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정부에 바란다 ③]김용래/「전문가 職群」을 키워라

  • 입력 1998년 2월 10일 20시 13분


당면한 경제적 국난을 극복하고 21세기를 여는 길목에서 대통령직에 취임하는 김대중차기대통령은 ‘새로운 한국형 발전모형’을 짜야하는 설계자로서의 숙명적 임무를 띠게 되었다. 한때 개발도상국 발전모델의 모범사례로까지 꼽혔던 한국형 경영방식이 총체적으로 파산하게 된 오늘날,새로운 국가경영의 틀을 짜야 하는 것은 이제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생존의 문제라고 생각된다. 특히 정부개혁과 관련, 이미 일부 부처의 통폐합과 중추관리기능의 보강을 내용으로 하는 정부조직개편안이 국회에 제출돼 심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러나 정부기구의 통폐합은 진정한 행정개혁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그것만으로 행정의 질적 변화를 기대할 수는 없다. 94년12월 김영삼 정권이 단행한 중앙행정부처의 통폐합은 그 당시로서는 건국이래 최대의 행정개혁으로 칭송받기도 했다. 하지만 그 이후에 나타난 실적은 오히려 국제통화기금(IMF) 관리체제를 초래한 경제정책 실패의 일부 원인으로 지적되고 있다. 공무원 1천3백여명 감원이라는 것도 직제상의 정원표상으로는 줄었지만 실제로 자연인수가 줄어든 것은 아니었다. 대신 이들은 소위 ‘위성 공무원’이라고 불리며 외국이나 국내 연구기관 지방자치단체 등에 파견되어 신분을 유지하고 있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구현’을 위한 행정개혁의 바람은 무한정 팽창되어온 정부의 기능과 권한의 확대가 초래한 재정지출의 확대,정부의 무능에서 출발하고 있다. 진보주의 시대의 행정기능 확대가 ‘시장실패’에 그 원인이 있었다면 최근의 개혁동향은 거꾸로 ‘정부의 실패’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여기에는 시장원리에 대한 확고한 신뢰와 신보수주의가 자리잡고 있다. ‘작고 효율적인 정부’란 우선 규제와 간섭이 적은 정부이면서도 국민에게 품질좋고 다양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하는 정부를 말한다. 정부개혁의 성공 사례로 거론되는 영국이나 뉴질랜드 등의 행정개혁은 세계화 정보화 시장주도화라는 내외 환경의 변화에 대응하여 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근본적으로 축소하고 재정립하는 기능주의적 접근을 한 것이 그 핵심이다. 우리나라의 정부개혁도 기구통폐합이나 인력감축의 차원을 넘어 총체적 ‘국가경영시스템의 재구축’차원에서 접근되어야 한다. 이에 따라 앞으로의 행정개혁은 다음 분야에 역점을 두고 적어도 5년이상 강도높게 추진돼야 할 것이다. 첫째, 정부의 역할과 기능을 줄이고 재구축한다는 차원에서 정부와 공공기관에서 할 일, 기업과 시장기능에서 할 일, 그리고 시민사회 조직에 맡겨서 할 일을 철저히 구분해야 한다. 그리하여 민간기업화, 분권과 권한이양, 규제철폐 등 다양한 기능분담 방식을 도입해야 한다. 둘째로 개혁의 메스는 우리나라 관료시스템의 개혁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정부조직 개편을 정부의 ‘하드웨어’의 양적 변화라고 한다면 관료시스템의 개혁은 정부의 ‘소프트웨어’의 질적 개혁으로 비유할 수 있다. 지금 우리 관료집단의 가장 큰 병폐는 각 분야별로 깊이있는 전문가가 없다는 점이다. 이는 우리나라 인사행정의 금과옥조처럼 되어 있는 순환보직과 영전의 관행, 그리고 민간 외부 고급인력의 진입을 막는 폐쇄성 때문이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국정분야중 특히 전문성이 필요한 부문을 50∼1백개 정도 지정해서 이른바 ‘전문가 직군(職群)’을 신설하고 채용때부터 국장급에 이르기까지 한 분야에 장기근속토록 하되 이들을 승진 보수면에서 파격적으로 우대하는 방안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끝으로 국회에 계류중인 정부조직 개편안에 대해 한가지 부연하고 싶다. 중앙부처 수의 대폭 감축과 통폐합, 그리고 중추관리기능인 전략적 정책기획의 조정 예산 인사 국무조정 등의 기능을 재배치하고 보강한 점 등은 평가할 만하지만 ‘운용의 묘’를 기하지 못하면 정책의 입안과 집행에 부작용을 일으킬 소지도 없지 않다고 본다. 특히 국가 주요 정책의 수립과 조정에 있어서 사전에 부처단위에서 이를 여과하고 견제, 협조하는 수평적 조정장치가 약화되었다는 점이다. 이와 같은 정부개혁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김차기대통령은 임기중의 일시적인 인기에 연연하지 않고 긴 역사적 안목에서 확고한 철학과 소신을 가지고 새로운 정부혁신 모델을 기필코 정립해 주기를 기대한다. 김용래(전서울시장)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