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EO밀착취재]김뇌명 기아차 사장

  • 입력 2001년 10월 29일 18시 52분


기아자동차 김뇌명(金賴明·59) 사장은 재계의 최고경영자(CEO) 가운데 외유내강(外柔內剛)이란 말에 가장 딱 어울리는 인사로 꼽힌다. 비교적 늦은 나이에 CEO 자리에 올라 대기만성(大器晩成)이란 말도 늘 그의 곁을 따라다닌다.

기아차 사장에 선임되기까지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았던 김 사장은 두 달 동안 회사경영을 파악하고 이제 본격 비상(飛翔)을 위한 준비를 끝냈다.

‘대기만성형’이라고 하지만 그가 진급이 늦었던 것은 아니다.

김 사장은 “입사 동기생보다 승진이 늦지는 않았고 지극히 정상적인 속도로 계단을 밟았을 뿐”이라면서 “일찍 올라가면 일찍 물러나고, 늦게 올라가면 늦게 물러나는 것이 세상 순리”라며 웃었다.

김 사장의 이력은 간단하고 명쾌하다. 69년 첫 직장으로 현대차에 발을 들여놓은 이래 32년간 한 우물만 판 ‘정통’ 자동차 맨이기 때문.

현대그룹 공채출신인 그는 입사 때부터 ‘자동차’를 고집했다. 당시는 현대건설이 그룹 내에서 잘 나가던 시절.

경남 밀양 출신인 김 사장은 가정 형편 때문에 일찍 취직을 해야 했기 때문에 대학 4학년때 현대차를 찾았다. 하지만 사규 때문에 조기채용은 거절 당했다.

두달뒤 정기 공채시험에 응시했고 오기가 발동한 그는 입사지원서에 1, 2, 3지망을 몽땅 현대차로 적어냈다.

그는 “입사시험을 다시 치른다 해도 자동차를 지망할 것”이라는 말로 외길 인생에 대한 자부심을 내비쳤다.

30년이 넘는 직장생활 동안 현대차 신화로 불리는 ‘포니 프로젝트’는 잊을 수 없는 대목. 프로젝트에 참가한 그에게 떨어진 지상명령은 공장 건설에 필요한 차관 도입건을 준비하라는 것이었다.

그는 미국과 일본의 자동차산업을 참고해 급상승 곡선형의 ‘국내 자동차 수요 예측도’를 만들어 당시 경제기획원(EPB)에 내밀었다. 이 전망보고서는 지금 와서 돌이켜보아도 꽤 정확히 들어맞았다는 것이 현대자동차 측근의 전언이다.

입사 이후 그는 주로 해외사업 부서에서 잔뼈가 굵었다. 이때문에 그는 국내보다 미국 등 해외에서 더 잘 알려져 있다. 바이어들에게 그는 미스터 로이(Roy)로 통한다. 가운데 이름 ‘뇌’의 영문 표기에서 유래한 이름이다.

김 사장은 “나도 내 이름 발음하기가 힘들다”면서 “그러나 이름이 특이해 기억하기 쉽다는 사람도 있다”며 웃었다.

기아차 직원들은 자동차 업계의 대표적인 해외영업통으로 꼽히는 김사장이 수출을 통해 기아차의 ‘재도약’을 활짝 열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일요일이면 예배를 빠뜨리지 않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 마음이 내키면 폭탄주 5잔은 거뜬히 해치우는 주량이지만 담배는 입에 대지 않는다. 골프는 핸디캡 20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즐기는 편. ‘울고 넘는 박달재’가 애창곡이다.

▼김뇌명 사장은…▼

△생년월일〓1942년 7월 일본 출생

△출신학교〓경남고, 서울대(경영학과, 70년 졸업)

△69년 현대자동차 입사

△87년 현대차 이사(해외산업관리실장)

△94년 현대차 전무(기획실장)

△97년 현대차 해외사업본부장

△99년 현대차 부사장(해외사업본부장)

△2001년 8월 기아차 총괄 사장

△취미〓조깅 테니스 등산 등 운동을 즐김

△가족관계〓부인 전현경씨와 1남1녀

<김동원기자>daviskim@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