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무어의 법칙과 황의 법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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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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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경준 산업부 차장
정경준 산업부 차장
미국 인텔의 최고경영자(CEO) 폴 오텔리니는 4일(현지 시간) 3차원 트랜지스터 설계방식을 적용한 반도체 개발을 발표하며 ‘무어의 법칙(Moore's Law)’을 언급했다. “이 놀라운 장치는 새로운 세계를 이끌고, 무어의 법칙을 새로운 영역으로 발전시킬 것입니다.”

여기에 등장하는 무어의 법칙은 훗날 인텔의 공동창업자인 고든 무어가 반도체회사 연구원으로 일하던 1965년 했던 말에서 유래했다. 집적(集積)회로에 경제적으로 쌓을 수 있는 트랜지스터의 수가 1년마다 두 배로 늘어난다는, 다시 말하면 반도체의 성능이 매년 2배로 향상된다는 법칙이었다. 이런 무어의 법칙은 시간이 흐르면서 1년이 2년으로, 다시 18개월로 수정되긴 했지만 반도체 성능의 장기 트렌드를 설명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다 ‘황의 법칙(Hwang's Law)’이 나왔다. 2002년 2월 황창규 당시 삼성전자 기술총괄사장은 국제반도체회로학술회의의 기조연설에서 ‘메모리 신성장론’을 발표했다. 반도체의 집적도가 2배로 늘어나는 시간이 모바일기기 등 비(非)PC 분야의 주도로 1년으로 단축된다는 것이다. 삼성전자는 정확히 1년마다 성능이 두 배로 향상된 반도체를 만들어내 황의 법칙을 증명했고, 세계 반도체 시장의 최강자로 군림할 수 있었다. 국내외 언론은 삼성전자의 새 반도체가 나올 때마다 ‘이번에도 황의 법칙이 맞아떨어졌다’고 썼고, 무어의 법칙은 점점 잊혀졌다. 무어의 법칙과 함께 인텔 역시 모바일 시대에선 힘을 쓰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인텔의 CEO가 신제품 개발을 발표하는 자리에서 무어의 법칙을 들고 나온 것이다. 이는 창업자에 대한 예의를 갖추기 위함만은 아니다. 무어의 법칙으로 상징되는 미국 반도체의 부활을 강조하려는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연구실 수준의 제품 개발과, 이를 양산해 시장에 내놓는 것은 다르다며 일단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는 반응이다. 며칠 전 일본 엘피다가 25nm(나노미터·1nm는 10억분의 1m) D램을 개발해 연내 상용화하기로 했다고 밝혔을 때도 삼성전자는 그다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았다.

삼성전자의 반응대로 그게 별것 아니라면 다행이다. ‘삼성 공화국’이라는 말이 역설적으로 증명하듯 삼성전자는 대한민국의 간판 기업이자 ‘효자 기업’이기 때문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155조 원 매출에 17조 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매출의 대부분은 해외에서 발생한다. 이렇게 해서 3조 원이 넘는 법인세를 냈다. 작년 말 현재 본사에서만 9만5695명의 직원을 고용했다. 이 중 정규직이 9만4290명일 정도로 고용창출에도 한몫한다. 삼성전자가 도전을 이겨내고 ‘잘나가야 하는’ 이유다.

황창규 지식경제부 R&D전략기획단장은 6일 기자와의 통화에서 황의 법칙에 대해 이렇게 얘기했다. “1년에 한 번 성능이 2배로 향상된 반도체를 만들어내는 것은 정말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삼성전자는 해냈습니다. 황의 법칙은 사실 법칙이라기보다는 달성해야 할 목표였던 셈입니다.”

제아무리 큰 기업도 다가오는 위험에 눈을 감고 현실에 안주하면 한순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다. 이제는 회사를 나간 황 전 사장이 걸린다면 이건희 회장의 성을 따 ‘이의 법칙’이라 불러도 아무 문제없다. 삼성전자가 경쟁자들을 멀찌감치 따돌릴 수 있는 첫걸음은 위기의식을 갖고 ‘힘든 목표(stretched goal)’를 세운 뒤 이를 달성하기 위해 달리는 것이다.

정경준 산업부 차장 news91@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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