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리포트/지방선거 과열]"출마 못하면 팔불출"

  • 입력 2001년 3월 29일 18시 47분


‘내년 지방선거를 향해 뛰어라.’

현직 자치단체장 외에도 전직 단체장과 공무원, 지방의원, 정당 관계자 등이 내년 지방선거를 노려 벌써부터 분주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특히 현직 단체장이 사법처리됐거나 출마하지 않을 것으로 예상되는 일부 기초자치단체에서는 자천타천의 출마 예정자가 10∼20명에 이를 정도다.

출마 희망자가 많다 보니 헐뜯기와 학연 지연 혈연 등에 따른 편가르기로 많은 부작용이 벌써부터 나타나고 있다.

▽조기과열 실태〓군수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된 경북 성주군의 경우 경찰 고위간부와 부군수 군의회의장 출신, 도의원, 지구당 사무국장 등 10여명이 군수 출마 예정자로 거론되고 있다. 전남 화순군은 군수 출마 예정자가 20명을 넘어서 지역주민 사이에서는 ‘군수에 출마하지 못하면 팔불출’이라는 말이 나돌 정도.

▼싣는 순서▼

上-돈 없인 못뛴다
中-"주민행정엔 관심없어요"
下-너도 나도 뛴다

전남에서는 도의원 55명 중 20여명이 기초단체장 출마 예정자로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전남도 관계자는 “광역의원들이 98년 지방선거에서 자신들의 지역구에서 상당한 득표력을 확인했고 그동안 ‘표밭갈이’에 소홀히 하지 않았다는 자신감 때문”이라고 풀이했다.

▼축의금공세등 사전운동▼

강원지역도 현직 단체장의 불출마가 예상되는 동해시와 양양군 등 3, 4곳의 자치단체를 중심으로 출마 예정자들이 난립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때문에 내년 기초단체장 선거에서 이들 지역의 평균 경쟁률이 5대 1을 넘어설 것이라는 게 각 정당 관계자들의 전망.

현직 공무원의 단체장 출마 움직임도 전국적인 현상이다. 경남지역에서는 10여명이 단체장 출마를 저울질하고 있는데 김해시의 경우 현직 시장이 재출마 의사를 굳힌 가운데 경남도 C국장이 ‘도전’을 공언한 상태. C국장은 최근 집을 김해시내로 옮기고 주민 및 사회단체 등과의 접촉을 늘리고 있다.

경남도 산하기관장인 K씨도 출마를 검토 중이다. C국장이 출마의사를 표명하면서 현직 시장과의 눈에 보이지 않는 갈등이 만만치 않은 실정.

강원지역 B단체장은 출마설이 나돌고 있는 동향 출신의 현직 공무원을 공공연히 비난하는 등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다. 이 밖에 단체장의 불출마가 예상되는 일부 지역에서는 단체장 선거에 나가려는 부단체장들이 단체장의 행사에 대신 참석하는 등 사실상 사전 선거운동을 하고 있어 다른 출마 예정자들의 불만을 사고 있다.

이처럼 조기과열 조짐을 보이자 불안을 느낀 일부 지역의 출마 예정자들은 1000만원이 넘는 비용을 들여 여론조사도 실시하고 있다. 광역 및 기초의원 선거에 출마하려는 인사들 중에도 내년 선거에 대비해 인터넷에 홈페이지를 개설, 홍보에 나서고 여론조사를 실시하기도 한다.

부산의 구의원 선거에 다시 출마하려는 현직 구의원 D씨는 최근 주민들의 자녀 결혼식 등에 축의금을 많이 냈다가 선관위의 경고를 받았다.

▽부작용〓95년 지방자치제 실시 이후 제주지사 선거에서 두 번이나 맞붙은 우근민(禹瑾敏)현지사와 신구범(愼久範)전지사가 내년 선거에서도 격돌할 것으로 예상돼 제주지역은 공무원 사회의 편가르기가 심각한 양상.

제주도의 한 공무원은 “현재 이 지역에는 공무원들이 우지사를 지지하는 ‘우파’와 신 전지사를 지지하는 ‘신파’로 나뉘어 일전을 불사할 준비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문중간 대결 감정싸움도▼

충남 홍성군의 경우 전현직 군수를 비롯해 전직 부군수와 공무원, 경찰간부, 전현직 군의원 등 7, 8명이 군수 출마 예정자로 거명되고 있다. 이들 대부분은 이 지역 특정고교 출신인데다 서로 잘 아는 사이여서 가끔 행사장에서 마주칠 때면 은근한 신경전이 벌어지기도 한다. 일부는 음해성 발언도 서슴지 않아 분위기가 험악해지기도 한다는 것.

충북 청주시의 경우 내년 선거에서 전현직 시장의 출마가 예상되는데 현시장은 청주고, 전시장은 청주상고 출신이어서 두 고교의 대결 양상이 될 것이란 전망이다.

또 일부 지역에서는 출마 예정자들이 문중간 소지역간 대결도 서슴지 않아 감정의 골을 더욱 깊게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충북도의 한 공무원은 “일부 문중의 경우 문중에서 내세운 후보를 밀거나 최소한 문중의 양해를 얻은 후보를 지원할 정도로 영향력이 커 다른 문중의 눈총을 받기도 한다”고 말했다.

행자부 관계자는 “단체장이 되면 가문의 영광으로 생각해 너도나도 많은 돈을 쓰고라도 당선돼야 한다는 풍조가 만연돼 조기과열 조짐을 보이는 듯하다”고 말했다.

<창원·광주·제주〓강정훈·정승호·임재영기자>manma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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