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LH 미착공 51만채의 피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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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5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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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 경제부 차장
이진 경제부 차장
어느덧 올 한 해가 절반을 향해 줄달음치고 있다. 올해 초에 다짐했던 목표가 가물가물한 이가 많을 듯하다. 새해 목표를 세우는 일 자체가 굴러 떨어질 바위를 밀어 올리는 시시포스의 헛된 노동처럼 비칠 수도 있다. 물론 스스로에게 한 약속을 지키지 못해 생기는 피해나 부작용의 영향권은 그리 넓지 않다. 금연이나 절주 등을 이행하지 못한 피해는 가족 구성원이나 직장 동료 정도로 제한된다는 말이다.

하지만 정치인이나 국가, 공기업이 국민을 대상으로 제시해 놓은 약속을 지키지 않았다면 사정이 아주 다르다. 약속의 무게감이나 파장권역이 한 개인의 다짐과는 비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동남권 신공항이나 과학비즈니스벨트가 들어설 자리를 놓고 벌어졌거나 벌어지고 있는 상황 때문에 이런 생각을 떠올리는 것은 아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가 정부로부터 사업승인을 받아놓고 착공하지 않은 공공주택 누적물량이 무려 51만 채에 이른다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 계기였다.

LH의 승인 후 미착공 물량은 2001년 7만 채에 그쳤다. LH가 2009년 10월 출범했으니 그 이전은 옛 대한주택공사에 해당되는 일일 것이다. 어찌됐든 이 미착공 물량이 10년 만에 7배 넘게 폭증했다. 2004년 이후 옛 주공이든 LH이든 한 해에 대략 10만 채 정도의 공공주택을 짓겠다고 승인을 받았다. 그러니 51만 채라면 5년 동안 승인 받은 물량의 합계에 해당한다. 즉 LH는 5년 분량의 공공주택을 짓는다고 해놓고 손을 놓고 있었다는 말이 된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된 데는 사업승인을 후하게 한 정부의 잘못이 가장 크다. 특히 참여정부 때 LH에 한 사업승인이 비약적으로 증가했다. 승인 건수는 2004년에 10만 채를 넘어섰고 2007년에는 14만 채 선을 돌파했다. 그 배경에는 국민임대주택 100만 채를 짓겠다는 의지가 놓여 있었다. 승인을 많이 한 데 그치지 않고 승인을 빨리 하도록 택지 확보 절차를 이전의 절반 수준인 2년으로 줄여 주었다. 현 정부 들어서도 승인 물량은 줄어들지 않았다. 역대 정부가 승인 물량을 ‘공급 실적’이라고 표현하는 것 자체가 옳지 않다.

승인 물량이 폭주한 반면에 LH의 체력은 갈수록 허약해져갔다. 공공주택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임대주택은 초기에 사업비가 모두 들어가지만 이 돈을 회수하는 데는 5∼30년이 걸린다. 임대주택을 지으면 지을수록 빚이 쌓여 간다는 얘기다. 옛 주공이 옛 한국토지공사와 통합할 때 부채가 이미 64조 원을 넘었다. 2009년 LH의 부채는 109조 원으로 불어났고 지난해에는 125조 원이 됐다. 내년에는 143조 원까지 늘어날 것으로 추정된다. 부채 규모로 볼 때 공기업 중 1위다.

결국 LH는 지난해 공공주택 1만5000채를 착공하는 데 그쳤다. 최근 10년간 최저 수준이다. 서민의 주거안전망을 책임지는 공기업으로서는 ‘기능 마비’ 상태라고 봐야 한다. LH는 올해 착공 물량을 6만 채 수준으로 끌어올린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 약속을 지킬지는 올 연말에나 알 수 있다. LH의 현 상황을 누구의 책임으로 돌릴지는 각기 판단이 다를지 모른다. 하지만 최종적인 피해자는 서민이라는 데는 다른 의견이 있을 수 없다.

이진 경제부 차장 lee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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