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북중미월드컵 열기가 달아오르고 있다. 월드컵이 열릴 때마다 어느 나라가 우승을 차지할지, 어떤 선수가 활약할지와 함께 또 하나 주목받는 것이 바로 공이다. 이번 월드컵 공인구는 스페인어로 3개의 파도를 뜻하는 ‘트리온다(Trionda)’다. 세 개최국인 캐나다, 멕시코, 미국을 각각 상징하는 붉은색, 초록색, 푸른색의 화려한 물결무늬가 눈에 띄지만, 과학자들이 주목하는 것은 화려한 색상 이면에 숨은 표면 구조다.
역대 월드컵 중 가장 적은 4개 패널로 만든 공 축구공은 둥글기만 하면 되는 물체가 아니다. 월드컵 공인구는 공중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날아가고, 어느 정도 휘어지며, 어느 순간 속도를 잃고 떨어질지를 고려해 대회마다 새롭게 설계한다. 이에 따라 공 겉면을 구성하는 조각인 패널 수도 변한다. 자블라니(2010 남아공)는 8개 패널, 브라주카(2014 브라질)와 텔스타18(2018 러시아)은 6개 패널, 알 리흘라(2022 카타르)는 20개 패널로 만들어졌다. 이번 트리온다의 가장 큰 변화는 공기역학을 고려해 남자 월드컵 공인구 역사상 가장 적은 4패널 구조를 택했다는 점이다.
패널 수가 달라지면 공 표면을 가르는 이음선의 길이와 배치도 달라진다. 트리온다는 4개 패널이 정사면체처럼 맞물리는 구조지만, 각 패널 가장자리를 곡선으로 처리해 구(球)에 가까운 형태를 구현했다. 매끈해 보이는 외관과 달리, 큰 골격을 단순화하고 홈과 이음선으로 공기 흐름을 조절한 것이 이번 공인구 설계에서 핵심이다.
공기역학적으로 볼 때 축구공은 너무 매끈하면 안 된다. 공 표면을 따라 흐르는 공기층이 불안정해져 공이 예측하기 어려운 궤적을 그릴 수 있어서다. 2010 남아공월드컵 공인구 자블라니가 골키퍼들에게 악몽으로 기억된 이유도 여기 있다. 자블라니는 상대적으로 매끈한 표면 탓에 무회전 공이 좌우로 흔들리거나 갑자기 떨어지는 너클볼 같은 움직임을 보였다.
트리온다는 자블라니보다 넓고 깊은 이음선을 사용하고 패널 표면에 홈과 미세한 질감을 더했다. ‘계산된 거칠기’를 통해 공 표면 공기 흐름을 조절한 셈이다. 존 에릭 고프 미국 퓨젯사운드대 물리학과 교수 연구팀과 홍성찬 서울여대 스포츠학과 교수 연구팀 등이 참여한 공동 연구진이 학술지 ‘응용과학(Applied Sciences)’에 발표한 논문에도 이러한 특징이 나타난다. 공기역학 특성을 실험한 결과, 트리온다는 공기 저항이 급격히 바뀌는 ‘드래그 크라이시스(Drag Crisis)’ 현상이 시속 약 43㎞에서 나타났다(그래프 참조). 이는 브라주카의 시속 50~65㎞, 자블라니의 79~97㎞보다 낮은 수준이다. 그 결과 이전 공인구보다 비행 안정성이 높고, 불규칙 궤적이 줄어들 확률이 높은 것으로 분석됐다.
다만 고속 구간에서는 공기 저항이 컸다. 이에 따라 트리온다 롱볼은 좀 더 빨리 속도를 잃고, 예상보다 짧은 거리에 떨어질 수 있다고 연구진은 예상했다. 이번 실험은 회전하지 않는 공을 대상으로 한 것으로, 실제 경기에서는 공의 회전, 경기장의 기압과 온습도 등에 따라 다르게 작용할 수 있다.
3개국 16개 구장을 묶어낼 잔디의 과학 2026 북중미월드컵에서 잔디 관리는 까다로운 과제가 됐다. 잔디 길이와 밀도, 수분 상태에 따라 공이 구르는 속도 및 바운드, 선수의 발 디딤이 달라지는데 이번 월드컵은 미국, 캐나다, 멕시코에 있는 16개 경기장에서 열린다. 더운 야외 경기장, 서늘한 도시 경기장, 햇빛이 충분히 들지 않는 돔형 미식축구 경기장 등 서로 다른 환경에서 104경기가 진행된다. 국제축구연맹(FIFA)이 2018년부터 미국 테네시대와 미시간주립대 연구진에 2026 북중미월드컵용 잔디 연구를 맡긴 이유다. 연구진은 경기장별 잔디 품종과 깎는 높이, 뿌리 구조, 배수와 관수 방식 등을 검토하며 최근 5년 동안 170건 넘는 실험을 진행했다.
잔디 길이는 그중 가장 민감한 변수다. 5㎜ 차이만으로도 경기장은 벨크로처럼 발과 공을 붙잡는 표면이 될 수도 있고, 빠른 패스를 돕는 매끄러운 천연 카펫 같은 표면이 될 수도 있다. 연구진은 이런 차이를 수치로 확인하고자 작은 실험용 경기장에서 공을 쏘아 보내 속도와 바운드를 측정하고, 축구화가 달린 장치로 잔디 표면을 반복적으로 눌러 선수의 발 디딤과 미끄러짐, 표면 탄성을 확인했다.
기후 차이에 따라 잔디 품종과 관리 방식도 다르게 적용했다. 덥고 습한 지역에는 촘촘하게 자라고 빨리 마르는 버뮤다그래스를 쓰고, 서늘한 지역에는 밀도와 색을 유지하기 쉬운 켄터키 블루그래스와 퍼레니얼 라이그래스를 섞어 쓰는 방식이다. 여기에 인조잔디에 사용하는 것과 비슷한 플라스틱 섬유를 천연잔디에 섞어 써 표면이 쉽게 파이거나 밀리지 않도록 보강했다.
잔디 관리가 경기장의 물리적 조건을 맞추는 기술이라면, 판정은 그 위에서 벌어지는 순간을 데이터로 기록하는 기술이다. 경기용 트리온다에는 공의 움직임을 초당 500회 측정하는 관성측정장치(IMU) 센서가 들어간다. 2022 카타르월드컵 공인구 알 리흘라가 센서를 공 중심부에 고정한 것과 달리, 트리온다는 한쪽 패널 내부에 센서를 넣는 측면 장착 방식을 택했다. 공 움직임 데이터는 실시간으로 비디오 판독(VAR) 시스템에 전달되고, 선수 위치 추적 기술 및 인공지능 분석과 결합해 오프사이드와 핸드볼 판정 등을 보조한다.
하지만 기술이 아무리 정교해도 경기장의 모든 조건을 통제할 수는 없다. 해발고도가 높은 경기장에서는 기압이 낮고 공기 밀도가 작아 같은 힘으로 공을 찬다고 하더라도 공이 더 멀리 날아가고 속도 감소가 줄어들 수 있다. 공을 휘게 하는 힘 역시 달라져 슈팅과 크로스 궤적이 평지에 있는 경기장과 다르게 나타날 수 있다. 기온과 습도는 선수의 체력뿐 아니라, 잔디의 마찰력에도 영향을 미친다. 이번 월드컵에서 공이 예상보다 멀리 뻗거나 잔디 위를 빠르게 가르는 패스가 나올 때, 그 뒤에 숨은 과학 원리를 떠올린다면 더 흥미로운 90분을 즐길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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