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자!교통선진국]노인 교통사고死 영국의 8배

  • 입력 2002년 12월 15일 18시 38분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노인이 급증하고 있다.

경찰청에 따르면 94년 1748명이었던 노인(만 61세 이상) 교통사고 사망자가 지난해에는 2043명으로 16.9% 늘어났다.

같은 기간 어린이(만 14세 이하) 교통사고 사망자가 890명에서 489명으로 45.1% 줄어든 것과 비교하면 노인들의 교통사고 피해가 상대적으로 크다고 볼 수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선진국들과 비교해도 마찬가지다. OECD가 2000년 한해 동안 만 65세 이상 노인 10만명당 교통사고 사망자를 조사한 결과 한국은 57.8명으로 영국( 7.3명)에 비해 7.9배나 많았다.

▽보행 사고가 압도적〓경찰청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노인 교통사고 사망자 2043명 가운데 60.6%인 1239명이 보행 중 사고를 당했다. 다음으로는 △이륜차 승차 중 227명(11.1%) △자동차 승차 중 215명(10.5%) △자전거 승차 중 175명(8.6%) 등의 순이었다. 특히 보행 중 교통사고로 사망한 노인 가운데 30% 정도가 횡단보도를 거의 다 건넌 상태에서 차량에 부딪힌 것으로 조사돼 노인을 배려하지 않는 신호 체계와 운전자들의 성급한 운전습관이 노인 교통사고 사망자를 늘리는 주된 요인인 것으로 분석됐다.

실제로 시민단체인 ‘바른 운전자들의 모임’이 각종 실험 결과를 분석한 자료에 따르면 일반인들의 평균 보행 거리는 초당 1.2m인 데 반해 노인들은 0.8m에 불과했다. 특히 관절염 등 보행에 지장을 주는 질병을 갖고 있는 노인은 일반인의 절반수준인 0.6m 이하로 떨어지는 것으로 조사됐다. 신호가 바뀔 때까지 횡단보도를 건너지 못해 사고를 당할 가능성이 높다는 얘기다.

▽고령일수록 더 위험〓통계청 사망원인 통계연보에 따르면 연령별 교통사고 사망자(인구 10만명당)는 60대 49.4명, 70대 62.3명, 80세 이상 81.2명이었다. 반면 10세 이하는 7.8명, 10대는 9.4명, 20대는 16.0명, 30대는 17.2명에 불과했다. 연령대에 따라 교통사고로 사망할 확률이 10배나 차이가 나는 셈. 노령층일수록 운동 능력이 떨어져 교통사고를 당할 위험이 높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노인 운전자도 사고에 취약〓운전에 필요한 정보 중 90%는 시각 관련 사항이다. 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밤에 앞의 사물을 또렷이 볼 수 있는 야간 시력 △운전 중 전방을 주시한 상태에서 동시에 좌우 상황을 감지할 수 있는 능력 △다른 차들의 주행속도를 판단할 수 있는 인지능력 등이 감퇴된다.

이에 따라 교차로에서 검정 계통 차량을 식별하거나 횡단보도를 건너는 보행자를 인식하는 능력이 떨어진다.

근육이 약하다는 점도 교통사고를 유발하는 원인이 되고 있다. 핸들을 돌리거나 브레이크를 밟는 데 지장을 주기 때문. 반응시간도 길어져 앞에 도로상의 위험물이 있거나 앞차가 급정지 또는 회전할 때 대응이 늦어진다.

▽대책은 없나〓교통 전문가들은 노인들의 심리와 보행 습관을 감안한 교통 체계 구축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설재훈(薛載勳) 국무총리실 산하 안전관리개선기획단 전문위원은 “노인들은 대부분 교통신호에 대한 반응과 운동 능력이 약한 데다 다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아무데서나 무단횡단하려는 경향이 있다”며 “노인 교통사고를 줄이려면 노인 보행자 특성에 맞게 신호등 주기를 조정하는 등 정부 차원의 개선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송진흡기자 jinhup@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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