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익과 정권수호 위해?… 스트롱맨-정보기관 ‘은밀한 거래’

이세형 기자 , 윤완준 기자 , 장원재 특파원 입력 2018-03-24 03:00수정 2019-07-04 16: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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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요판 커버스토리]‘스트롱맨의 칼’ 세계 정보기관 大戰

《“스트롱맨들이 주도하는 정보기관 전쟁에 더욱 불이 붙을 것 같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미 중앙정보국(CIA) 수장에 지나 해스펠 CIA 부국장(62)을 지명하자 국내 정보 전문가들이 내놓은 말이다. 이들은 “해스펠의 경력과 업무 스타일은 전형적인 ‘강경파’로 분류된다”며 “CIA의 정보활동이 지금보다 훨씬 공격적으로 바뀔 가능성이 높다”고 입을 모았다.

국제사회가 국가 혹은 정권의 명운을 둘러싼 ‘정보기관 대전(大戰)’의 길로 접어들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5월로 예정된 미국과 북한의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도 ‘음지’의 CIA가 사실상 전면에 나섰다. 영국 내에서 벌어진 러시아 전직 스파이 부녀 독살 시도 사건을 계기로 영국과 러시아 간 외교 분쟁이 폭발하고 있다. 2016년과 지난해 벌어진 △러시아의 미국 대선 개입 의혹 △카타르 단교 사태(사우디아라비아와 아랍에미리트·UAE 주도) △터키의 반(反)정부 세력 숙청 같은 사건에서도 정보기관들이 이슈의 중심으로 부각됐다.》

국익인지, 정권 수호인지 양상과 성격은 다르지만 그 중심엔 스트롱맨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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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보기관 KGB 출신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1인 장기 집권 체제를 구축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 이에 맞서려는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를 비롯해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무함마드 빈 살만 알 사우드 사우디아라비아 왕세자 등 패권 지향적 지도자들의 공통점은 하나다. ‘강한 정보기관’을 권력의 기반으로 활용하려 한다는 점이다.

○ 스트롱맨들의 정보기관 사랑

① CIA와 손잡은 트럼프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해 1월 취임 후 첫 일정으로 CIA를 찾아 “나는 여러분을 1000% 지지한다”고 했다. 대선 기간 러시아의 미 대선 개입 의혹과 관련해 CIA와 아주 불편한 관계였던 만큼 갈등을 불식시키기 위한 행보라는 분석이 우세했지만 어쨌든 트럼프는 이후 일관되게 CIA에 힘을 실어줬다. 한 정보 전문가는 “대통령 당선 후 접한 CIA의 정보 역량은 ‘공직’ 경험이 없는 트럼프 대통령에겐 흥분의 대상이자 두려움의 대상이었을 것”이라고 했다. 일각에선 트럼프 대통령이 자신을 둘러싼 각종 논란과 관련해 CIA와 ‘암묵적 거래’를 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올 정도였다.

CIA를 적극 활용하겠다는 트럼프 대통령의 구상은 어느 정도 성공했다는 평가다. 첫 CIA국장으로 임명된 마이크 폼페이오(국무장관 내정자)는 과감한 조직 개편과 발탁 인사를 통해 CIA를 순식간에 장악했다. 미 육군사관학교인 웨스트포인트를 수석 졸업한 폼페이오는 5년간 군 생활을 한 뒤 군수업체를 창업해 운영하다 극보수 성향을 띠는 티파티의 지원을 받아 6년간 하원의원을 지낸 인물이다.

특히 북핵 위기는 트럼프 대통령에겐 기회이기도 했다. 폼페이오는 북한 정보를 통합 관리하기 위해 지난해 5월 코리아미션센터(KMC)를 만들었다. 수미 테리 전 CIA 분석관(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 한국실 선임연구원)은 “CIA 내 특수조직이 만들어지는 것은 전쟁 등 위기 상황에 신속하게 대응할 수 있도록 정보전에 총력을 다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과의 정상회담 전격 수락 결정에는 수시로 받아본 CIA의 북한 정보 분석 보고서가 중요한 정세 판단의 기준이 됐던 것이다. 앞서 지난해 4월 트럼프 행정부는 국가정보국장(DNI)을 통해 ‘북한정보증진법’을 발의해 대북 정보 수집에 체계적인 접근을 시작했다. 지난해 10월에는 주한미군 제501정보여단 휘하에 대북 휴민트(인적 채널) 전담부대를 창설하기도 했다. 물론 세계 최강의 정보력을 자랑하는 미국이지만 여전히 북한 관련 정보 수집은 가장 어려운 일로 꼽힌다. 통신감청, 인공위성 및 정찰기를 통한 정보 수집, 휴민트 활용, 탈북자 면접 등 입체적 수단을 총동원하지만 워낙 북한 권력층이 폐쇄적이기 때문이다.

②‘정보 굴기’ 꿈꾸는 시진핑

중국은 ‘대국(大國)’ ‘굴기(起·우뚝 섬)’ ‘G2(주요 2개국)’ 등을 강조하며 미국과 맞설 정도의 강대국으로 부상하고 있지만 정보기관의 역량은 미국과 러시아에 비해 떨어진다는 게 일반적인 평가다.

최근 남북 정상회담과 북-미 정상회담 추진 과정에서 중국은 철저하게 ‘정보 소외감’을 맛봐야 했다. 12일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이 방북, 방미 결과를 설명하기 위해 중국을 방문해 만난 양제츠(楊潔) 외교담당 국무위원이 정 실장과 면담 및 오찬을 약 4시간이나 하고 시 주석도 양회(전국인민대표대회와 전국인민정치협상회의)라는 중국의 최대 정치 행사가 진행되는 중에 정 실장을 따로 만난 건 그 이유였다. 북한과의 고급 정보 채널이 막혀 있음을 입증하는 것이다.

이는 중국이 강한 정보기관 만들기에 적극 나설 수밖에 없고, 변화도 두드러질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시 주석은 2013년 당에 국가안전위원회를 출범시키는 등 국가 정보 역량 강화 작업을 지휘해 왔다. 국가안전위원회는 중앙 정보기관인 국가안전부를 중심으로 군, 외교부, 공안, 안보 관련 기관이 수집한 정보를 통합 관리 및 대응해 ‘중국판 국가안전보장회의(NSC)’로도 불린다.

특히 국가안전부는 최근 해외 요원 파견에 적극적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해외에 기업인, 경영인, 금융인, 학자, 기자 등으로 위장한 요원 파견을 대폭 늘리고 있다. 이들은 현지에서 첩보 및 정보활동은 물론이고 휴민트 확보에도 공을 들인다. 국가안전부의 해외 요원이 4만여 명에 이른다는 분석도 있다. 최근에는 시리아와 파키스탄 같이 미국의 영향력이 제한적이며 중동과 서남아 진출의 ‘교두보’로 활용할 수 있는 나라에서도 정보활동을 대폭 강화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CIA가 개입한 비밀전쟁을 정리한 책 ‘CIA 블랙박스’의 저자인 김재천 서강대 국제대학원 교수(국제관계학)는 “중국은 이미 기술적으로 매우 높은 수준의 정보 역량을 축적한 상태로 보인다”며 “앞으로는 전 세계적인 휴민트 구축에 초점을 맞춰 정보기관 역량을 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③‘일본판 CIA’ 설립 노리는 아베

13일 서훈 국가정보원장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아베 총리는 김정은의 언행에 대한 구체적인 질문을 연달아 던졌다. 당초 15분이던 면담 시간은 65분으로 4배 이상으로 늘었다. 아베 총리는 면담 후 배석자들에게 서 원장이 전한 김정은의 발언 내용을 상세히 분석할 것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졌다. 김정은을 만났다는 서 원장의 ‘드문 경험’을 정리해 향후 대북 전략 수립에 활용하겠다는 취지였다.

당시 배석자 중에는 야치 쇼타로(谷內正太郞) 국가안전보장국장과 기타무라 시게루(北村滋) 내각정보관도 포함됐다. 국가안전보장국은 2013년 설치된 NSC 사무국 역할을 하며 야치 국장은 ‘아베의 외교 책사’로 불리는 최측근이다. 야치 국장이 정책 결정과 정무적 검토를 맡는다면 기타무라 정보관은 정보 수집과 분석을 담당한다. 2011년 12월부터 줄곧 총리 직속 첩보조직인 내각정보조사실(내조실)을 책임지고 있는 기타무라 정보관은 아베 총리를 가장 많이 만나는 사람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 집계에 따르면 취임 후 4년여 동안 659회나 만났다고 한다. 하루에 여러 번 만나는 경우도 흔하다.

한국 국정원과 미국 CIA의 공식 상대도 내조실이다. 다만 내조실은 인원이 170명 정도로 규모가 크지 않기 때문에 원천 정보 수집은 법무성 소속 공안조사청, 경찰 공안파트, 방위성 정보본부(DIH), 외무성 정보파트 등에 의존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각 조직이 주도권 다툼을 벌이면서 정보 공유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본도 최근 정보기관 역량 강화 프로젝트를 가동하고 있다. 대외 정보를 전문적으로 담당하는 정보기관, 이른바 ‘일본판 CIA’ 설립을 주요 과제 중 하나로 삼고 있다는 것. 현재는 그 전 단계로 2015년 12월 외무성 내부에 국제테러정보수집유닛이라는 조직을 만들었다. 총리 직속 첩보조직인 내조실을 비롯해 외무성, 경찰청, 방위성, 공안조사청 출신 80여 명으로 구성돼 있으며 각국 대사관에 파견돼 정보 수집 및 현지 정보기관과의 협력을 담당한다.

아베 정권이 대외정보 전문 기관 설립에 관심이 많은 이유는 그동안 해외 정보 수집에서 약점을 드러내는 일이 잦았기 때문이다. 2013년 알제리에서 일본인들이 납치돼 10명이 숨지고 2015년 이슬람국가(IS)가 일본인 2명을 참수했을 때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는 비판을 받았다.

○ 강한 정보기관 만들기에 나서는 신흥국들

미국, 중국, 러시아 같은 전통적인 정보기관 강국 외에도 다양한 국가가 정보기관 육성과 영향력 키우기에 나서고 있다. 이 중에는 사우디, UAE, 터키 등 중동 나라가 많다. 특히 사우디의 경우 과거에는 상상하기 힘든 파격적인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 나라의 중앙 정보기관인 총정보국(GID)이 ‘앙숙’ 이스라엘의 모사드와도 비밀리에 정보 교환 및 협의에 나서고 있는 것. 2015년 국제사회와 핵 합의를 맺은 ‘공통의 적’ 이란의 부상에 대비하려는 조치라는 분석이 많다.

성일광 건국대 중동연구소 연구원은 “지난해 9월에는 무함마드 사우디 왕세자가 비밀리에 이스라엘을 방문해 이란에 대한 대응 방안을 논의했다는 말까지 현지에서 나왔을 만큼 두 나라 정보기관 간 협의가 과거보다 활발해졌다”고 말했다.

한국, 미국, 프랑스 등과 다양한 군사협력을 진행하고 있는 UAE도 정보기관 역량 강화에 천문학적인 돈을 투자하고 있다. 미국의 외교안보 전문매체인 ‘포린폴리시(FP)’에 따르면 UAE는 CIA와 용병업체인 ‘블랙워터’에서 활동했던 인력을 고용해 자국의 정보원을 교육시키고 있다. 이들은 높은 임금과 최고급 빌라 등을 제공받으며, 아부다비에서 약 30분 떨어진 사막에 마련된 특수 훈련소에서 UAE 정보기관 요원을 교육한다.

FP는 UAE의 ‘실질적인 최고 지도자’로 통하는 무함마드 빈 자이드 알 나하얀 아부다비 왕세제가 직접 정보기관 역량 강화 작업을 지휘한다고 전했다. 에릭 프린스 블랙워터 창업자와 리처드 클라크 전 백악관 대테러 수석보좌관 같은 인사들은 무함마드 왕세제를 대상으로 자문활동을 펼쳤다.

UAE는 지난해 6월 발생한 카타르 단교 사태가 발생하기 전 ‘타밈 빈 하마드 알 사니 카타르 국왕이 이란을 옹호했다’는 가짜 뉴스를 카타르 국영통신사 QNA에 올리는 해킹을 진행한 배후란 의심도 받고 있다. 이런 소문은 미 정보당국에서 흘러나왔고 카타르는 “중동의 허브 자리를 놓고 경쟁하는 UAE가 단교 사태의 핵심 역할을 했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한편 터키는 에르도안 대통령의 독재를 공고히 하기 위한 용도로 정보기관의 역할을 강화하고 있다. 터키 국가정보청(MIT)은 자국 내 쿠데타 시도가 실패한 2016년 7월 이후 16만여 명을 체포하고 15만여 명의 공무원을 파면하는 ‘숙청 작업’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MIT는 최근 스위스에 주재하는 터키 외교관들이 터키계 스위스인 사업가를 납치하려다 실패한 사건에 개입돼 있다는 의심도 받고 있다. 한 터키 소식통은 “치안이 불안한 동남아와 서남아 등에서 반정부운동을 하다 납치된 사람이 많다”며 “터키 당국이 스위스 같은 선진국에서도 납치를 추진했다는 것에 경악하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세형 기자 turtle@donga.com / 베이징=윤완준 / 도쿄=장원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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