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GO현장]고향 못 간 사람들1-명동성당 농성단

  • 입력 2001년 1월 26일 13시 56분


<'민족의 대명절' 설을 맞아 50여만명이 고향을 찾아나선 지금, 찾아갈 고향이 없는 것도 반겨줄 가족이 없는 것도 아니지만 명절만 되면 더욱더 가슴저린 그리움에 눈물을 흘리는 우리 시대의 '이산가족'들이 있다. 그들의 요구와 희망이 우리의 현실과 얼마나 다르기에 그들은 스스로를 가족들의 품에서 떠나보내야 했는가. 온 가족과 친척들이 한자리에 모여 세배와 덕담을 나누는 즐거운 설 명절, 같은 시간 우리 사회의 한 켠에서 신음하고 있는 그들을 만나보았다>>

▼국가보안법 관련 정치수배 해제를 위한 명동성당 농성단 이동진씨▼

50년만의 폭설에 이어 영하 15도를 오르내리는 매서운 날씨가 계속되는 가운데 명동성당 들머리에 자리잡은 '노상 감옥'에는 푸른 수의를 입고 굵은 입술을 굳게 다문 청년이 있다.

이동진, 99년도 경상대 조국통일위원회 위원장. 수배생활 3년째.

'국가보안법 폐지, 정치수배해제, 양심수 전원석방'을 요구하며 무기한 노상 감옥 농성에 돌입한 국보법 농성단 3명 가운데 나이로 둘째 형이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갇혀있어야 하는' 노상 감옥에 들어가기 전, 수배자 이씨는 경남 울산경찰서의 한 경찰관과 전화 통화를 했다.

"죄송합니다. 이번에는 찾아뵐 수 있을까 했는데…"

"나도 올해는 안간다. 니가 왔으면 같이 갈텐데…"

울산경찰서 소속 이형배 경사(52), 수배자 이동진씨의 아버지이다.

수배생활 3년째인 아들과 경찰관 아버지가 모처럼 가진 대화는 2분 남짓. 아들은 계속해서 차가운 아스팔트 바닥만을 응시하면서 짤막짤막한 대답만을 이어나갔다.

"돌아 가신지 3년이나 되신 할아버지 제사에 아직 한번도 못 가봤다는 게 너무 죄송스럽습니다"

무뚝뚝한 경상도 말씨에도 정감이 묻어나는 이씨는 한참동안 전화기 저편 아버지의 말을 듣기만 했다.

"휴, 아버지도 말씀하시기가 쉽지는 않죠. 국가보안법이 어서 개정되어서 하루 빨리 봤으면 좋겠다고 하시네요"

특히 설 같은 명절만 되면 자주 방송되는 가족 드라마를 보면, 생소하기도 하고 '나도 저렇게 살아야하는데'하는 생각이 절로 난다는 이씨는 "아버지 건강하십시오"라는 한마디에 죄송스러움과 그리움을 담아 아버지께 드리는 올 세배를 갈음한다.

"아버지가 다음 설에는 할머님 뵈러 같이 가자시네요"

추운 날씨에 습기가 스며든 모의 감옥의 천장에서는 물방울이 뚝뚝 떨어지고 있었다.

▼일일 감옥체험, "내 양심을 위해서"▼

국가보안법 폐지와 정치수배 해제를 위한 농성을 시작하지 벌써 253일째, 지난해 말 인권단체 대표들의 목숨을 건 단식농성이 끝난 지금 명동성당 들머리에는 새로운 흉물 두 개가 들어섰다.

'노상 감옥'

남자동과 여자동으로 나누어진 감옥에는 하루 20여명의 '죄수'들이 푸른 수의와 수감번호를 가슴에 달고 갇혀있다.

"우리나라에서 국가보안법에 의해 감옥에 가지 못했다는 것이 부끄러워서"라며 창살에 기대인 양심수 후원회원 한희숙(48·경기 군포시 당동)씨는 벌써 5일째 감옥에 있다.

지난해 말 국보법 철폐를 위한 무기한 단식으로 수척해진 몸이지만 또 다시 여감방을 지키고 있는 그녀의 갈라져버린 입술과 꺼칠해진 손은 주변 사람들을 안타깝게 한다.

"명절이나 생일이 수배자들에게는 가장 서러운 날이에요. 이럴 때 같이 있어주고 싶어요"라며 살짝 웃어보이는 그녀는 "이들의 아픔은 바로 우리 모두의 몫이고 앞선 세대를 살아온 우리 선배들의 탓입니다"라며 굳은 의지를 내보였다.

"가능한 한 끝까지 함께 하고 싶어요. 하지만 이것은 단지 내 양심을 위해서예요"라며.

▼"날씨가 꼭 우리나라 현실 같구먼"▼

감방장 김규철(68·범민련 남측본부 부의장). 64년 6·3사건으로 수감생활을 시작으로 네 차례 구속됐던 김 부의장은 참가자 중 가장 고령이다.

눌러쓴 모자와 눈을 지긋이 감은 채 구석자리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있는 모습은 경찰드라마에서나 볼 듯한 자연스러운 자세였다. 경험에서 나오는 익숙함이 아닐까.

"나이 많은 우리가 통일문제를 해결했어야 했는데, 그 책임을 젊은이들에게 떠넘겨서 그게 안타깝고 죄송스럽지"

국보법 철폐에 대해 김 부의장은 "6·15선언 등으로 인해 국보법 폐지에 대한 통일운동진영의 기대감이 컸고, 그만큼 투쟁이 강력하지도 못했다"면서 "그 틈에 보수세력들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지금까지 끌고 오게 됐다"고 평가했다.

"날씨가 꼭 우리나라 현실 같구먼"하고 하늘을 쳐다보는 김 부의장은 "앞으로의 통일운동은 통일꾼들만의 것이 아니고 국민과 함께 할 수 있는 폭넓은 마당으로 자리잡아야 할 것"이라고 충고했다.

▼국가보안법 관련 정치수배자 223명▼

24일로 6일째를 맞고 있는 노상 감옥농성에는 시민·사회단체 인사들 뿐 아니라 고교생, 대학생 등 많은 일반인들의 참가가 줄을 잇고 있다.

첫날 명동성당에 들렀다가 참가하게된 서초고등학교 3학년 오모군은 "정말 국가보안법으로 인해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받고 있는지를 알게 됐다"고 말했다.

농성장에는 수배 8년째인 진재영(94년 전남대 총학생회장)를 비롯한 수배자 3명과 일반 참가자들이 자리를 지키고 있으며, 설 연휴기간에도 계속 진행될 예정이다.

지난 12일 할머니의 부음을 전해들은 농성단의 막내 김준철(2000년 서울대 공대 학생회장·수배 1년)씨는 "아침에 어머니의 전화를 받았습니다. 그 슬픔을 말로다 할 수 없습니다"라며 "국가보안법이 폐지되는 날, 할머니를 찾아 뵙고 용서를 빌겠습니다"라고 눈시울을 붉혔다.

우리나라에는 지난 94년부터 현재까지 국가보안법과 관련해 모두 223명이 수배를 받고 있다.

최건일/동아닷컴 기자 gaegoo99@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