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정례 의원 하루 한건꼴 공동발의… 10개월간 346건 서명

  • 입력 2009년 3월 19일 02시 53분


품앗이… 재활용… 짜깁기… 의원입법 부실 실태

안이 - 이름 서로 빌려주기… 문구 몇자만 수정… 정부법안 대신 발의

대충 - 10명이상 서명만으로 가능… 정부입법 비해 협의-심사 ‘졸속’

눈치 - 시민단체서 발의 건수로 의정 평가… “질보다 양” 편법 예사

17대 6387건 중 78% 폐기… 18대 벌써 3404건 제출, 통과는 265건뿐

《지난 17대 국회에서 의원들이 발의한 법안은 6387건으로 정부가 제출한 1102건의 6배에 달했다. 18대 국회에서는 채 10개월이 지나지 않았지만 이달 18일까지 의원발의로 제출된 법안은 3404건이다. 같은 기간에 정부가 제출한 579건을 압도하고 있다. 친박연대 양정례 의원은 지난해 5월 30일 18대 국회 개원 후 이달 18일까지 346건의 법안을 발의했다. 이 가운데 양 의원이 대표발의를 한 경우는 5건이고 나머지는 모두 공동발의다. 매일 하루 한 건꼴로 법안 발의에 참여한 셈이다. 국회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는 ‘의원입법’이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다. 》

의원입법이 활성화되는 것은 과거 정부가 제출한 법안을 통과만 시켜줘 ‘통법(通法)부’로 불리던 국회가 제 위상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속사정을 들여다보면 실적 쌓기를 위한 의원입법이 성행하고 있다.

○ 법안 새끼치기 등 수법 자주 사용

민주당 A 의원은 17대 국회에서 B 의원이 발의했다가 임기 만료로 폐기된 ‘건강정보보호법안’을 약간 손봐서 18대 국회에서 다시 발의했다.

B 의원의 법안은 17대 국회 논의 과정에서 다른 법안과 병합 심의를 통해 수정됐지만 이런 사실을 미처 몰랐는지 A 의원의 ‘재활용’ 법안은 B 의원의 원래 법안과 큰 차이가 없었다.

이뿐만 아니다. 17대 국회에서 임기만료 폐기된 법안을 발의한 의원이 엄연히 있는데도 다른 의원이 그 법안을 재활용해 발의하는 웃지 못 할 경우도 있다.

이전 국회에서 발의됐지만 임기만료 폐기된 법안을 다음 국회에 다시 발의하는 ‘법안 재활용’은 특히 임기 초에 많은 편이다.

‘법안 품앗이’도 일상화된 일이다.

A 의원실과 B 의원실이 “우리 법안에 서명해주면 너희 법안 서명해주겠다”는 식의 뒷거래를 하는 것이다. 한 의원 보좌관은 “법안 내용도 제대로 모르고 서명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털어놨다.

‘법안 새끼치기’도 자주 사용되는 수법이다.

예를 들어 취업제한 규정을 완화하려는 의원이 ‘공직자윤리법’과 ‘청소년의 성보호에 관한 법률’ 등 관련 법률의 취업제한규정 조항만 골라서 고치는 방법이다. 이 경우 한 번에 수십 건의 발의 성과를 올릴 수 있다.

의원들이 이처럼 발의 건수 늘리기에 목매는 것은 시민단체들이 법안 발의 건수로 의정활동을 평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정부입법의 경우 국회에 법안을 제출하기 전에 입법예고를 하고 부처 협의와 규제 심사, 법제처 심사 등 까다로운 검토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하지만 의원입법은 10명 이상의 의원 서명만 받으면 손쉽게 발의할 수 있다.

○ ‘묻지 마’ 발의와 청부입법

의원들이 낸 법안 중에는 정부 재정에 부담을 주거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서는 사안인데도 충분한 의견 수렴이나 실현 가능성을 따지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은 편이다. 무턱대고 제출한 ‘나 몰라 법안’이다.

한 헌법 전문가는 “위헌 결정이 난 법률의 70∼80%는 의원입법으로 만들어진 법으로 그중에는 법체계에 안 맞는 법률도 많다”고 지적했다.

반면 정부가 법을 만들어 의원 이름만 빌려서 제출하는 ‘청부 입법’도 드물지 않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 3월 국무회의 자료는 “의원입법인 기업도시개발특별법과 행정중심복합도시 건설을 위한 특별법 등은 사실은 정부가 입안을 지원한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로는 정부가 법안을 만들고 이를 의원에게 넘겨 의원입법 형태로 발의하는 것이다. 의원들은 법안 발의 건수를 올리면서 실적을 낼 수 있고 정부도 까다로운 입법절차를 따르지 않아도 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정부는 한두 개 조항만을 고쳐야 하거나 시급한 법안, 중요한 개혁 법안을 처리하기 위해 이 같은 ‘우회 입법’을 한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런 행태는 분명히 편법이다.

○ 자연사(自然死)하는 법안들

이처럼 부실하게 만들어진 의원입법 법안들은 가결되는 비율도 낮을 수밖에 없다. 17대 국회에서 의원들이 낸 법안의 가결률은 21.1%로 정부가 낸 법안의 51.1%에 크게 못 미쳤다.

18대 국회에서도 발의 법안 수는 의원입법이 5배 정도 많지만 가결 건수는 의원발의는 265건, 정부 제출은 231건으로 비슷했다.

법률적 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해 폐기되는 ‘자연사’ 법안도 많다. 국회 입법조사처에 따르면 17대 국회 의원발의 법률안 가운데 78%가 폐기됐으며 이 중 자연사에 해당하는 ‘임기만료 폐기’가 46.1%로 가장 많았다.

율사 출신의 민주당 박상천 의원은 “법률가도 하루 한 건 보기가 쉽지 않은데 공동발의에 참여하는 의원들이 과연 법안을 읽어보기나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김기현 기자 kimkihy@donga.com

조수진 기자 jin0619@donga.com

민동용 기자 mind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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