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혁명 40주년]<5·끝>1968년 美 학생시위 주도 러드 씨 인터뷰

  • 입력 2008년 1월 9일 02시 57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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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년 전인 1968년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반전시위를 주도했던 마크 러드 씨(왼쪽)는 현재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며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오른쪽은 경찰이 당시 컬럼비아대를 점거한 학생들을 강제 해산하는 모습을 담은 뉴스위크지 표지. 앞 사람의 머리를 움켜잡은 사람이 러드 씨다. 사진 제공 마크 러드
40년 전인 1968년 미국 컬럼비아대에서 반전시위를 주도했던 마크 러드 씨(왼쪽)는 현재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치며 평범한 삶을 살고 있다. 오른쪽은 경찰이 당시 컬럼비아대를 점거한 학생들을 강제 해산하는 모습을 담은 뉴스위크지 표지. 앞 사람의 머리를 움켜잡은 사람이 러드 씨다. 사진 제공 마크 러드
“反戰 외치며 폭력혁명론 신봉… 엄청난 대가 치러”

《1968년 서구 사회를 뒤흔들었던 변혁의 소용돌이는 몇 가지 뚜렷한 공통분모를 갖는다. 유럽 일본 미국에서 시위에 참가한 젊은이들은 개인적 자유의 확대를 소리 높여 외쳤고 기성세대의 도덕률과 마찰을 빚었다. 변화를 꿈꾸었으나 기성 정치권력에 참여하기는 거부했고 일부는 극단적 행동으로 치달았다. 미국 주도의 베트남전쟁에 대한 저항의식은 이들을 한데 뭉치게 만드는 기폭제가 됐다. 특히 전쟁의 당사자였던 미국의 반전운동은 국경을 넘어 전 세계의 1960년대 청년의식과 문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민권운동 지켜보며 성장 베트남 전쟁에 분노

민족해방론-마르크스주의에 자연스레 심취

무장투쟁 추구… 동료 희생 등 끔찍한 결과로

“하나, 둘, 셋, 더 많은 컬럼비아대!(One, Two, Three, Many Columbias!)”

40년 전인 1968년 미국. 베트남전에 반대하는 시위대는 이런 구호를 외쳤다. 당시 컬럼비아대에서 발생한 반전 시위가 미국 전역으로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였다.

단식투쟁, 대학 건물 점거, 경찰의 강제해산으로 이어진 컬럼비아대 사태가 특히 주목받았던 것은 당시만 해도 보수적이었던 아이비리그(동부 명문 8개 사립대) 중에서 최초로 발생한 대규모 학내 사태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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