고 억제 효과는 이미 확인됐다.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이 대표적이다. 2010년 스쿨존 1000곳당 55.5건에 달했던 교통사고 수는 2011년 ‘일반도로의 2배’로 범칙금을 올린 뒤 50.3건으로 줄었다. 2013년에는 27.7건까지 떨어져 사고 억제 효과가 뚜렷했다. 올 1월부터 범칙금이 2배로 인상된 노인·장애인보호구역에서도 7월 이후 단속 건수가 석 달째 줄고 있다. 경찰대 정철우 교수가 2013년 발표한 ‘범칙금 안전효과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운전자 2만4000여 명을 추적 조사한 결과 높은 범칙금을 부과받은 집단이 다시 교통법규를 위반할 확률이 46.7% 낮았다.

전문가들은 범칙금 인상 공론화를 위해서 경찰의 신뢰 확보가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허억 가천대 도시계획학과 교수는 “교통사고 예방에 쓰는 범칙금 사용처를 투명하게 공개하면 ‘세수 확충을 위해 범칙금을 올린다’는 부정적인 인식을 지울 수 있다”고 말했다. 범칙금 인상과 연계해 다양한 제재 수단을 함께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이수범 서울시립대 교통공학과 교수는 “벌점을 엄격히 적용해 면허 정지나 취소 부담을 늘리거나, 보험료를 함께 인상하는 방안이 효과적이다”라고 말했다.

스페인 세비야 산타후스타 지구의 한 도로에서 다니엘 곤살레스 경찰관이 속도 위반 운전자를 단속하고 있다. 세비야=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스페인 세비야 산타후스타 지구의 한 도로에서 다니엘 곤살레스 경찰관이 속도 위반 운전자를 단속하고 있다. 세비야=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 스페인 과속벌금 74만원… 교통사고 사망 12년새 67% ↓ ▼

교통법규 안지키면 강력한 벌점… 신호위반 2번만 해도 면허취소

사망자 감소율 OECD 2위로


2000년대 초까지 스페인은 교통안전 선진국으로 꼽히지 못했다. 한국보다 인구가 약간 적은 스페인의 2000년 한 해 교통사고 사망자가 5776명에 달했던 탓이다.

하지만 2012년 1903명으로 줄이면서 교통안전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 12년 만에 사망자 수를 67.1% 감소시킨 것이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아이슬란드(71.9%)에 이어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같은 기간 한국의 교통사고 사망자 수는 1만236명(2000년)에서 5392명(2012년)으로 47.3% 감소했다.

스페인 교통청(DGT) 헤라르도 아소르 마르티네스 분석관(35)은 “교통법규 위반 시 벌금과 벌점을 강화하는 내용의 교통안전계획을 대대적으로 시행해 사고 건수와 사망자 수를 크게 줄일 수 있었다”고 말했다.

스페인은 2006년부터 대폭 강화된 현행 교통벌점 제도를 시행했다. 운전면허를 받은 모든 운전자에게는 총 8점의 점수가 부여되고 2년 무사고 시 2점이 추가된다. 교통법규 위반 시 부여된 점수에서 벌점만큼 감점되고 0점이 되면 운전면허는 취소된다. 초보운전자는 신호위반(벌점 4점) 2번만으로도 면허가 취소된다.

벌금 제도도 강력하다. 규정 속도에서 시속 50km 이상 초과하면 최대 벌금은 600유로(약 74만 원)에 벌점 6점이 부과된다. 신호위반이나 안전띠 미착용 시 벌금도 200유로에 달한다. 선진국에선 교통법규 위반을 형벌의 일종인 벌금으로 다스리지만 한국에선 행정처분인 범칙금, 그것도 낮은 금액을 부과한다. 한국의 속도위반 시 범칙금은 최대 13만 원에 불과하다.

스페인 남부 세비야 당국이 고질병인 불법 주정차 차량에 벌금 100유로를 부과하자 위반 건수는 최근 3년 새 약 15% 감소했다. 본보 취재팀과 동행한 한상진 한국교통연구원 교통안전연구그룹장은 “국내에서 여전히 교통법규 위반 과태료 인상 반대 여론이 적지 않지만 강력한 페널티 제도의 교통법규 위반 억제 효과는 상당하다”고 말했다.

공동기획 : 국민안전처 국토교통부 경찰청 교통안전공단 손해보험협회 한국교통연구원 한국도로공사 tbs교통방송

박성민 min@donga.com·최혜령 기자
마드리드=권오혁 기자 hyuk@donga.com
#착한운전#범칙금#교통사고#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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