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영만의 ‘자전거 식객’] 매콤달콤 고추장 색동옷 입은 오동통한 관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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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1년 4월 19일 07시 00분


7.태안~보령<하>

수심 30m의 뻘바닥에서 잠수사들이 일일이 손으로 캐내는 천수만의 키조개는 씨알이 굵고 깊은 단맛이 난다. 키조개를 요리하는 방법은 50가지가 넘지만 그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이 매운 양념과 야채를 넣고 철판에 볶는 두루치기. 허영만 대장이 키조개 관자 시식에 앞서 젓가락을 통해 전해오는 쫄깃한 육질의 느낌을 음미하고 있다.
수심 30m의 뻘바닥에서 잠수사들이 일일이 손으로 캐내는 천수만의 키조개는 씨알이 굵고 깊은 단맛이 난다. 키조개를 요리하는 방법은 50가지가 넘지만 그 중 가장 일반적인 것이 매운 양념과 야채를 넣고 철판에 볶는 두루치기. 허영만 대장이 키조개 관자 시식에 앞서 젓가락을 통해 전해오는 쫄깃한 육질의 느낌을 음미하고 있다.
오천항 명물 ‘키조개 두루치기’

승부욕을 자극하는 남당리 뽑기 내기에 이어 천북 굴구이 점심은 두터운 봄볕에 나른해진 자전거 여행길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소풍 나온 어린 아이들처럼 왁자지껄 떠들며 천북을 빠져나가는 페달링에 힘이 실렸다. 다음 목표는 보령 오천항. 홍성에서 천북까지 타고 내려온 40번 지방도로가 해안에서 멀어지기 시작했다. 당진 합덕에서 시작된 40번 도로는 홍성∼천북 구간에서 해안과 평행으로 달리다 천북에서 내륙으로 급격히 방향을 틀어 부여, 공주 방면으로 흐른다. 오천항까지 연결은 되지만 장은, 장곶을 거치며 활처럼 휘어져 있었으므로 우리는 항상 그래왔듯 ‘MTB라면 역시 오프로드’를 외치며 보다 짧아 보이는 산길로 파고들었다.

MTB는 오프로드지! 오천항 가는 길 산길 선택
점점 좁아지는 길…아, 이 길이 아닌가봐!
동네 아주머니 “왔던 길 다시 가”…결국 15㎞ 우회


쾌적한 산길 오프로드 만끽하다…길 잃어 ‘사서 고생’

오천항을 직접 노리고 산을 넘고 마을 뒷길을 내달려 사호리를 지나 오천항에 연이어 붙은 북쪽 해안마을 학성리까지 남하한다. 야산 양지바른 사면엔 지난 겨울의 모진 추위를 견딘 진달래가 꽃망울을 틔울 준비를 하고 있고, 관목들도 물이 오르기 시작했다.

위성지도로 봤을 때는 산과 산 사이로 실처럼 가늘게 나있는 길이어서 경사가 심할 수도 있겠다 싶었다. 그러나 길은 뜻밖에 부드럽고 안락해 변속이 거의 없는 쾌속 질주. 아직 본격 농사철이 아니어선지 들녘에 인적이 없었다.

알고 보니 마을 사람들은 대부분 비닐하우스 농막에서 굴 까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손가락 길이의 굴칼로 껍질을 헤집고 알맹이를 꺼내 광주리에 모아 담는 아낙들의 손길이 분주하고도 경쾌하다.

하지만 굴 까는 아낙들의 경쾌한 손놀림과는 달리 자전거에 올라 탄 우리들은 왠지 불길한 예감에 사로잡혔다. 이제 오천항이 코앞인데 아까부터 어째 길이 점점 좁아지고 굴곡이 심해진다 싶더니 학성리 보건소 부근에서 길을 잃어버린 것이다.

설마하며 굴을 까고 있던 동네 아주머니들께 물어보니 웬걸, 오천항까지는 다시 온 길을 되짚어 나가 하만삼거리까지 가서 40번 지방도를 타고 보령교를 넘는 것 외엔 길이 없단다. 문제는 지도를 꼼꼼히 살피지 않은 탓이었다. 오천항은 광천에서 흘러나온 강물이 천수만으로 흘러드는 합수 지점인데 하구의 마지막 다리인 보령교는 훨씬 상류지점에 위치해 있고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산을 넘어 하구 끄트머리에 와있었던 것이다.

오천항을 넘어 해안선 코스를 이어나가려면 보령교 외에는 답이 없다. 현재 위치(학성리)에서 오천항의 건너편은 직선거리로 1.5km 남짓이지만 중간에 길이 없는 산이 가로막고 있기 때문에 하만 삼거리까지 후퇴했다가 40번 국도를 타고 보령교를 건너가는 길은 그 10배인 15km. 15km라면 1시간 30분 정도면 주파할 수 있는 만만한 거리지만 그보다는 목적지를 지척에 두고 왔던 길을 되돌아가야 한다는 사실에 힘이 빠지는 것이다.

낙담한 우리들이 안 되어 보였는지 아주머니들은 “정 그렇다면 어선을 얻어 타고 건너는 방법도 있다”고 했으나 그마저 썰물 때라 배가 뜰 수 없는 것으로 밝혀져 좋다 말았다.

길이 없는 산을 넘거나 해안을 따라 가는 수를 생각하며 이리저리 머리를 굴려보다 결국 정석을 택하기로 했다. 그동안 길이 아닌 곳으로 들어갔다가 후회 막급한 상황을 많이 겪어 본데 따른 학습효과다. 결국 15km를 우회해 오천항까지 가는 길은 흥도 나지 않고 힘들었다.

1. 키조개와 함께 오천항에서의 저녁 식탁을 다채롭게 만들어준 주꾸미 연포탕. 봄을 맞아 새로 돋아난 쑥갓과 파만으로도 훌륭한 맛을 냈다.2. 허영만 대장이 겨우내 쓰고 다니던 두꺼운 모자와 옷을 벗고 화사한 노란색 패션으로 탈바꿈 했다. 보안경까지 노란색이어서 병아리 같다는 평이 나오자 미소를 짓고 있다.3. 남당리에서 오천으로 이어지는 해변 자전거도로. 서해안에서 강화도 다음으로 자전거도로가 잘 만들어져 있는 구간이었다. 불청객 황사가 몰려오기 시작했지만 갯벌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봄을 알렸다.
1. 키조개와 함께 오천항에서의 저녁 식탁을 다채롭게 만들어준 주꾸미 연포탕. 봄을 맞아 새로 돋아난 쑥갓과 파만으로도 훌륭한 맛을 냈다.
2. 허영만 대장이 겨우내 쓰고 다니던 두꺼운 모자와 옷을 벗고 화사한 노란색 패션으로 탈바꿈 했다. 보안경까지 노란색이어서 병아리 같다는 평이 나오자 미소를 짓고 있다.
3. 남당리에서 오천으로 이어지는 해변 자전거도로. 서해안에서 강화도 다음으로 자전거도로가 잘 만들어져 있는 구간이었다. 불청객 황사가 몰려오기 시작했지만 갯벌에서는 아지랑이가 피어올라 봄을 알렸다.

숭어회 곁들이니 천상의 맛이로세 졸깃졸깃

문제의 보령교를 건너 오천항으로 들어서자 풍경이 왠지 낯익다.

“데자부인가? 대장님, 어쩐지 전에 이 곳을 본 적이 있는 것 같아요.” 묘한 기분이 들어 허화백에게 말을 건넸다.

“여기 재작년 집단가출호 2차 항해 때 정박지였잖아. 격렬비열도를 들러 이리로 입항했었고 여기서 또 어청도, 상왕등도를 거쳐서 목포항까지 야간항해로 달린 것 생각 않나?” 그제서야 세일링 요트 몇 척이 정박되어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맞다. 이게 바로 그 오천항…. 풍경은 바다에서 바라보는 육지와 육지에서 바라보는 바다는 사뭇 다른 것이어서 이번엔 육로를 통해 들어오니 못 알아본 것이다.

오천항엔 사연이 많았다. 대한민국 영해의 서쪽 끝 격렬비열도를 돌아오는 300km가 넘는 긴 항해로 녹초가 되어 입항할 때, 항 입구까지 마중을 나와 줬던 오천요트클럽의 형제들이 있었고, 또 정박 중에 강풍이 불어 배가 떠내려가기 직전의 상황에 몰리기도 했던 곳…. 당시 항해에 참가했던 허영만 선장을 비롯한 집단가출 멤버들은 한동안 항해의 추억에 빠져들었다.

낯익은 풍경? 알고보니 한반도 요트일주때 왔던 곳
달콤 매콤한 키조개두루치기와 숭어회 맛이 일품
30년 잠수사 주인장의 이바구에 어느덧 어둠이…


오천항 봄은 키조개 시즌, 살집 두툼한 관자 두루치기의 달콤함

오천항의 상류는 토굴 새우젓으로 유명한 광천이다. 보령교 둑이 건설되며 뱃길이 막혀 광천이 내륙이 되어버렸지만 옛날엔 새우를 실은 배가 광천까지 들어갈 수 있었던 것이다.

오천항은 예로부터 중국, 일본과 교역이 활발했던 곳으로 특히 신라시대엔 당나라와의 무역에 중요한 역할을 한 곳이다.

포구 일대의 해산물이 다양하고 비옥한 평야가 있어 물산이 풍부했는데 이를 노린 왜구의 침입이 잦자 고려시대부터 수군이 주둔, 조선시대엔 충청수군의 사령부가 설치됐으며 그 흔적이 오천석성으로 남아있다.

오천항의 봄은 키조개의 시즌이다. 해마다 이맘 때면 남서해를 통틀어 전국 키조개의 70%가 유통되는 파시가 열린다. 선창가는 물론 널찍한 공터마다 키조개를 열어 하얀 속살을 발라내는 아주머니들의 손길이 분주하다.

저녁식사를 위해 주인의 인상이 넉넉해 보이는 식당을 찾았다. 메뉴는 키조개 두루치기. 키조개는 살집이 두터운 관자가 핵심으로 고기의 결이 부드러워 식감이 좋은데다 달콤한 맛이 난다. 고추장과 양파, 깻잎, 청양고추를 넣고 철판에 둘둘 볶아 입에 넣자 독도 실패로 인해 먼 길을 돌아온 피로감이 멀리 사라진다. 거기다 주인장이 자전거 타느라 힘들었겠다며 숭어 두 마리를 잡아 번개처럼 회를 떠 내왔는데 키조개두루치기의 달콤 매콤한 맛과 숭어회의 차갑고 맑은 맛이 어우러져 저녁 식탁 위의 식도락은 피크를 이뤘다.

30여 년 동안 바다 밑을 드나들며 키조개를 캤다는 주인장이 한가한지 식탁에 붙어 앉아 설명이 곁들인다. 키조개는 모양이 곡식을 까부르는 키처럼 생겼다 해서 붙은 이름으로, 남녘바다에선 개두, 부산에서는 채이, 마산에서는 챙이조개라고 부른단다. 양식도 있지만 드물고 대부분이 수심 30m쯤의 해저 뻘바닥에 박혀 자라는 자연산.

잠수를 해서 잡기 때문에 물이 맑은 봄철에 많이 생산되는데 보령 지역의 키조개는 남해 등지에 비해 깊은 수심에 산다. 때문에 오천에서 머구리(잠수사)를 했다면 따로 부연 설명을 하지 않아도 전국에서 가장 뛰어난 잠수 실력을 가진 것으로 인정받는단다.

이제 아들 둘에게 키조개 머구리의 업을 넘기고 식당일을 하고 있는 늙은 전직 머구리의 조근조근한 말소리와 조갯살이 철판에서 지글지글 익어가는 소리…. 오천항의 밤은 그렇게 깊어갔다.

송철웅 아웃도어 칼럼니스트 timbersmith@naver.com
사진|이정식 스포츠 포토그래퍼 moto144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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