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국에 띄우는 편지]『북한인과의 만남 대비하세요』

  • 입력 1997년 2월 3일 20시 17분


『러시아가 대단한 나라인줄 알았는데 우리보다 20∼30년 늦었구먼』 최근 모스크바를 다녀간 서울의 한 지도급 인사의 러시아에 대한 첫인상이었습니다. 러시아와 국교를 수립한 지도 여러해가 지났지만 아직도 러시아에 대한 우리나라 사람들의 감정은 「호기심 반 두려움 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두렵고 이국적인 나라에 갓 부임한 89년 3월 어느 일요일 아침이 갑자기 생각납니다. 4, 5명의 동양인이 모스크바의 한 일류 호텔 로비를 여유있게 걷고 있었습니다. 우리말이 들려와 『서울에서 오셨습니까』라고 반갑게 말을 걸은 저는 엉겁결에 된서리를 맞았습니다. 『평양에서 왔시오. 남조선 인민이구먼』 북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도 질 수 있겠냐는 심정으로 『남북대화 한번 합시다』하고 맞받아쳤더니 그쪽은 냉소를 지으며 『북남대화디』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들의 실랑이는 곧바로 통일문제로 이어졌고 시간이 흐르며 그들의 언변이 저를 압도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되지도 않는 소리이지만 끊임없이 그네들의 통일노선을 로봇처럼 되풀이했습니다. 뭔가 말을 해야 할 것 같은데 도무지 우리쪽 통일원칙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결국 저는 대한민국 지식인의 한 사람으로서 소견을 떳떳이 밝혀야 겠다는 생각에서 『통일은 민족이 잘 사는 전제아래 이루어져야 하며 시기를 당기기 보다는 서로 이해하는 폭을 넓히는 것이 먼저다』라고 이야기는 했습니다. 그러나 뒤돌아서서 그동안 얼마나 통일에 대해 이론과 정신무장이 덜 돼 있었는지에 대해 많은 후회를 해야만 했습니다. 그저 통일, 통일만 염불처럼 생각했지 어떻게 통일을 이루어야 하는지 또 우리쪽의 기본노선은 구체적으로 무엇인지를 생각해보지 않았던 것입니다. 이같은 경험은 남과 북 모두 외교관계를 맺고 있는 외국에서 생활하는 한국인이면 한번쯤 가졌을 것입니다. 앞으로 10여년 뒤 우리들은 경부고속도로를 달리는 대신 깊은 감회를 가지고 서울과 평양 북경 시베리아로 이어지는 고속도로를 달리게 될 것으로 믿습니다. 그 때를 대비해서라도 아니 통일을 위해서라도 뭔가를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홍성혁<삼성물산 모스크바지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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