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년간 편두통인 줄만 알았는데… 삼차신경통이었다[병을 이겨내는 사람들]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2월 24일 01시 4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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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지 고려대 안산병원 교수-삼차신경통 정민태 씨
13년 전 원인 모를 두통 시작돼 편두통이라 믿고 여러 병원 전전
턱 움직이면 머리 더욱 지끈지끈… 원인 찾지 못하자 굿까지 벌여
고대 안산병원서 삼차신경통 진단… 이마-광대뼈-턱으로 뻗은 세 신경
눌리거나 과흥분할 때 통증 발생… 지난해 11월 수술-12월 완치 판정

김명지 고려대 안산병원 신경외과 교수(왼쪽)는 삼차신경통으로 13년 동안 고통을 겪은 정민태 씨에게 지난해 11월 뇌 수술을 
시행해 머리 통증에서 해방시켰다. 김 교수와 정 씨가 완치 후 2개월 만에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고려대 안산병원 제공
김명지 고려대 안산병원 신경외과 교수(왼쪽)는 삼차신경통으로 13년 동안 고통을 겪은 정민태 씨에게 지난해 11월 뇌 수술을 시행해 머리 통증에서 해방시켰다. 김 교수와 정 씨가 완치 후 2개월 만에 만나 대화를 나누고 있다. 고려대 안산병원 제공
김명지 교수
김명지 교수
정민태 씨
정민태 씨
13년 전이었다.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정민태 씨(61)는 어느 날 치과에서 치아 스케일링을 받았다. 큰 문제는 없었다. 다만 병원 문을 나서고 얼마 지나지 않아 왼쪽 이마 주변에 갑자기 ‘찌릿’ 통증이 나타났다.

평소 다니던 의원에 갔더니 별거 아니라며 약을 줬다. 그 약은 솔직히 효과가 없었다. 전기처럼 흐르는 통증을 없애주지 못했다. 치과 의사가 치료를 잘못해 그런 건 아니었을까. 하지만 그건 아닌 듯했다. 치아 손상이나 출혈, 치통 등의 다른 치과적 증세는 나타나지 않았다.

당시 정 씨의 나이 40대 후반이었다. 아직 건강에 어느 정도 자신이 있을 때였다. 게다가 그 통증은 이후로도 간간이 나타나긴 했지만,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초래하지는 않았다. 정 씨는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무시했다.

정 씨의 표현에 따르자면 그것은 ‘편두통’이었다. 편두통은 때로는 찌릿했고, 때로는 벌레가 기어다니는 듯한 불쾌한 형태로 나타났다. 그렇게 2년 정도가 흘렀다. 그사이에 통증은 더 심해졌고, 나타나는 주기도 짧아졌다.

또 한 가지. 없던 증세가 생겼다. 턱을 움직이면 두통이 더 심해지는 것이다. 가령 무슨 말을 하려고 입을 열면 찌릿 전기가 흐르는 두통이 시작됐다. 이러다 보니 항상 두통을 달고 살아야 하는 신세가 돼 버렸다. 그 좋아하던 건조 오징어는 아예 입에 댈 수도 없게 됐다. 정 씨의 ‘삼차신경통’ 투병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 죽고 싶을 정도의 두통

정 씨는 심한 편두통일 거라고만 생각했단다. 그러니 의사들을 만났을 때도 편두통을 주로 호소했다. 나름대로 통증을 다스리려는 요량으로 항상 이마에 파스를 붙이고 다녔다. 그런데도 두통은 사라지지 않았다.

편두통은 말하거나 음식을 씹을 때 특히 심했다. 턱이나 광대뼈 주변이 아프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턱만 움직이면 편두통이 시작됐다. 그러니 입을 열 수가 없었다. 의사를 만나 증세를 설명하는 것도 고역이었다. 간신히 한마디 한마디 꺼낼 때마다 이마 통증으로 저절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이러니 제대로 일을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루 종일 업무를 보는 것조차 힘들었다. 영업하려면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그것도 쉽지 않았다. 그 때문에 오전에만 근무하고 오후에는 주말농장을 찾아 휴식을 취했다.

편두통을 고치기 위해 안 해 본 것이 없다. 한의원, 동네 의원은 원인을 알 수 없다며 약만 줬다. 물리치료도 받았지만 조금 가뿐한 느낌이 들 뿐 증세는 그대로였다. 큰 대학병원에도 가 봤다. 대학병원에서 몇 개월 동안 약물 치료를 받았지만 마찬가지였다. 그 병원 의사는 “두통을 평생 친구처럼 여기면서 살아야 할 수도 있다”고 했다. 정 씨는 그 대학병원을 더 이상 다니지 않았다. 다시 한의원과 동네 의원으로 갔다. 지금까지의 과정을 되풀이했다. 죽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우울감도 커졌다. 가족들 또한 초긴장 상태로 하루하루를 살아야 했다. 오죽하면 굿까지 벌였을까.

그러다가 지난해 10월, 두통이 극심해져 고려대 안산병원 응급실을 찾았다. 일단 응급 처치를 받고 퇴원했다. 하지만 두통은 더 심해졌다. 정 씨는 당일 신경외과 진료를 받았다. 당시 외래 진료를 맡았던 의료진은 정 씨가 너무 고통스러워하자 입원 검사를 진행했다.

● 구분 어려운 질병, 삼차신경통
자기공명영상(MRI) 검사에서 삼차신경통(三叉神經痛) 진단이 떨어졌다. 정 씨는 처음 듣는 병명이었다. 정 씨는 “편두통으로만 생각했었는데, 완전히 다른 병이었다”고 말했다. 정확한 병명조차 알지 못한 채로 13년 동안 통증을 달고 산 셈이다. 삼차신경통 환자를 많이 다루는 김명지 신경외과 교수가 이때부터 진료를 담당했다.

삼차신경은 뇌에서 나와 이마, 광대, 턱으로 나뭇가지처럼 세 갈래로 갈라진(三叉) 신경조직의 이름이다. 삼차신경통은 혈관이 이 신경을 눌렀을 때 혹은 신경조직이 손상돼 과흥분을 유발했을 때 발생한다. 때로는 뇌종양이 삼차신경통을 유발하거나 외상으로 인해 삼차신경통이 생기기도 한다. 매년 인구 10만 명당 4, 5명이 이 병에 걸린다. 병 이름은 삼차신경조직이 아픈 것이라는 의미다. 그러니 ‘1차신경통’이나 ‘2차신경통’이란 병은 따로 없다.

편두통과 달리 삼차신경통은 주로 신경이 갈라진 세 줄기를 따라 발생한다. 대체로 광대뼈와 턱 쪽에서 통증이 많이 발생한다. 환자에 따라서는 이마에 집중적으로 통증이 발생하는데, 이 경우 편두통과 혼동하기 쉽다. 정 씨가 딱 그런 사례다. 다만 통증의 패턴이 다르다는 점을 알아둬야 한다. 정 씨처럼 턱을 움직일 때 두통이 나타났다면 편두통보다는 삼차신경통일 확률이 높다.

삼차신경통일 때 통증은 짧으면 1초, 길면 2분 정도까지 이어진다. 이때 통증은 발작적인 게 특징이다. 대체로 전기에 감전된 것처럼 찌릿하거나, 예리한 것으로 찌르는 듯한 통증이다. 또한 양치질처럼 별로 자극이 강하지 않은 행동만으로도 과흥분이 일어나 통증이 유발되는 것도 특징이다.

병을 치료하지 않고 방치하면 시간이 흐를수록 통증의 주기가 짧아진다. 이 또한 정 씨도 겪은 일이다. 방치한 기간이 너무 길면 수술로도 고치지 못할 수도 있다.

정 씨는 13년 전 처음 머리 통증을 느꼈다. 이에 대해 김 교수는 “어쩌면 그때 삼차신경통이 시작됐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2년 후 씹거나 말할 때 이마로 통증이 뻗었다고 했는데, 그때는 삼차신경통이 본격적으로 진행되고 있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만약 병을 제대로 알았다면 이후 11년 동안의 고통은 줄일 수 있었다는 이야기다.

● 뇌 수술 후 완치
처음에는 약물치료부터 했다. 하지만 삼차신경통을 너무 오래 앓은 뒤라 증세가 좀처럼 개선되지 않았다. 결국 김 교수는 정 씨와 상의한 후 수술을 시행하기로 했다. 김 교수는 “대부분은 2∼3개월 동안 약물치료를 한 뒤 수술을 결정한다. 하지만 정 씨는 곧바로 수술하기로 한 사례”라고 했다.

지난해 11월 초, 정 씨는 수술대에 올랐다. 머리를 여는 수술이었다. 수술 도중 만일의 사태를 방지하기 위해 신경모니터링 센서를 얼굴에 부착하고 장비를 점검하는 등 사전 준비에만 1시간 반이 걸렸다.

모든 준비가 끝난 후 본격적으로 수술이 시작됐다. 귀 뒤쪽 피부를 4∼5cm 절개했다. 뼈가 드러나자 500원 동전 크기의 구멍을 뚫었다. 이어 뇌막을 걷어내니 소뇌가 보였다. 이때부터는 극도로 예민한 작업이다. 삼차신경은 소뇌 안쪽에 있다. 따라서 소뇌를 한쪽으로 밀어내야 수술이 가능해진다. 이 과정에서 소뇌가 조금이라도 다친다면 뇌신경 장애로 이어질 수 있다. 미세현미경을 통해 섬세하게 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맨 마지막에 삼차신경을 누르고 있는 혈관을 떼어낸다. 혈관과 신경 사이에 특수 스펀지를 삽입한다. 이 스펀지는 혈관이 가하는 충격을 흡수하고, 이를 통해 신경이 과흥분하지 않도록 한다. 수술은 2시간 만에 성공적으로 끝났다.

● “새 인생을 얻었다”
수술을 받은 후 정 씨는 7일 동안 입원하며 치료를 받았다. 이때부터 그동안 먹어 왔던 항경련제와 통증약을 줄이기 시작했다. 수술 부위가 아팠지만 종전의 통증에 비하면 통증이라 부를 정도도 아니었다. 찌릿찌릿한 통증은 거의 사라졌다. 김 교수는 “어떤 환자들은 통증이 사라졌는데도 통증이 있을지도 모른다며 약을 끊지 못한다. 다행히 정 씨는 수술 후 적응을 잘했다”고 말했다. 다만 수술 주변 부위에 감각이 덜 느껴지는 후유증이 나타났다.

한 달 동안 두 차례 외래 진료를 받았다. 마침내 지난해 12월, 김 교수는 더 이상 병원에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했다. 완치를 선언한 것. 물론 더 이상 약을 먹을 필요도 없었다. 그사이에 수술 부위의 감각도 많이 돌아와서 일상생활에는 아무런 지장이 없다.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편두통#삼차신경통#두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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