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블라인드 채용도 빈틈 숭숭… 채용과정 공정성 지켜주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3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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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 확성기]<1> 일자리 할 말 있습니다
靑 청원 8957건 전수 분석

“중소기업에 취업하는 신입사원에게 연간 1000만 원씩 지원한다면, 중소기업에서 10년 넘게 일한 과장님보다 연봉이 많아지겠죠. 기존 직원들의 좌절감은 더 커질 겁니다.”(33세 중소기업 5년 차 직원 A 씨)

15일 정부의 청년고용촉진방안이 발표된 직후 청와대 국민소통광장에 올라온 청원이다. 이날 공개된 대책에서 ‘중소기업 입사자에겐 연간 1000만 원을 지원한다’는 내용이 논란거리였다. 청원을 올린 사람들은 “퍼주는 방식으론 청년 실업을 해결할 수 없다”며 정책 재검토를 요구했다.

지난해 8월 출범한 청와대 국민소통광장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엔 이처럼 청년취업난의 해결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다. 동아일보 특별취재팀은 게시판 출범부터 이달 28일까지 접수된 전체 글 중 일자리, 창업, 청년취업, 청년실업, 채용의 5개 키워드를 검색하는 방법으로 ‘청년일자리 관련 국민청원’ 8957건을 전수조사했다. 여기서 유의미한 청원 810건을 추려 심층 분석했다.

○ 수당보다 대·중소기업 격차 해소가 우선

수백 건의 글 중에서도 유독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건 ‘중소기업’ 혹은 ‘대기업’과 관련된 청원들이었다. 일자리 자체가 부족하기보단 기업 간 임금과 노동환경의 격차가 심한 한국사회의 민낯이 그대로 반영된 결과다. 특히 최근 발표된 일자리 정책의 문제점을 지적하는 글이 많았다.

“중소기업 입사 시 1000만 원 지원책은 청년 표를 얻으려는 인기영합 정책으로 보이네요. 차라리 대기업 공채를 없애고, 중소기업에서 3년 이상 일한 경력직만 채용하게 해주세요.”

근본적으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격차를 해소하는 것이 지원금 제도보다 우선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한국사회는 대기업 키우기에만 열을 올렸지요. 그 결과 저와 같은 청년들은 대기업에 들어가려다 몸과 마음이 지치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중소기업’이라는 단어가 주는 부정적 이미지를 지우기 위해 ‘애칭’을 붙이자는 제안도 나왔다. “적절한 별칭이 통용된다면, 중소기업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할 수 있을 겁니다. ‘커리어업 컴퍼니’는 어떨까요?”

○ “완전한 블라인드 채용을 원해요”

청원자들은 블라인드 채용의 빈틈을 없애달라고 목소리(57건)를 높였다. 현 제도로는 면접관들이 지원자들의 신상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한 취업준비생은 “블라인드 채용을 한다고 기대했지만 눈 가리고 아웅이었다”며 “서류 전형과 논술은 블라인드로 진행했지만 면접에서는 참조를 하겠다며 지역과 학교를 알 수 있는 서류를 제출하라고 했다”고 밝혔다.

공공기관 지역인재 할당 정책(28건)에 문제를 제기하는 청년들도 적지 않았다. “해당 지역의 대학 출신이 지역인재로 우대받는 것은 불공정합니다. 해당 지역에서 중고교를 졸업하고 우수한 대학에 진학한 사람이 지역인재입니다.”

채용비리를 성토하는 청원(40건)도 청년일자리 글과 관련한 중요 주제였다. 한 청원자는 “채용비리를 뿌리 뽑기 위해 면접시험을 채용기관이 아닌 제3의 면접전문가 집단 또는 기관을 통해 실시해 달라”고 제안했다.

○ “취업난에 울고 역차별에 또 웁니다”

청년들은 ‘고난의 취업전선’은 이미 받아들인 상태였다. 이에 “취업을 잘 되게 해 달라”는 비현실적인 청원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결과의 평등보다 ‘과정의 평등’을 지켜 달라”며 ‘차별’을 주제로 한 청원이 111건이나 됐다.

문재인 정부가 내세운 ‘공공부문 비정규직의 정규직화’(32건)가 대표적이다. 한 청년은 ‘무분별한 정규직화에 반대한다’는 청원을 통해 “비정규직 처우는 개선돼야 한다. 하지만 수십만 명의 취준생이 공공기관 입사를 준비 중이고, 각종 공무원 시험, 공채가 있는 상황에서 비정규직으로 일하는 사람을 정규직으로 전환하는 것은 엄연히 역차별”이라고 비판했다.

취준생과 기업 간 ‘정보의 불평등’을 호소하는 청원도 많았다. 한 청년은 “깜깜이 구직을 강요하는 기업들이 많다”며 “구인광고에 근로조건, 급여 정보도 공개해달라”고 말했다. ‘왜 떨어졌는지 알게 해 달라’는 청원도 있다. “취업 과정에서 가장 어려운 점은 자신의 현재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를 모른다는 점입니다. 채용전형별 점수를 의무적으로 공개해주세요.”

특별취재팀
△팀장=홍수용 차장 legman@donga.com
△경제부=박재명 이건혁 김준일 최혜령 기자
△정책사회부=김윤종 유성열 김수연 기자
△산업1부=신무경 기자
△사회부=구특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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