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빠’, ‘할류’ 같은 신조어가 유행하고 있다. ‘하빠’는 발음이 서툰 아기들이 아빠 역할을 하는 할아버지를 부르는 말이다. 은퇴 후 집에서 삼시 세끼 밥만 축낸다며 ‘삼식이’라 놀림을 당하던 할아버지들이 육아의 주축으로 나서기 시작하며 생겨난 말이다. 지난해에는 전직 경찰서장이 세 명의 손자를 돌보며 <하빠의 육아일기>라는 책까지 출간했다. 소비시장에는 할머니·할아버지들이 큰 손으로 떠오르면서 K-POP 한류 못지않은 ‘할류 열풍’이 불고 있다. 할류족 때문에 아이를 업을 때 두르는 포대기며 면기저귀 같은 옛날 육아용품도 다시 인기다. 처음에는 힘들게 직장 생활을 하는 아들, 딸, 며느리를 돕겠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손주를 키우면서 자녀 때와는 다른 진정한 육아의 즐거움을 느낀다는 할류족들도 많다. 이들은 손주를 ‘떠맡아 키운다’는 수동적 자세보다는 ‘자녀보다 손주를 더 잘 키워보겠다’는 적극적인 자세를 가졌다. 두 외손자를 키운 3년간의 추억을 모은 책 <네가 기억하지 못할 것들에 대하여>를 펴낸 정석희 씨는 “내 일생에서 가장 잘한 일 중 하나를 들라면 손자 녀석 둘을 우리 집에서 키운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맞벌이 가구 중 절반이 조부모에게 육아 맡겨 손주의 육아를 통해 새로운 즐거움을 찾은 조부모들도 있지만, 여전히 조부모 육아는 세대차이, 서로 다른 가치관 등으로 다양한 갈등을 낳고 있다. 2012년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국내 맞벌이 부부 510만가구 중 250만 가구가 조부모 육아를 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두 명 중 한 명꼴이다. 손자·손녀 육아에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노년층은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삶의 질이 떨어진다. 지난해 경기도 가족여성연구원이 조부모가 손주를 돌보는 300가구를 설문조사한 결과 이들은 주당 평균 5.6일을 양육에 쏟고 있었다. 주 5일 이상 손주를 돌본다는 노년 응답자가 99%, 주 6일 이상은 48%였다. 일평균 양육 시간이 9∼11시간에 달하는 응답자가 46%, 12시간 이상은 22%였다. 지난해 부산여성가족개발원이 맞벌이 가구의 조부모 476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실태는 더 충격적이다. 72.5%의 응답자가 “육아휴직제, 탄력근무제 등을 편하게 사용할 수 있다면 손주 양육을 그만두겠다”고 토로했다. 61.3%는 손자녀를 돌볼 때 “취미생활이나 사회생활을 할 수 없다”고 답했고 “체력적으로 힘들다”고 응답한 비율이 60.5%, “돌봄시간이 너무 길다”는 이들은 49.8%였다. 이처럼 아무리 눈에 넣어도 안 아픈 손주이지만 “애 볼래? 밭 갈래?” 하면 밭 간다는 속담이 있는 것처럼 조부모에게 육아란 쉬운 일이 아니다. 상담을 하다보면 부모는 부모대로 조부모는 조부모대로 ‘부딪히고, 힘들고, 서운하고, 눈물 나는’ 어려움과 갈등이 있기 마련인데, 이는 우리 집만의 문제가 아닌 사회 보편적인 현상이다.
공감을 위한 대화의 기술 익혀야 먼저 아이를 본다(양육)는 입장이 얼마나 힘든지 공감하는 것이 중요하다. 실제 손주육아를 하는 조부모들과 상담을 하며 다양한 사례를 접할 수가 있었는데, 중요한 것은 서로의 입장을 공감하고 이해하려는 노력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러한 노력의 필요성을 실감하여 필자는 조부모들과 부모들이 서로 말하지 못하고 가슴에만 담아두었던 이야기를 책으로 집필 중이다. 본 서적을 통해 조부모와 부모들은 서로를 좀 더 잘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결국, 조부모 육아에서 중요한 것은 갈등을 문제로만 받아들이지 말고, 가족 간의 대화를 통해 유대감을 단단하게 만드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것이다. 조부모 육아에서 생기는 갈등은 근본적으로 아이를 잘 키우려는 마음에서 나온 것이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의 갈등도 대화의 소재가 되어야 한다. 대화의 중요성은 누구나 알고 있지만 실천하기 쉽지 않은 것 역시 가족 간의 대화이다. 그렇기에 가족 간의 대화일수록 ‘대화의 형식’을 갖추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대화할 때 ‘마주 앉아서 차 한 잔 놓고’ 대화를 시작하는 것도 중요하다. 서로의 마음을 열고 ‘들을 준비’를 한 후에 나누는 대화가 ‘참대화’이다. 언성을 높이고 자신의 말만 한다면 그건 대화가 아니라 ‘큰소리치기’에 불과하다. 대화의 기틀을 만들기 위해서, 부모들은 조부모에게 육아를 맡기며 감사의 말을 꼭 표현해야 한다. 가족끼리니까 좋은 말, 감사의 말은 생략하기 쉽다. 조부에게 ‘미(미안합니다), 고(고맙습니다), 사(사랑합니다)’를 꼭 표현하자. 아이에게만 ‘칭찬’과 ‘격려’가 필요한 게 아니다. 조부모의 잘하는 점에 대해 칭찬과 격려를 아끼지 말자. 그리고 무엇보다 아이가 조부모를 존경할 수 있도록 아이 앞에서 조부모의 장점을 자주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 아이 앞에서 조부모를 깔보는 듯한 언행을 하면서 아이가 조부모의 말을 잘 듣기를 바라는 것은 어불성설(語不成說)이다. 부모가 조부모에게 하는 행동을 아이가 그대로 보고 배운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부모와 조부모의 좋은 관계가 아이의 건강한 성장과 발달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항상 기억하자.
TIP 임영주 교수의 조부모 육아의 갈등 해결법 1 조부모를 가르치려고 하지 않아야 한다. ▶ 상대를 바꾸기보다 내가 변하면 된다는 말을 기억하자 2 조부모의 양육방식을 존중하자. ▶ 조부모는 현재 부모보다 아이를 많이 키워본 육아의 고수라는 점을 인정하자. 3 부모도 최신 육아 방식대로 아이를 양육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하자. ▶ 최신 육아법을 조부모에게 요구하지 말자. 4 조부모의 수고에 진심으로 감사하는 표현을 자주하자. ▶ 말 한마디에 천 냥 빚을 갚는다는 말이 있다. 감사의 표현은 많이 할수록 좋다. 5 양육비는 용돈 형식이 아니라 ‘월급’ 형식으로 드리자. ▶ 일정 액수(형편 말씀드리고)를 일정한 날짜에 드리는 것이 좋다 기사제공 = 엠미디어(M MEDIA) 라메드 편집부(www.remed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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