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시각]금융위기가 MB에게 준 행운과 불행

  • 동아일보
  • 입력 2011년 1월 2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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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 MB는 운이 좋은 리더라는 생각이 든다. 연간 경제성장률 7%,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7대 강국을 의미하는 ‘747공약’만 해도 그렇다. 2009년 집권 2년차에 불어닥친 글로벌 금융위기가 없었다면 정권 후반기로 갈수록 “747 공약을 지키지 못했다”며 끊임없이 시달렸을 것이다. 하지만 금융위기 덕분에 747공약에 대해 이야기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더욱이 MB는 금융위기를 세계 어느 리더보다 훌륭하게 극복해냈다. 각 경제주체의 몸에 각인된 외환위기 학습효과가 1등 공신이지만 MB의 중요한 업적임은 분명하다.

사실 747공약은 지키기 어려운 공약이다. 전문가들은 한국 경제의 잠재성장률을 3∼4%대로 본다. 마라토너가 초반 급피치로 생체리듬을 잃어버리면 후반에 레이스를 포기하기 십상이다. 경제도 잠재성장률을 넘어 과열되면 심각한 후유증을 겪는다. 금융위기가 오지 않았고 MB 정부가 747공약을 4대강 사업처럼 밀어붙였다면 ‘신용카드 사태’ 이상의 위기가 왔을 가능성이 있다.

하지만 운은 여기까지다. 이번 위기는 MB 정부의 철학적 기반인 신자유주의라는 엔진을 일순간에 고철로 만들어버렸다. 위기가 없었다면 MB 정부는 ‘최소한의 정부, 최대한의 경제적 자유’를 추구하는 경제 정책을 일관되게 추진했을 것이다. 의료, 교육 등 서비스업 자유화, 공기업 민영화, 대기업슈퍼마켓(SSM) 확장, ‘통큰치킨’ 파동은 다르게 전개됐을 것이다.

하지만 전 세계적으로 “경제적 자유의 극단적인 추구가 위기의 원인”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서 각국 정부는 신자유주의 정책을 후퇴시키고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이런 변화는 MB 정부의 철학적 토대를 뿌리째 뒤흔들었다. 결국 2010년 집권 3년차 정부는 새로운 밑바탕을 어떻게 그릴 것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 없이 ‘수사학의 정치’와 ‘땜질정책’으로 1년을 보냈다. 대표적인 사례가 ‘공정사회론’이다. 전 국민이 공감하는 좋은 어젠다를 제시했지만 실천은 물론이고 구체적인 개념과 로드맵도 제시하지 못하면서 공정사회론은 껍데기만 남았다.

‘동반 성장’도 마찬가지다. 상생(相生)경제에 대한 구체적인 그림 없이 MB 정부의 동반성장론은 그냥 대기업에 대해 중소기업에 퍼주기를 압박하는 형태로만 전개되고 있다. ‘정의론 신드롬’이 생길 정도로 사회 저변에 불만이 증폭되고 있음은 절감했지만 즉흥적으로 대응해서 생긴 현상이다.

2011년 집권 4년차로 접어들면서 MB 정부의 경제정책은 이제 ‘철학의 부재(不在)’ 상태로 접어드는 느낌이다. 대통령이 기업 총수들을 불러놓고 으름장을 놓아 경제정책을 추진하고, 물가정책은 전 경제부처가 달려들어 기업들에 제품이나 서비스 가격을 내리라고 윽박지르는 식으로 추진된다. 금융당국은 은행들에 부실 덩어리 저축은행을 떠안으라고 떠밀고 있다.

정책의 밑바탕을 형성하는 철학이 없으니 청와대와 정부는 공유할 비전도 없게 되고 장관이나 기관장들은 대통령이 하는 말의 배경을 파악할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대통령의 말 자체’를 충실히 따르는 경쟁만 있을 뿐이다.

이런 상태가 지속된다면 훗날 MB는 ‘4대강 대통령’으로만 기억될까 우려스럽다. 일 열심히 하는 대통령으로 모두 인정하는 MB가 이 정도 평가를 받는다면 본인은 물론이고 국민 모두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이병기 경제부 차장 ey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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